트럼프! 모르나? 무역적자는 달러 체제의 숙명이란 걸

한광덕 2017. 2. 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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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국은 무역적자 통해 통화를 세계에 공급
미국이 흑자 내면 달러유출 안돼 국제 유동성 위축
트럼프 "글로벌 통화와 같은 것은 없다" 위험한 발언

글로벌 무역불균형 2014년부터 다시 심화
미 작년 무역적자의 절반은 중국의 대미 흑자가 차지
미국, 물건 수입해 소비하다 '일자리 수출'한 꼴

일방적 보호무역보다 국제 정책공조로 풀어야
미국은 재정적자 줄이고 중국은 내수확대 필요
내달 17일 G20 회의에서 환율 등 현안 논의될듯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환율과 통상 분야에 걸쳐 파상적인 보호무역 공세를 펼치면서 ‘글로벌 무역 불균형’의 원인과 해법을 둘러싼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 증시는 연일 최고치 행진을 벌이고 있지만 미 국채 금리와 달러가치의 상승세는 주춤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강세’에 반감을 드러내면서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이 감속 구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현재 6개 주요 통화에 견줘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와 미 국채 금리(10년 만기)는 올해 들어 각각 1.1%, 5.4% 하락했다. 트럼프는 지난 23일(현지시각) 중국에 대해 “환율조작의 그랜드챔피언”이라며 날을 세우는 등 달러 강세에 줄곧 딴죽을 거는 중이다.

■ 트럼프 정책의 모순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혼란스럽다. 감세와 규제 완화 정책은 레이거노믹스와 공화당의 신자유주의를 빼닮았다. 반면 인프라 투자 확대 정책은 유효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재정의 구실을 우선하는 케인스주의와 맞닿아 있다.

트럼프 정책이 서로 충돌하면서 ‘트럼프 트릴레마’라는 조어까지 나왔다. 트럼프의 3대 공약인 재정확대와 감세, 보호무역 강화, 저금리는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프라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금리가 급등할 수 있어 트럼프 정부의 ‘저금리’ 지향과 충돌한다. 트럼프는 세제 혜택을 제공해 민간자본을 유치하면 재정적자를 늘리지 않고 재원조달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 의회예산국(CBO)은 인프라 투자는 수익성이 낮아 민간사업자의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들다고 본다. 결국 대규모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재정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서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공약을 완전하게 이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트럼프는 또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달러 강세 여부가 관건이다. 달러 강세 아래서는 미국의 제조업과 수출 경기의 둔화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는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동시에 관세인상 등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게 절실하다. 하지만 보호무역은 결과적으로 달러 강세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것도, 글로벌 교역위축으로 수출국의 경기가 둔화하는 것도 모두 달러 강세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형주 엘지(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트럼프는 자국의 일자리와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마다치 않는다. 성격이 다른 경제 처방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미국의 힘’을 이용해 다른 나라들에 전가한다”라고 짚었다.

보호무역이 장기적으로 재정정책과 충돌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이 확산하면 결국 미국의 수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트럼프의 정책은 앞뒤가 맞지 않아 달러 약세 유도는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펀더멘털이 이끄는 달러 강세를 ‘실력 행사’로 저지하겠다는 발상이 무모하다고 보았다.

■ 글로벌 무역 불균형 트럼프의 보호무역 강화는 근본적으로 ‘글로벌 불균형’ 현상에 대항하는 것이다. 글로벌 불균형이란 미국이 너무 많이 수입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중국 등 신흥국은 너무 많이 수출해 경상흑자가 커지는 동전의 양면이다. 중국은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의 국채 등 달러표시 자산을 사들인다. 그러면 달러는 미국으로 되돌아가 쌍둥이 적자(경상적자와 재정적자)를 메우고 미국인의 소비를 떠받친다. 이러한 순환의 매개체는 강한 달러다. 미국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고 달러가 강세를 보여야 외국자본이 더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은 이러한 순환구조에 균열을 낸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은 미 국채 2조4000억달러를 들고 있는 동아시아 4개국을 쫓아내는 격인데, 그러면 미국은 스스로 빚을 갚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가 오는 4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이 경우 중국이 1조달러 넘게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내다 팔면서 보복카드를 빼 들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중국이 미 국채를 대거 시장에 내다 팔면 미국 금리가 급등해 트럼프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인프라 확대를 위한 국채 발행에도 일격을 가할 수 있다.

글로벌 불균형의 배후에는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국제 금융시스템의 모순(트리핀의 딜레마)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의 화폐인 달러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통해 다른 나라들에 흘러가 유동성을 공급한다. 미국이 흑자를 내면 달러가 빠져나가지 못해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드는 위험이 발생한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가 지난 24일 “글로벌 통화와 같은 것은 없다”고 한 발언은 우려를 자아낸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불균형 현상은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재차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경상적자는 2008년 6907억달러에서 2013년 3664억달러로 47% 축소됐지만 2015년에는 4629억달러로 2년 새 26.3% 증가했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미국이 기축통화의 특권에 젖어 물건을 수입하고 일자리는 수출해버린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역 불균형의 원인을 중국 등 수출국의 환율조작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 중국·일본 등이 인위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낮춰 대규모 흑자를 낸 것이란 주장이다. <블룸버그> 자료를 보면 중국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254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무역적자의 절반에 가까운 47.2%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보호무역보다는 글로벌 정책 공조가 긴요하다고 말한다. 고율의 관세를 매기면 수입물량은 줄겠지만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 전체 수입금액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보호무역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환율 조정만으로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

이들은 우선 무역 적자국인 미국의 재정적자 축소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긴축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감세와 인프라 투자는 재정적자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중국과 같은 흑자국은 완화정책을 펼쳐 내수에 불을 지펴야 한다. 민간의 소비 지출을 늘려 수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와 자본유출 방어에 나서고 있어 통화가치 절상 요구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일본·독일이 통화·재정정책 공조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17일부터 이틀간 주요 20개국(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독일에서 열린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여기에서 환율 등 주요 현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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