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0년 월세살이' 사회초년생 기자의 전세계약 사투기

유덕관 2017. 2. 2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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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거래 카페서 찾은 첫번째 집
대출 불가능한 '불법 다중주택'
계약금 돌려받기까지 집주인과 승강이
앱으론 미리 등기부등본 확인 어려워
마음에 든 집은 불법개조 '근린생활시설'

전세자금 대출상품마다 필요서류 달라
빚 내고도 학자금 갚으니 잔금 부족

[한겨레]

“고객님, 전세자금 대출이 어려운 집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계약 만료가 2주 밖에 남지 않은 때였다. 2월8일 어렵사리 찾은 전셋집 계약을 마친 뒤 대출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다. 대출 불가 이유는 이 집은 불법이어서 아예 전세자금 대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람….

‘원룸 청년’. 보증금 1000만원에 50여만원의 월세를 내며 5평 정도의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을 일컫는다. 나도 대학생·취업준비생 시절부터 10여년 동안 원룸 청년으로 살고 있다. 월세를 사는 이들 대부분은 “월세가 아깝다”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나는 한 해 뒤면 서른살이 되는 사회 초년생이다. 이 참에 ‘월세 인생’을 청산하기로 마음 먹었다. ‘전세 찾아 삼만리’의 시작이었다.

전세 계약 경험도 없고 종자돈도 많지 않은 청년에게 ‘좋은 전셋집 구하기’는 ‘맨땅에 헤딩’이었다. 지난 1월부터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등 인터넷 부동산 직거래 카페를 수시로 드나들며 매물을 찾았다. 당연히 복비(부동산 중개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어렵사리 맺은 첫 번째 전세 계약은 ‘파기’로 마무리됐다. 사연은 이렇다. 2월8일 집주인을 직접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한 뒤 곧장 은행에 갔더니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불법 다중주택’이어서 안 된다고 했다. 계약 1주일 전 가계약금을 넣을 때 인터넷으로 떼어 본 등기부등본에 다중주택이라고 돼 있는 걸 보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탈이었다. “옆집도 대출 받아서 잘 살고 있다”는 집주인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던 것이다.

직거래를 통해 전세 계약을 했던 집. ‘다중주택’으로 분류돼 전세자금 대출이 거부됐다.

그러나 최근 전세대출 심사를 강화한 은행이 현장 실사를 해보니 불법 개조 사실이 드러났다. 다중주택은 건물 연면적이 330㎡ 이하이고 층수가 3층 이하인 주거용 건축물인데, 취사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집주인이 ‘방 쪼개기’를 해서 세를 놓으려 한 것이다. 이런 경우 전입신고도 할 수 있고 확정일자도 받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전세 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만약 구청에 불법개조가 적발되면 문제가 커진다. 집주인은 즉각 원상복구를 해야 하고, 이행강제금까지 부여된다. 이를 체납하면 건물이 압류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계약을 파기한 뒤 계약금을 돌려받느라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0일 은행 대출이 어렵다는 사실을 집주인에게 전하며 계약금을 돌려 달라고 했지만, 집주인은 “은행원과 통화한 뒤 돌려주겠다”며 미뤘다. 집주인은 13일 은행원과 통화한 뒤에도 “다른 은행을 알아보라”며 계약금 돌려주기를 차일피일 미뤘다. 언성이 높아진 뒤에는 연락마저 되지 않았다. 초조했다. 결국 이날 저녁 법무사와 상담한 뒤 집주인에게 ‘내용증명’ ‘가압류’와 같은 법률 용어를 사용하고서야 돌려 받을 수 있었다. 법률사무원 김민호(33)씨는 “최근 전세 계약 과정에서 불법증축·개조 등으로 대출이 거부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집주인과 갈등을 빚고 계약금을 못 받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계약서에 ‘대출이 불가할 시 계약금을 돌려 받는다’는 특약을 요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겪느라 집 구할 시간이 크게 줄었다. 이사를 해야 하는 25일까지 남은 12일 동안 집 구하고 대출까지 받아야 한다. 이번엔 ‘직방’ ‘다방’과 같은 부동산 앱을 활용했다. 앱에 올라온 집들을 살펴보면 이상하게도 상세주소를 적어놓은 경우가 없다. 일단 와서 매물을 보라는 식이어서 미리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볼 길이 없다.

마음에 드는 집을 몇 개 저장한 뒤 강서구 방화동부터 중랑구 상봉동, 은평구 불광동 등 서울 곳곳을 누비며 14곳 이상의 집을 봤다. 대부분 사진에서 본 것보다 상태가 별로였고, “해당 집은 방금 나갔다”며 “같은 조건의 다른 집을 보여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16일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근린생활시설’로 밝혀져 포기했다. 근린생활시설은 주택가와 인접해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도울 수 있는 ‘상가’인데, 보통 ‘빌라’라는 이름을 붙이고 불법 개조해 전·월세로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역시 주거용 싱크대·가스레인지 등을 설치할 수 없고, 당연히 전세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다. 실제로 포털사이트를 찾아보니 근린생활시설인 집에 전세 계약을 맺은 뒤 대출을 거부 당해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었다. 대부분 집주인 쪽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신축빌라 중에는 근린생활시설은 물론 불법 증축·개조 사례가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 일부 집주인들의 행태라지만 마음이 씁쓸했다. 근린생활시설일 가능성이 큰 ‘대로변 신축빌라’ 등은 집을 보기 위해 곧장 달려가기보다 전화로 먼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앱을 통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지만, 계약 직전 ‘근린생활시설’임을 알게 돼 포기했다. 근린생활시설에는 싱크대 등 주거용 시설을 설치하면 안 된다. 구청에 적발될 경우 원상복구 해야 하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다행히 이날 적당한 집을 찾아 17일 전세 계약을 했다. 계약서 잉크가 마를 틈도 없이 주민센터를 찾아 확정일자부터 받았다. 이번엔 복잡한 전세자금 대출 과정을 돌파해야 했다. 회사 인근의 은행이란 은행들은 모두 찾았다. 은행마다 대출 상품이 너무 많고, 필요 서류도 제각기여서 당황스러웠다. 재직증명서와 원천징수영수증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요구해 미리 준비했지만, ㄱ은행은 주민등초본 5년치 주소 변동 이력이 적힌 것을 새로 발급 받아 오라 했고, ㄴ은행과 ㄷ은행은 미혼임을 증명하라며 상세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 오라 했다. 미혼자와 기혼자는 대출 이자가 차이 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주민센터를 4번 왔다 갔다 했다.

은행을 선택하고 필요 서류를 모두 제출했는데도 아직 절차가 더 남았다. 매달 은행에 ‘급여’라고 찍힌 금액이 입금돼야 한다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 적금도 들어야 했고 공과금 자동이체 설정도 해야 했다. 심지어 신용카드를 만들어 일정 금액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부대 비용인 인지세와 보증료 부담도 적지 않았다. 전세 보증금의 5% 이상을 계약금으로 이체했다는 영수증이 필요하다고 해 집주인에게 이를 받아왔다. 전세자금을 원하는 만큼 받지도 못했다. 보통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전세 보증금의 80%까지 대출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자신의 연소득의 3배 정도 금액과 비교해 더 낮은 금액이 대출 금액으로 책정된다.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에 육박하는 ‘전세난’ 시대에 연소득이 높지 않은 청년들이 질 좋은 전세 구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출 심사에 들어갔지만, 잔금일을 맞추기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자금 대출’도 발목을 잡았다. 기존 예상됐던 대출금에서 학자금 일부를 제외하고 나니 돈이 모자라게 됐다. 결국 적금 하나를 깼다. 잔금은 다행히 집주인의 배려로 25일 이사 이후 치를 수 있게 됐다.

새 집으로 이삿짐을 옮겼지만 대출 금액은 아직 집주인의 계좌로 입금되지 않았다. 전세의 전 자도 모르던 청년에게 전세의 세계는 ‘부동산 불패 한국’의 욕망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신세계’였다. 내 전세 구하기 사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글·사진 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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