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보기]북한 '김정남 암살'과 VX 사용, 북미관계에 악재
[경향신문]
북한 미사일 발사로 악화일로인 북·미 관계에 이번엔 ‘VX 악재’까지 터졌다. 김정남 피살 사건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복형 살해 배후로 지목되는데다, 유엔이 금지한 화학무기 VX까지 사용한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북·미간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대북 정책에서 미국 내 강경파들이 주도권을 쥐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5일(현지시간) 북·미 간 반관반민의 1.5 트랙 대화가 VX 문제로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수차례 미국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도널드 자고리아 미국 외교정책위원회 부회장의 주선으로 3월 1~2일쯤 뉴욕에서 북한 최선희 외무성 미주국장 등 정부측 인사들이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지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등 미국측 전직 정부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무부는 북한 당국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신문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 때문에 성사 여부가 저울에 올려져 있었다”면서 “암살에 VX가 쓰였다는 말레이시아의 발표는 취소를 결정하는 마지막 한방이었다”고 전했다. 미국과 북한이 6년만에 미국 땅에서 접촉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무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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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 출범을 계기로 기대됐던 북·미 대화의 문은 조금씩 닫히고 있다. 김 위원장과 ‘햄버거 대화’를 할 수도 있다던 트럼프는 지난 23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절대 ‘노’라고는 하지 않지만 아마도 너무 늦었다”라고 말했다.
유엔 화학무기금지협약에서 대량살상무기로 규정된 VX를 동원한 암살은 미국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 키우고 대화론자들이 설 자리를 줄일 수 있다. 빅터 차는 월스트리트저널에 “VX를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은 테러”라며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분명히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사설로 북·미간 핵 동결 협상을 권고하는 등 대화론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이 찬물을 끼얹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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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하자는 강경파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릴 전망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미국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에 새로운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미국이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은 의회에서 확인된다. 테드 포 공화당 하원의원은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법안(H.R 479)을 공식 발의해놨다.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장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올리라며 연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두달 뒤인 1988년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으나 핵 검증에 합의하면서 2008년 11월 명단에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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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항공기 폭파처럼 북한 정부가 개입됐음을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올린다는 것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뜻인 만큼 미국 정부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는 오는 27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다.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3자, 양자 회동을 잇따라 갖고 입장을 조율한다. 이날 만남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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