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국전쟁 때 진주 용산고개서 무슨 일이?..두번째 유해발굴

2017. 2. 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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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총상으로 얼굴 분간 안돼 옷으로 아버지 시신 찾았다"
학살 민간인 유족들 "억울한 희생자 많아"..진상 규명 호소
(진주=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가 두번째 발굴조사를 벌이는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2017.2.26 shchi@yna.co.kr

(진주=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상당수가 머리에 총을 맞은 탓에 얼굴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어서 어머니와 삼촌이 옷을 보며 아버지 시신을 찾았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 정연조(68) 사무국장은 26일 한국전쟁 당시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당시 상황을 어렵게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와 삼촌이 학살 사흘 만에 갔는데 무더운 날씨에 시신이 부패한 냄새가 너무 심해 쑥으로 코를 막았다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학살 현장에서 바라보이는 3번 국도에서 군인들이 총을 쏘면서 '나가라'고 고함을 질러 아버지 시신을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가 이를 생전에 안타까워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가 "(그날)마을에 있는 파출소에서 회의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나갔는데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교도소로 끌려 갔고 이후 학살당했다"며 "전시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통탄했다.

(진주=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 정연조(68) 사무국장이 한국전쟁 때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는 "상당수 시신이 머리에 총을 맞은 탓에 얼굴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어서 어머니와 삼촌이 옷을 보며 아버지 시신을 찾았습니다."고 말했다. 2017.2.26 shchi@yna.co.kr

옆에서 정 국장 이야기를 듣던 유족회 강병현(68) 회장도 "아버지가 국수를 준비하는 어머니에게 면사무소에 회의가 있으니 갔다 와서 먹겠다며 나갔는데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 회장은 "한국전쟁 때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하고 지하광산이나 산속에 수 십 년간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살 당시 리어카에 농산물을 싣고 3번 국도를 가던 조모(93·작고) 씨가 생전에 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상황도 소개했다.

조 씨는 '그날 총을 든 군인들이 통행을 막았다. 30여 분간 기관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뒤에 알고 보니 민간인 등을 총살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강 회장은 전했다.

정 사무국장과 강 유족회장의 증언은 1950년 7월 중순 국민보도연맹 사건 때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들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당시 진주가 인민군에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경찰 등이 철수하기 전인 7월 22일부터 26일까지 보도연맹과 관련한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한 것이다.

희생자들은 국민보도연맹(1949∼1950년 정부가 좌익 관련자들을 관리·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 사건 등에 연루되거나 인민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피살됐다.

당시 군·경은 좌익활동 전력자, 빨치산에게 식량 등을 제공한 사람뿐 아니라 국민보도연맹이 어떤 단체인지도 모르는 농민들까지 가입토록 했다고 유족회는 설명했다.

특히 이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당수 민간인이 보도연맹원이란 낙인이 찍혀 국군방첩대와 경찰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진주 용산고개는 진주지역 5곳의 민간인 학살 현장 중 한 곳이다.

(진주=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두번째 발굴조사를 벌이는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인근 야산. 2017.2.26 shchi@yna.co.kr

진주유족회는 2014년 2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함께 진주 용산고개에서 민간차원의 첫 희생자 유해발굴 조사를 벌였다.

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출범했다.

공동조사단은 첫 조사 당시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 탄피, 버클 등 유품을 발굴했다.

희생자들은 경찰 등이 갖고 있던 카빈총에 의해 사살됐고 일부는 확인 사살까지 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공동조사단은 추정했다.

발굴현장은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용산고개 3개 골짜기 다섯 군데에 718구의 시신이 매장됐다는 주민과 유족들의 증언이 계속 나왔다.

이에 따라 공동조사단은 2차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3차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야산에 이어 4차 발굴조사 지역을 다시 진주 용산고개로 정했다.

이번 발굴조사지역은 1차 발굴지에서 20여m 떨어진 곳이다.

공동조사단은 내달 2일까지 발굴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발굴진행 중인 내달 1일 현장 설명회도 연다.

진주유족회와 공동조사단은 지난 24일 현장에서 연 개토제에서 "67년의 어둠을 걷어내고 희생자들을 밝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발굴조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이번 발굴조사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 매장된 희생자들의 참상을 밝히고 민간차원에서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을 이어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진행한다"고 말했다.

(진주=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 강병현(68) 회장이 한국전쟁 때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2017.2.26 shchi@yna.co.kr

shch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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