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승격보다 관중을 목표 삼는 용기

홍재민_편집장 2017. 2. 26.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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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홍재민]

말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행동과 습관을 바꾸고, 더 나아가 생각까지 변하게 할 수도 있다. 생각의 표현이 언어이겠지만, 역방향의 인과도 무시할 수 없다.

2017시즌 개막이 일주일 앞이다. 클래식 12개 팀, 챌린지 10개 팀이 저마다 각오를 밝히고, 희망을 던지고, 목표를 외친다. 25일 오후 서울이랜드FC(이하 서울E)도 그랬다. 팬들 앞에서 올해 각오를 밝혔고, 새 유니폼을 공개했고, 화이팅을 외쳤다.

지난해 새로 부임한 한만진 대표이사가 환영사를 밝혔다. 그는 대뜸 “승격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축구를 팬들께 제공하는 것”, “평균관중 두 배 이상 증가”, “챌린지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구단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을 각각 목표라며 팬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뜻밖의 목표 설정이었다. 물론 한만진 대표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승격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도 승격 여부가 서울E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안다. 성적을 책임지는 김병수 신임 감독은 시즌 목표를 묻는 팬 물음에 “무조건 승격”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표가 나서서 내용을 결과에 앞세우다니 신선했다.

알다시피 K리그는 성적 지상주의다. 34년 동안 모든 구단이 성적에만 리소스를 투입해 왔다. 일반 매출보다 운영주 지원금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흥행이 저조해도 돈벌이는 변하지 않는다. 역대 최다 우승팀 성남일화는 빈약한 팬층으로 악명높았다. 최근 전북현대는 관중 증가를 이루고 있지만, 티켓 판매 매출은 아직도 구단 운영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강원FC의 승격 첫해 목표가 'AFC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라는 곳이 바로 K리그다.

그런 지형에서 시즌 최우선 목표로 성적을 언급하지 않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시즌 출발을 앞두고 승격을 최우선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챌린지 구단 대표의 말은 K리그 통념에서 크게 벗어난 수사다. 2년 연속 승격 실패, 모기업의 경영실적 악화 등 악재가 겹쳐있는 서울E의 현실 안에서는 더 그렇다.

이날 현장에서 서울E는 새 시즌 유니폼을 공식 발표했다. 새 옷을 입은 선수와 팬이 나란히 무대 위에 올랐다. 선수와 팬 들이 함께 무대 위에서 2017시즌을 향해 화이팅을 외쳤다. 팬 연대감을 중시하는 서울E의 가치가 잘 녹아있었다. 다른 구단들도 이런 행사를 통해 팬 스킨십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결과보다 내용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공언하는 곳은 드물다.

최근 K리그는 축구 경기를 일반 엔터테인먼트(노래, 영화, TV드라마 등)처럼 다루는 오류를 범한다. 이겨야 재미있고, 그래야 잘 팔린다는 논리다. 그렇기에는 대체상품(각종 휴일 여가, 또는 프리미어리그!)이 너무 많지 않은가. 프로스포츠구단의 영속성은 경기 자체의 재미보다 단단한 팬층의 결과물이다. 매번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승리가 아니라 가치를 팔아야 구단이 오래갈 수 있다. 구단 대부분도 공감한다. 하지만 목표를 물으면 정작 성적으로만 말한다. 말(言)부터 성적 감옥에서 탈출했으면 한다. 관중이 많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K리그 구단들이 더 빈번하게, 더 강하게, 어쩌면 더 뻔뻔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2년 전, 목표 관중 수를 등번호로 마킹했던 전북현대 프런트의 유니폼을 기억한다. 제주유나이티드의 2만 관중 달성 공약도 계속되길 소망한다. 관중 증가를 승격보다 앞세운 서울E의 2017시즌 목표를 응원한다.

사진=서울이랜드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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