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촛불, 광화문에서 '분단'을 경험한 아이들
[오마이뉴스 글:이희동, 편집: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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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자 호텔에서 내려다 본 시청 광장 태극기와 성조기 |
ⓒ 송문식 |
뭐, 그렇다고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시민청에서 세월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난 시청 광장 시위 현장을 둘러볼 생각으로 흔쾌히 알겠다고 길을 나섰다. 아빠가 '태극기 집회'를 간다고 하니 당장 까꿍이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빠, 이제 태극기 집회 나가? 박근혜 편이야?"
"아냐. 그냥 한 번 둘러보게. 우리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야 되잖아."
1시쯤 2호선 시청역에 도착하니 많은 어르신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주머니에는 태극기 빨대가 꽂혀 있었고, 혹자는 TV에서 보던 대로 대형 태극기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라는 아이들.
▲ 태극기 물결 아득해지는 풍경 |
ⓒ 이희동 |
"응? 그러게. 우리가 촛불 드는 것과 비슷해. 저분들은 태극기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거야."
"그럼 지금 나도 촛불(LED) 들어도 돼?"
"아냐. 지금 여기서 촛불 꺼내면 조금 위험할 것 같아. 할아버지들이 와서 뭐라고 하실걸?"
내가 생각해도 나의 대답은 궁색했다. 여전히 아이들은 모든 것이 궁금한지 계속 질문할 태세였지만, 나는 서둘러 시민청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자신이 없었고, 그들의 추레한 증오를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태극기와 노인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다.
시민청에 도착하자 그곳 역시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많은 어르신들이 시민청 곳곳에 주저앉아 태극기를 옆에 두고 왁자지껄 이야기하고 계셨다. 안내원 중 한 분에게 매주 힘들겠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니 이제는 익숙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원.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광장으로 향했다. 자, 이제 한 번 둘러볼까나.
일어나라! 애국시민이여!
▲ 그 시대로 소환되다 반공 글짓기 대회가 열렸던 1989년 |
ⓒ 이희동 |
광장에는 수많은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태극기를 들고 열심히 연단에서 선창하는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었다. 그중에는 언론을 통해 접했던 '계엄령뿐, 군대여 일어나라' 팻말을 목에 걸고 계시는 분들도 계셨다.
"국회해산", "특검해체"
'누명탄핵' 팻말 건 초등학생, 무슨 생각이었을까
▲ 구 서울시청 안에서 바라본 광장 발 디딜 틈이 없다 |
ⓒ 이희동 |
더 기가 막힌 건 광장 곳곳에 보이는 육사 동기 깃발이었다. 이 자리에 군복을 입고 참여한 채 자신이 육사 생도였음을 밝히는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일까? 이 사회가 60~7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진정 믿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돌아가게 되면 자신들이 다시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 지방에서 올라온 태극기들 영남지역이 많이 보인 건 기분 탓이겠지? |
ⓒ 이희동 |
"봐봐. 전국에서 다 왔네 그려. 언론들, 촛불이 훨씬 많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이야. 여기 와서 보니 이제 제대로 알겠네. 실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편이야. 암."
▲ 구 시청사에서 바라본 광장 남대문까지 모여 있다 |
ⓒ 이희동 |
그러던 중 연단에 어떤 여성 예비역 장군이 올라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힘, 엄마의 힘을 모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무효 시키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여성임을, 약자임을 강조했다. 군복을 입고 국회를 향해 입에 담지도 못할 이야기를 하면서 약한 여자를 운운하는 그들의 모습은 실로 기괴했다.
▲ 혹시 그분? 각하께서 보시면 기뻐하시겠다 |
ⓒ 이희동 |
빨갱이 타령이 끝나자 어떤 여성분이 서울시청 구청사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박원순은 왜 북한 노동당 로고를 걸고 있냐? 빨리 내려라!" 그분이 가리키는 곳에는 세월호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었다.
다시 촛불 광장으로
힘들었다. 그 추운 겨울밤, 촛불을 들고 서 있었을 때도 멀쩡했는데, 시청 광장에서는 1~2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왜 이리 피곤한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 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증오와 환멸에 찬 언어 때문인 듯도 했다. 이들도 촛불 집회에 나오면 나와 같은 느낌이려나?
▲ 서울시청 시민청 내부 집에 언제 가누 |
ⓒ 이희동 |
세월호 엄마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던지 훌쩍이는 아내와 그 시간이 지루해 몸을 틀고 있던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시민청을 올라오자 여전히 시청 광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태극기와 쏟아지고 있었는데, 아내가 중얼거렸다.
"3.1운동 때 일본 놈들도 저 태극기 물결을 보면서 무서웠을까?"
광화문으로 가는 길, 까꿍이가 물었다.
"아빠, 어땠어? 저 할아버지들은 왜 저래?"
"글쎄. 아마 저분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 같아. 박근혜 대통령의 아빠도 대통령이었는데 그때 저 할아버지들이 아빠같이 젊을 때였거든. 그러니까 지금 대통령을 보면 자기 젊었을 때가 생각나서 저러지 않을까?"
"이상해. 막 소리 지르고 욕하고. 태극기도 이상해 보여."
"아니야. 할아버지들이 다 그런 건 아냐. 그리고 저렇게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거야.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만 잘살 수 있다면 그게 나쁜 사회야. 그런데 저 할아버지들은 그런 사회가 좋다고 해서 문제고."
▲ 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
ⓒ 이희동 |
낯익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오니 그제야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고 촛불을 높이 들었다. 앞서 봤던 태극기의 물결이 꽤 충격이었는지, 노란리본을 단 태극기를 계속해서 가리키기도 했다. 녀석들에게는 과연 태극기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궁금했다. 부디 이 시국이 빨리 수습되어서 태극기가 오염되지 않기를.
집에 오는 길.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시청에서부터 남대문 못미쳐 늘어서 있던 태극기의 물결이 마음에 걸렸다. 저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촛불을 들어라 태극기 대신 촛불이다 |
ⓒ 이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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