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 구혜선·안재현의 문제인가, 나영석의 오판인가

김교석 입력 2017. 2. 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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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일기’의 판타지가 폭발하지 않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나영석 사단은 예능계의 탐험가들이다. 그동안 관습과 작법에 얽매이지 않으며 성공적으로 예능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가족주의와 일상의 행복, 평안 등 다소 보수적인 가치라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 그들은 언제나 예능 작법과 영역을 개척한 첨병이었다. 그 덕분에 오늘날 tvN 브랜드 파워와 영향력을 좌지우지하는 창작 집단으로 몸집이 커졌다.

<신혼일기>는 또 한 번의 출정이다. 이번엔 사적 영역을 예능의 공간으로 삼았다. 가상 연애 예능이 태동한 지 횟수로 10년째인 지금, 아예 실제 부부를 캐스팅했다. 8개월 차 신혼부부 구혜선과 안재현은 강원도 인제의 어느 시골집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제작진의 존재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카메라도 세팅했다. 제작진의 존재와 개입이 주요한 재미요소였던 나영석 사단의 기존 작법에서 벗어난 또 한 번의 도전이다.

호평은 즉각적이었다. 비주얼도 범상치 않은데,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1화는 저출산 시대에 결혼의 이로움을 널리 전파하려는 홍보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달달했다. 눈이 소복이 내린 인제에서 소박하게 꾸린 동화 같은 일상을 보내는 사랑꾼 남편과 사랑스런 아내의 모습은 행복한 그림 같았다. 2화에서는 다른 우주에서 살던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게 되면서 겪을 수 있는 갈등과 화해라는 부부관계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좋은 말을 자주 많이 건네야 한다는 관계의 법칙을 제대로 실행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예쁘다’ 등등 서로에게 수시로 칭찬과 감사를 건네고, 가상 연애에서는 절대 등장하지 않던 스스럼없는 장난들이 미소 짓게 만든다. 그러다가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자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솔로몬급의 지혜를 구한다. 구혜선은 “행복해지자고 한 일이나, 결혼은 현실이다(행복할 일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함께 행복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와 길을 제시한다. 결혼에 대한 판타지와 현실이 마치 계산한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적절한 황금비다.

그런데 3회부터 시청률과 관심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미션 등의 설정과 중간 중간 물꼬를 터줄 제작진의 개입이 전혀 없다보니 두 사람의 매력은 매우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특별한 이야기 없이 부부애의 달달함을 전파하기 위해선 이 두 사람의 캐릭터에 올라타야만 한다. 그런데 단 3회 만에 이런 점들이 소진된 느낌이다.

안재현은 부인을 위하는 사랑꾼에, 장도 잘보고 샤브샤브도 잘하는 살림꾼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여성 시청자들의 워너비가 되었고, 구혜선은 예쁜데 털털하면서 세속적이지 않은 깊은 내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판타지를 입히는 이러한 스토리텔링 공식이 너무 익숙하고 뻔하다. 현실 부부라지만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관계는 뜻밖의 재미를 전혀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단편적이고 생산하려는 판타지는 너무나 선명하다.

지금까지 나영석이란 융단을 탄 출연자들을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이미 갖춰진 것 이상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김광규, 규현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그랬다. 나영석 사단은 <응답하라>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출연자의 기존 이미지를 해체하고 새로운 매력을 덧입히면서 잔잔한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재미를 마련했다. 캐스팅과 설정, 그리고 후가공 예능의 미학이다.

구혜선은 나영석이란 융단을 만나기 전까지는 ‘구님’으로 불리며 여성 시청자들의 사랑받는 배우가 아니었다. 얼짱으로 데뷔해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로 상종가를 친 것 정도 외에 배우로서 주목받을 만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2015년 지금의 남편 안재현을 만난 드라마 <블러드>의 연기는 솔직히 처참했다. 대신 스물입곱의 나이에 미술 전시 개최, 자작곡 앨범 ‘구혜선 소품집’ 발표, 일러스트 소설 <탱고> 출간, 단편영화 <유쾌한 도우미>, 장편영화 <요술> 등을 내놓은 천재 아트테이너로 활약했다. 이를 두고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호한 ‘21세기 르네상스인간’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안재현은 나영석을 만나기 전까지 인지도 자체가 워낙 낮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까지 이러한 출연자의 기존 이미지를 해체하거나 인지도를 더욱 높일 만한 스토리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능에 첫 등장한 구혜선은 익숙한 아트테이너의 모습 그대로였다. 제작진은 안재현에게서는 아내에게 좋은 남자라는 점 하나만 발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주체적이고 털털한데 예쁜 아내와 그 아내를 사랑과 정성으로 따르는 모델 출신 연하 남편이란 판타지스러운 현실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극화된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나영석 사단은 그동안 대체로 성공했다. 개중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신서유기3>처럼 어려움을 겪었던 시리즈들도 간혹 있는데, 출연자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다. 작년 이맘 때 방영했던 <꽃보다 청춘-아프리카>는 나영석 사단이 유일하게 다른 프로그램의 인기를 등에 업고 기획된 방송이었다. 역시나 두 자릿수의 폭발적인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응답하라 1988>의 배우들이 드라마에 등장했던 배역보다 더 나은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문을 닫을 땐 4%까지 뚝 떨어졌다. 등장인물의 새로운 매력을 만들지 못하거나 그 힘이 유지가 안 될 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의 빛은 급속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판타지가 현실을 넘어선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캐릭터의 매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신혼일기>의 캐릭터는 판타지를 전파하기에 새롭지도, 다채롭지도 않다. 대신 3월 10일 종영일이 잡혔다. 나영석 사단 예능 중 가장 짧은 5회에 감독판 1회를 포함해 총 6회, 회당 분량도 1시간 10분 내외로 가장 짧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회 차를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이지만, 막상 촬영과 편집과 방영에 돌입하기까지 반전 요소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혜선과 안재현의 사랑이 진짜인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둘의 꿀 떨어지는 사랑은 계속 찾아보고 싶은 생각까지는 안 드는 이유다.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너무나 명백히 드러나는 숨은 그림 찾기를 펼쳐보는 듯한 김빠지는 기분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 연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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