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칼럼] 김병지 '선수의 연봉협상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입력 2017. 2. 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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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K리그 시즌 개막까지 딱 일주일 남았습니다. 선수시절을 떠올려보면 프리시즌은 꿀맛 같은 휴식과 함께 ‘연봉계약’이라는 반가우면서도 어려운 협상의 과정이 있다는 점에서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축구팬들께서 ‘선수들의 연봉협상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에 대해 궁금하시리라 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 궁금증을 풀고 저의 일화와 함께 선수들의 재테크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구단이 ‘절대 갑’ 종신계약서였던 1990년대… 선수가 어려울 수 밖에

제 선수시절 초반 때인 1990년만 해도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에서 선수는 ‘을’이었습니다. 요즘은 ‘원클럽맨’이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구단에서 마음만 먹으면 모두를 ‘원클럽맨’으로 만들 수 있었죠. 당시에는 종신계약과 다름없을 정도로 일방적 선택으로 구단 입장에서 계약이 진행됐습니다.

예전 연봉계약 과정은 이랬습니다. 지난 시즌 활약이 부진하거나 혹은 뻔했던 선수의 경우 12월이 가기 전까지 구단에서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인급 선수의 경우에도 운영팀장선에서 금액을 제시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활약이 괜찮았거나 경기력이 일취월장하여 연봉인상의 폭이 상당히 올라야 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선수의 경우에는 이미 프리시즌이 시작하고 전지훈련을 떠난 상황에서도 계약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전지훈련 중에 구단 측에서 미계약선수들을 모아놓고 ‘오늘부터 3명씩 협상합니다’라고 하면 이제 협상테이블에 앉는겁니다. 운영팀장선에서 해결할 때도 있고 대표급이나 고참급은 처음에는 운영팀장이 금액을 제시하고 선수가 거부를 하는 것이 2번~3번 정도 반복되면 이제 단장이 나섭니다.구원투수와 같은 개념이죠. 전지훈련에서 동계훈련 하랴 연봉협상하랴 참 힘든시간었습니다.

단장선까지 가면 조금 더 계약이 나을 수도 있지만 그때도 원활치 못하면 구단에 ‘찍힐 수도’ 있죠.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평생 운동만 한 선수들이 논리적으로 경제적 부분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구단과 협상을 하다보면 솔직히 지난 시즌 자신의 활약을 인정해주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속상하고 감정이 상하기도 합니다. 구단 역시 선수가 지나치게 많이 원한다는 듯한 기분에 탐탁지 않죠. 밀고 당기는 협상이 마무리 할 즈음은 프로축구연맹에서 정하는 마지막 날!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는거죠.

선수계약은 지난 시즌 활약을 전제로한 미래에 대한 베팅입니다. 어쩌면 후불제인셈이죠. 선 활약이 우선입니다.

▶1999년 4대스포츠 연봉킹의 이면… 이후 에이전트 시대 돌입

1999년 울산현대와 저의 계약 협상 때가 떠오릅니다. 당대 최고였던 최용수, 외국에서 돌아온 서정원, 1998년 결승전에서 골을 넣었던 저 김병지까지 누가 ‘연봉킹’이 되느냐를 놓고 1999년 초 신경전이 치열했습니다. 그때 서정원 현 감독이 2억원에 계약하자 최용수 감독이 2억 1000만원에, 그리고 제가 2억 2000만원에 사인하면서 4대 프로스포츠 연봉킹 자리에 올랐습니다.

계약서 작성은 구단사무실이 아닌 저의 집이었습니다. 사연은 계약서 작성 마지막 날 오전 구단사무실에서 구단제시액을 듣고 저의 입장을 얘기하고 1년간 쉬어간다는 통보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후 구단에서 입장이 바뀌어 집으로 찾아와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사연입니다.

스포츠한국 DB

‘연봉킹’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뿌듯함을 남기기도 했지만 솔직히 1999년 초 협상당시를 떠올려보면 정말 힘들었습니다. 대리인 없이 저 혼자 울산 측과 협상에 나섰는데 액수 문제를 떠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협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금액에 하자’, ‘안된다’, ‘이건 어떠냐’, ‘안된다’와 같은 말이 반복되면 서로 지치고 감정이 상한채 앙금이 생기게 되죠. 연봉킹 자리에 올랐던 1999년이지만 다시는 그런 연봉협상을 하고 싶지 않았죠.

1995년 FIFA에서 보스만룰(계약이 끝난 선수는 이전 이적료와 관계없이 자유계약이 가능)이 제정되고 한국에도 2000년대가 되면서 이 룰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때 에이전트를 쓰고 나서부터 2000년대 초에는 선수들 대부분이 에이전트가 생기며 연봉협상 문화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에이전트에게 계약을 위임하면서 에이전트가 구단과의 감정싸움을 대신해주는 것이죠. 또한 상대평가, 절대평가, 구단평가와 같은 지표들을 전문적으로 구단에 제시하면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몸값에 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죠.

물론 선수들은 다 압니다. 연봉협상을 하기전 자신이 지난 시즌 얼마나 활약했는지 감을 잡고 있기에 쉽게 체결되는 계약도 다수입니다.

▶울산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단지 금액적으로 만족했던 계약은 두 번 있었습니다. 울산에서 포항을 갈 때(2001년), 그리고 포항에서 서울로 이적할 때(2006년) 였습니다. 아무래도 그쪽 팀에서 원해서 이적이 되었던것, 여러팀에서 이적제시가 되었던 이유로 제가 받는 계약금이나 연봉도 상당히 인상됐습니다. 그런 계약조건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선수로서 팀을 옮겨야하나라는 생각을 느낄 수밖에 없죠.왜 상대팀은 인정해 주는데 우리팀은 인정해 주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덕분에 전 모르긴 몰라도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후반 까지는 K리그 연봉 탑5안에는 꾸준히 들었을 것으로 봅니다. 경기력적인 평가였기에 참 다행스러운 선수생활이었습니다.

얘기하다보니 가장 좋으면서도 나빴던 계약 두건 모두가 ‘울산 현대’와 관련되어있습니다. 솔직히 저에게 울산은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정 가득했고 ‘원클럽맨’으로 남고 싶었던 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봉협상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많이 상하고 2001년 연봉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구단에서는 저를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한일올스타와 세계올스타간의 올스타전을 위해 일본에 있던 동안 포항과 울산은 저의 이적에 대해 협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에 있던 저에게 ‘포항으로 이적하게 됐다’고 사실상 통보를 했습니다. 구단 간의 합의가 됐기에 선수로서 거절할 방법이 없었음에도 저는 ‘울산에서 보내기로 했느냐, 그리고 포항에서 받기로 했느냐’이 두 가지만 물어보고 ‘그렇다’고 대답이 오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울산을 떠나기 싫었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습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선수의 ‘심리적 마지노선’과 연봉삭감의 인정

요즘 아무리 에이전트들이 계약을 대신한다고 해도 연봉협상 과정에서 여전히 선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 많은 구단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면 선택의 카드가 많아지기에 선수들은 ‘계약은 계약’, ‘운동은 운동’이라는 마음가짐이 꼭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수입장에서 구단이 ‘심리적 마지노선’만큼은 지켜줬으면 합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연봉협상을 할 때 ‘심리적 마지노선’을 정합니다. 그 금액까지 지켜주지 않을 때는 선수도 사람인지라 구단에 대한 애정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선수들도 마음가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솔직히 서울시절을 끝내고 경남으로 이적할 때 제 연봉은 꽤 삭감됐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받던게 있는데 삭감이 되면 마음이 흔들리고 받아들이기 힘들죠. 하지만 기량은 퇴화할 수밖에 없고 영원히 고평가만 받을 수 없기에 프로라면 마음을 열어놔야 합니다. 그래야만 베테랑으로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연봉이 깎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할 수 있죠.

▶선수들의 재테크

마지막으로 선수들의 재테크방법에 대해 궁금하시리라 봅니다.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2~3년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다보니 2~3년의 계획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죠. 과소비를 방지해야하고 선후배들의 재테크 성공사례를 꾸준하게 수집해야합니다. 워낙 다른 직업에 비해 수명이 짧다보니 재테크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죠.

과소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자면 신입선수들이 1~2년을 잘 하고나면 연봉에 비해 너무 비싼 차를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때마다 그 돈으로 살고 있는 주변에 저렴하게 나온 땅이 나오면 사두는게 더 좋다라는 얘기를 했던게 기억에 남습니다.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재테크에 실패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꽤 거액의 장기간 연금성 보험을 넣었는데 중간에 해약하게 되다보니 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 중간에 포기했던 것이 뼈아팠습니다. 하하.

최악은 선배가 부탁을 해서 목돈을 빌려줬는데 지금까지도 못 받은 겁니다. 은퇴 후에도 여러 재테크를 해보지만 참 돈과 관련된 일이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노하우를 후배선수들에게 전한다면

1.처음 5년 동안은 적금성으로 목돈을 무조건 모으는것 입니다. 통장 잔고가 늘고 보람이 되다보면 어느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2.연봉의 50% 이상 무조건 저축.은퇴때까지~~
3.자동차 구입은 저축의금액10% 미만 범위내 시기는 군 제대 이후 구입.
4.부동산구입은 직접 알아보고 남의 말만
듣고서 구입은 절대하지 마세요.
5.선수동안 절대 음주금지. 쉽지 않죠? ㅎㅎ

어렵게 번 돈을 알뜰하게 관리 잘 하기를 바랍니다.

김병지 칼럼 : K리그 최다출전자(706경기)이자 한국 축구의 전설인 김병지 前선수는 매주말 스포츠한국을 통해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병지 칼럼니스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이나 스포츠한국 SNS를 통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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