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가스 살처분도 고통..'더 안락한 죽음'은 없을까

2017. 2. 2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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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참여하는 사람 위해서라도 살처분 방식 개선 필요"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전국을 휩쓴 조류 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으로 수많은 가축이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땅속에 묻혔다.

무차별적인 살처분은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은 둘째치고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면 살처분 방식이라도 동물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살처분 방식은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해진 매뉴얼을 따른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소는 근육 이완제를 주사한다. 주사를 맞은 소가 근육이 이완되며 숨을 못 쉬게 돼 죽음에 이르는 방식이다.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는 이산화탄소로 질식시키는 '가스법'을 주로 사용한다. 주로 닭을 일정 크기의 플라스틱 용기에 집어넣고 가스를 주입하거나, 규모가 작은 농장은 닭장에 직접 가스를 넣기도 한다.

돼지는 주사법과 가스법을 둘 다 이용해 살처분한다. 2014년 구제역이 발병했을 때는 가스법을 사용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올해 만약 돼지 구제역이 생겼으면 주사법을 써서 도살처분 했을 것"이라며 "특정 동물마다 방법이 정해진 것은 아니고 현장 상황과 동물의 특성 등을 고려해 살처분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축을 무조건 생매장하던 방식에서 살처분 방식이 인도적으로 바뀐 것은 2014년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10조의 영향이 크다.

동물보호법 10조에 따르면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가스법·전살법(電殺法)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최소화하여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매장에 앞서 가스나 약물을 이용하는 것도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돼서는 안되며, 도살 과정에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동물보호법 조항을 따르기 위해서다.

하지만 학계와 동물 보호단체 관계자들은 여전히 현장에서는 가축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간다고 비판한다.

가스법을 쓸 때는 용기의 밀폐 상태, 가스 주입량과 농도, 동물 수용 밀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고려 없이 '상황에 맞게' 가스 주입이 실시된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닭이나 오리가 제대로 질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매장돼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게 된다.

지난해 AI 파동으로 농가의 산란계를 모두 살처분한 포천시의 한 양계농가 관계자는 "가스를 주입한 후 플라스틱 탱크에 넣어 매장하려는데 일부 닭이 깨어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며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 토로했다.

경기도 관계자 역시 "닭들중 잠시 기절했다 깨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살처분 양이 워낙 많고 시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가스법이 실제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송창선 건국대학교 수의대 교수는 "가스법을 쓸 여건이 안되는 농가가 많아 여전히 많은 살처분 현장에서 닭이나 오리를 구덩이로 몰고 간 후 매장하는 '생매장'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가스는 아직 요식행위에 가깝다"고 말했다.

주사법 역시 가혹한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별도의 마취 없이 실시되기 때문에 주사를 맞은 소는 온몸이 굳고 숨이 멎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다 죽게 된다.

전문가들은 동물을 고통스럽게 죽이면 동물뿐만 아니라 살처분에 참여한 사람까지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에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동물 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유럽에서는 동물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죽음을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밀폐성 등을 갖춘 이동형 살처분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며 "억울하게 죽는 동물의 고통은 고스란히 살처분에 참여한 사람의 트라우마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라도 살처분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지난 20일 현재까지 AI로 도살 처분된 가금류 수는 3천314만 마리에 달한다. 또, 올해 초 발생한 구제역으로 전국 21개 농가에서 1천400여마리 소가 살처분 됐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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