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스타 셰프 전성시대, '진정한 맛'은 어디로 갔을까

2017. 2. 2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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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창조성이 열려
인정과 에고의 집착 버린 게 정관 스님의 요리
정여울작가
최근 몇 년간 요리도 잘하고 유머도 있으며 돈도 잘 버는 ‘스타 셰프’는 예능 프로그램의 빛나는 기대주가 되었다. 스타들의 냉장고에 차곡차곡 숨어 있는 식재료만으로 창조적인 맛을 즉흥적으로 끌어내는 토크쇼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스타 셰프의 현란한 요리 솜씨를 안방에서 속속들이 엿보는 즐거움이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면서도 ‘보통 사람들이 과연 저런 화려한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미쉐린(미슐랭) 스타를 비롯한 ‘최고의 맛집 인증마크’ 또한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이유로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음식점에 가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닌 경우가 많다. 미디어에서 환상적으로 그려낸 ‘눈으로 보이는 맛’이 실제로 우리가 ‘혀로 경험하는 맛’과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그려내는 맛’과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맛’ 사이에 차이가 격심해지면서 우리는 또 다른 소외감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 먹는 음식은 미쉐린 별점과도 거리가 멀고, 스타 셰프의 현란한 요리 솜씨와도 거리가 멀다. 수많은 사람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대충 해결하고, ‘배달앱’으로 간단한 요리를 주문하며, 단골식당에서 7000~8000원짜리 찌개류를 매일 먹는다. 미디어와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화면으로 보여주기 위한 환상적인 맛의 신기루’에 피로를 느끼는 요즘, 정관 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을 보게 되었다.

사찰음식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정관 스님의 요리도 사실 ‘비일상적인 요리’에 속하긴 한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 손을 붙잡고 따라 간 절에서 얻어먹은 ‘초파일 비빔밥’의 맛을 잊지 못한다. 절에 가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나눠주는 그 ‘절밥’의 소박함 속에는 엄마의 집밥과는 또 다른 짙은 향수가 배어 있다. 과연 정관 스님의 요리에는 스타 셰프들 특유의 현란한 자기과시가 전혀 없었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요리평론가 제프 고디너는 이렇게 말한다. 정관 스님의 요리에는 ‘에고(ego)’가 없다고. 인스타그램이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요리를 광고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기에 스님의 요리에는 오직 사람에 대한 관심, 맛에 대한 정성, 수행자로서의 깊은 깨달음이 깃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경쟁이 창조성을 키워준다고 착각하지만 정관 스님은 오히려 경쟁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창조성의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고기도, 생선도, 마늘과 파도 쓰지 못하는데 어떻게 맛을 내나’ 하는 의문을 단번에 날려주는 정관 스님의 요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성과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이 아름다운 다큐멘터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셰프가 아닙니다. 나는 수행자입니다.” 정관 스님은 기계도, 농약도 쓰지 않는 완전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농부이기도 하다. 스님이 직접 재배하는 채소들에 벌레가 달려들기도 하고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지만 스님은 벌레도, 잡초도 생명의 일부임을 알기에 내쫓지 않는다. 벌레와 잡초들의 아우성 속에서 힘겹게 자라난 온갖 채소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완벽하기에.

나는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을 진심으로 배우고, 맛보고 싶어졌다. 빛나는 에고를 지향하는 음식이 아니라 에고를 뛰어넘은 맛을 느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 멋진 나, 더 대단한 나’를 향한 에고의 집착을 뛰어넘은 자리에서 진정한 창조성을 경험하는 맛의 경지를, 아니 맛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사랑과 정성과 깨달음이 되는, 그런 요리를 나 또한 경험해 보고 싶다.

스님에게 요리란 ‘경쟁의 장’이 아니라 깨달음의 섬세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일종의 예술작품이다. ‘나는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에고의 집착을 버린 요리, 단지 맛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타인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스님의 요리에는 비싼 재료도,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지만 인간과 세상을 향한 무구한 사랑과 자비가 깃들어 있다. 단지 당신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요리, 그곳에 진정한 맛의 비밀이 담겨 있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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