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67%서 5%로 .. 불통·비선 논란 속 탄핵 위기까지

김정하.박성훈 2017. 2. 25.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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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해 G20 등 외교효과 최고 지지율
세월호 참사, 정윤회 파동으로 위기
친박·비박 내전에 보수민심도 이탈
최순실로 최후 보루 도덕성 무너져
"의회 무시한 70년대식 국정운영 탓"

━ 박 대통령 취임 4주년

박근혜 대통령이 우울한 분위기 속에 25일로 취임 4주년을 맞는다. 1987년 개헌 이후 첫 과반 득표 대통령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에 운명을 맡긴 신세다.

박 대통령은 오는 27일 헌재의 최종변론에 출석해 탄핵 사유에 대해 소명할지를 두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 전에 자진 하야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아 박 대통령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중도 퇴진 위기로 몰린 건 1차적으로 최순실 게이트가 원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집권 기간 내내 이어진 비타협적 독주정치가 화근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집권 첫해부터 야당의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파상공세에 시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60%대를 유지했기 때문에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통치 스타일이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본격적 위기를 만났다. 야권이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무능이 빚어낸 타살”이라며 총공세에 나서자 박 대통령은 ‘해경 해체’ 같은 극약처방을 동원하며 위기 탈출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민심은 박 대통령을 버리지 않았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최대 승부처였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9대 8로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에 근소하게 밀렸으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승리했다. 뒤이은 7·30 재·보선에선 11대 4로 새정치연합에 압승을 거뒀다. 이에 박 대통령은 세월호 위기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탄력을 받은 박 대통령은 야당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나섰다.
그러나 2014년 연말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지면서 박 대통령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박 대통령 주변에 떠돌던 ‘비선 실세’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초반대로 급락했다. 2015년 2월엔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 대통령과 관계가 껄끄러운 유승민 의원이 당선됐다. 이미 2014년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이 비박계 김무성 의원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는데 원내대표마저 비박계가 장악하면서 박 대통령은 여당으로부터 고립되는 처지가 됐다.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던 박 대통령은 공무원연금법 협상 과정에서 유 의원이 청와대 방침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 의원에게 압박을 가해 원내대표직에서 몰아냈다. 이후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노골적으로 유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 축출에 나섰고, 이는 당시 김무성 대표가 공천장에 찍을 직인을 갖고 잠적하는, 이른바 ‘옥새파동’이라는 초유의 난장판을 초래했다. 당 지지층조차 계파 갈등에 염증을 느끼게 만든 계기였다. 이런 탓에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당초 예상과는 정반대로 122석에 그치면서 1당을 민주당(123석)에 빼앗기는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박 대통령에게 있어 정작 문제는 총선 이후였다.

“총선 뒤 야당과 협치했으면 달라졌을 것”

여권 관계자는 “총선 이후에라도 박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현실을 인정하고 야당과 파트너십을 형성했으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등의 사안에서 종전처럼 야당의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반대 진영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박 대통령의 마지막 보루였던 ‘도덕성’까지 무너뜨리며 정권을 순식간에 붕괴 상황으로 몰고 갔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박 대통령은 집권 4년 동안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수직적인 관계로 일관하면서 국정 파트너로 여기지 않았다”며 “의회정치를 무시하고 1970년대식 국정 운영을 한 게 지금 상황을 빚어냈다”고 말했다.

김정하·박성훈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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