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금지 무기까지..북, 9년 만에 또 테러지원국 되나

쿠알라룸푸르 | 심진용·김진우 기자 입력 2017. 2. 24. 21:10 수정 2017. 2. 2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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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말레이시아 경찰청장 “VX 검출”…국제사회 고립 가속화
ㆍ출처·제조국은 안 밝히고, 부총리 “북한과 외교관계 재검토”
ㆍ북, VX 비축 가능성 커져…한국 정부 “화학무기 사용 경악”

“이 (신경)가스는 화학무기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24일 쿠알라룸푸르 제2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자신 명의로 된 경찰 발표문을 통해 김정남 시신에서 유독성 신경작용제 VX가 검출됐다고 밝힌 직후다. 발표문에도 “VX는 유엔 화학무기금지협약에 따라 화학무기로 분류된 물질”이라고 적시했다. VX가 국제협약상 ‘금지된 화학무기’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사안을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는 다만 이 물질의 출처가 어디인지, 북한에서 제조된 것인지 등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세계 언론들도 ‘금지된 화학무기’가 사용된 점을 집중 보도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더욱 강경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화학무기는 핵·생물학무기와 함께 대량살상무기(WMD) 중 하나로 분류된다.

화학무기의 대명사인 VX는 1952년 영국 과학자들이 살충제로 개발했으나 인체에 치명적이어서 상업적 용도의 사용·판매가 중단됐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냉전 시절 화학전 무기로 개발·비축했다. 1988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VX를 살포, 수천명이 숨졌다. 이는 미국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개발·보유 의혹을 주장하는 최대 근거 중 하나였다.

국제사회는 1990년대 들어 VX를 화학무기로 규정하고, 생산·비축을 금지해왔다. 1993년 금지협약이 채택돼 1997년 발효됨에 따라 각국은 VX를 폐기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12년 폐기를 완료했다. 러시아도 쿠르간 지역 화학무기 시설의 VX 비축분을 폐기했다. 금지협약 가입국이 아닌 북한은 이 물질을 비축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한국 국방부는 2014년 북한이 2500~5000t의 화학무기를 비축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로 북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김정남 살해에 북 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지목된 데다 화학무기를 썼다는 의심까지 받게 됐다. 아흐마드 하미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이날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미 미국 의회에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일반 테러와 달리 외교관이 개입한 국가 주도 테러인 만큼 명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은 22일(현지시간)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강력 지지한다”고 밝혔다.

VX 사용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미국 의회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사람 많은 국제공항에서 금지된 화학무기로 다중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였으므로 재지정할 명분은 충분한 셈이다. 현재로선 사건 이후 추가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VX 가스가 옷 등에 묻었을 경우 30분 이내에 노출된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KAL) 항공기 폭파 사건을 일으켜 이듬해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으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핵 검증에 합의하면서 2008년 11월 명단에서 빠졌다. 현재는 이란·시리아·수단만 남아 있다.

27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34차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의에서도 김정남 피살 문제가 안건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화학무기가 인명살상에 사용된 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화학무기금지협약 및 관련 국제규범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히 공동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알라룸푸르 | 심진용·김진우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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