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서의동의 사람·사이-육아멘토 서천석]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세요

서의동 선임기자 입력 2017.02.24. 20:27

[경향신문]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이 지난 15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육아와 한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 소장은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는 ‘겸손한 육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아이 키우기만큼 한국인을 괴롭히는 문제가 또 있을까. 첫돌 갓 지난 아이를 사교육 시장에 내보내는 부모 마음도 그리 기꺼울 것 같진 않지만, ‘내 아이는 사교육 안 시킨다’고 결심한 부모들도 편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지는 못한다. 먹고살기 바빠 사교육은커녕 아이 얼굴 제대로 보기 어려운 가정도 숱하다. 아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총력육아시대’지만 어른이 되기 싫은 아이도 그만큼 늘어나는 혼돈상태다. 잘 키워야 한다는 부모의 조바심이 지나치다보니 아이가 ‘감정의 하수구’가 되기도 한다.

‘육아멘토’로 통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장(48)은 아이 키우기에 대해 ‘쾌도난마’의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꾸준한 관찰과 대화로 필요하면 진단을 조금씩 수정해가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려 애쓴다. 누구든 육아에 정답을 가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천석은 방송과 강연, 소셜미디어를 통해 육아와 사회문제에 대해 활발히 소통해왔다. 공동육아를 직접 조직하고, 교사모임을 만들어 학교 울타리 속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보는가 하면, 촛불집회에 나가기도 한다. 육아의 바탕에 사회문제가 있는 만큼 그의 관심범위는 사회 전반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서천석을 만나 아이들과 부모 및 교사, 한국 사회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는 ‘겸손한 육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이와 부모 모두 불행해진다고 본다. 대신 공동체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환경을 정부와 사회가 궁리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체 복원을 돕는 인력을 마을에 두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 부모가 행복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불행

- 강연이나 방송,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발신하는 것 같다.

“사회가 육아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니, 그런 점에서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긴 하지만 실제 활동은 적은 편이다.”

- 아이 문제는 한국 사회의 주요 관심사이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정답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육아서가 본격적으로 출간되고 방송에 육아전문가들이 나오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초반이니 한국 사회가 아이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 갖게 된 건 25년쯤 됐다. 87년체제 이후 개인의 욕구가 중시되면서다. 하지만 아이를 중시하는 문화를 접한 이들이 부모가 된 첫 세대여서 아직 육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지 않은 것 같다.”

- 한국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건 국제비교로도 확연하다.

“부모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래 갖곤 안돼’라는 식으로 불행한 감정을 아이에게 옮긴다. 한편으론 ‘아이 마음을 이해하며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생각과 ‘아이를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렇게 지치고 힘든 감정이 아이에게 전이된다. 1970~1980년대 조사라면 지금처럼 불행감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 성장하던 시대였기 때문인가.

“그렇다. 생활형편이 점점 나아지고 고용사정도 나쁘지 않아 부모의 마음풍경이 그리 어둡지 않았고, 아이들도 그런 부모를 보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요즘 초등학교 3~4학년생에게 물어보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가 10명 중 1명도 안된다. ‘엄마, 아빠가 사는 게 힘들어 보이고 책임만 커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천석은 “육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부담감”이라고 했다. “부모가 아이와 만나는 순간에 충실해야 하지만 ‘잘해줘야 한다’는 부담 탓에 오히려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면 아이는 바로 알아챈다. ‘나에게 관심없다’고 생각하니 반항심이 생기고 일이 꼬인다.”

- 외국의 부모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나.

“외국 육아서적이나 논문들을 보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독일에서 ‘번아웃키즈’라는 말이 등장했다. 미국 엄마들의 블로그를 보면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힘들고 지친다’ ‘이렇게까지 키워야 하나’ 하는 하소연이 넘친다. ‘육아고민의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 어릴 땐 땀 흘려 뛰어노는 게 중요한데도 요즘 아이들은 게임이나 웹툰을 보며 논다.

“거주공간이 변했고, 부모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아이들이 위험해질까봐 밖에 내놓기가 쉽지 않다. 게임은 다칠 위험이 없으니 부모도 안심한다. 아이들이 ‘가상 공간’으로 쫓겨난 것이다. 요즘 아파트는 부모 감시가 가능한 놀이 공간이 있어 좀 낫지만 단독주택이 많은 저소득지역은 부모가 일하느라 방치된 아이들이 집 안에서 게임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 사회의 관심도 중산층 아이들에게 집중돼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사교육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다수가 아니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방치된 채 자라는데 언론들도 관심이 많지 않다. 평균적인 아이의 삶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정부가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 지자체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이를 데리고 올 여력이 있는 이들만 혜택을 본다. 일 때문에 이용할 수 없는 가정이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인력 투자가 필요하다.”

■ 잡무에 치여 아이를 못 챙기는 교사

서천석은 학교 안 아이들과 교사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학교행정에 대해 비판적이다.

- 교육투자가 늘어났지만, 교사들이 아이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문화가 있다고 한다.

“젊은 교사들을 만나보면 개개인의 능력이나 의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지만 학교에 들어온 뒤 금방 무너지는 것 같다. 보통 직장이라면 일하면서 점차 책임감과 철학이 생기고 성장하는데 학교조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 왜 그런 건가.

“교육철학을 다지거나 교육기법을 연마하는 걸 개인에게 맡겨버리는 식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다행이지만 안 해도 내버려둔다.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교사의 상태가 좋아야 하는데 학교로부터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교사 모임에 갔더니 한 초등학교 교사가 ‘4학년을 처음 맡는데 학년부장과 과학부장 보직을 한꺼번에 시키더라’고 했다. 이러면 의욕을 잃고 실력도 쌓지 못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 방법이 없을까.

“교육개혁의 핵심은 수업, 즉 교사가 아이를 만나는 시간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다. 젊은 교사들이 잡무에 치여 아이들을 챙기지 못해도 교장·교감, 교육당국은 ‘나 몰라라’ 한다. 행정을 전담하는 교사직렬을 만들든가 하는 식으로 교사가 수업과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 청소년기 ‘질풍노도’를 닮은 한국 사회

서천석은 최근 들어 연대와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방송사 주최 강연에서는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하고 중요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느꼈다”며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 정치상황을 보면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도 한국 사회가 좋은 상태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이 그토록 ‘병든 사회’는 아니고, 오히려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사회인 것 같다. 촛불집회로도 확인되지 않았나. 다만 젊다보니 청소년기 ‘질풍노도’처럼 움직이는 문제가 있다. 세련돼 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 노동현실을 보면 ‘당일배송’을 하느라 조바심 치는 택배기사의 고충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빨리빨리’ 풍조가 사람을 힘들게 한다.

“건강하지 않다. 빠르게 움직여야 생존에 유리한 시대를 겪었고, 그 덕에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염증을 내고 있으니 변화할 것 같다. 무릎 꿇고 주문받는 과잉서비스가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물론 규제도 필요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더 나은 삶의 지수를 보면 한국이 ‘공동체 생활’과 ‘일과 삶의 균형’에서 최하위권이다. 속도가 빨라진다고 삶의 행복감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이 깨달아가면서 바뀌지 않을까.”

- 우리 사회는 ‘과정의 미학’이 부족한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생의 학교 가는 길을 소재로 방송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어떤 아이는 학교 오는 길에 본 가로수, 다른 아이는 골목길, 또 다른 아이는 길에서 만난 강아지 얘기를 하더라. 사람 경험이 각기 다르고, 그래서 마음대로 단정하면 안된다는 걸 배우는 것도 교육이지만, 우리 교육은 ‘학교 갈 때 차 조심해라’ 같은 몇 개의 정리된 항목을 외우도록 하는 식이다. 나머지는 ‘잡담’으로 간주해 버린다. 최종 정리된 공식이나 요약적 지식만 가르치는 게 전부라면 공교육은 망할 수밖에 없다.”

- 강연에서 공동체와 연대를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육아가 왜 힘들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아이를 부모만이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부모가 키우라는 건 사회적 책임을 줄이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게 힘들다 보니 아이를 안 낳는 거다. 얼마전 트레킹을 갔는데 절벽을 잇는 다리에 난간이 없었다. 겁이 나서 경치도 둘러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걸어야 했다. 공동체가 없는 삶이 꼭 그렇다. 불안에 시달리고 현실을 즐기기 어렵다.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 보듯 국가안전망도 관료주의화되고 있지 않은가. 현대에 맞는 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면 육아도, 개인의 행복도 어렵다.”

-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방안이 있나.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갈등을 해소할지를 돕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연결하는 길과 다리를 만드는 ‘사회간접문화자본’이 필요하다. 기업의 퍼실리테이터(조력자) 같은 이를 마을에 두는 것이다. 정부가 그런 곳에 투자할 때가 됐다.”

■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 버려야

-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 키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유사 이래 가장 격렬한 ‘집중양육’의 시대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 늘어났지만 그래도 부족함을 느낀다. 다만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편차를 메우기 어렵다는 깨달음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안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육아’로 가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자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고, 아이가 장래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다. 오늘 이 순간에 아이에게 충실하는 게 ‘겸손한 육아’다. 한계를 인정하는 걸 배우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덕목은 뭔가.

“공동체를 벗어나 독립적 개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이 필요하다. 또 사회와 속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인정받기 위해 높이 올라가려다 실망하고 내가 상처 주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다. 멈춰서서 생각하지 않으면 휩쓸려 잃어버리는 게 많아진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뭔지’를 응시하는 시간을 때때로 가질 필요가 있다.”

- 아이들은 육아철학에 걸맞게 크나.

“내 생각대로 자라는 것 같진 않지만, 그걸 보면서 오히려 배우게 된다. 나의 장점이라면, 모르면 배우고 잘못은 빨리 인정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잘난 체하면 안된다.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안되면 생각을 바꿔가면 된다.”

<서의동 선임기자 phil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