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내비게이션 있어도 안 쓰는 택시기사들

오주환 기자 2017. 2. 2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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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택시 기사 이모씨는 15일 승객을 태우고 두 번이나 엉뚱한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서부경찰서에 가 달라"는 승객의 말을 듣고 처음 이씨가 찾은 곳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은평경찰서였다.

5년차 택시 운전사인 윤모(37)씨는 "예전에는 돌아간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 승객에게 늘 '어느 길로 갈까요'라고 먼저 물었는데 이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정해준 길로 가는 게 서로 속 편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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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길 더 잘 안다" "조작이 어렵다" 기피 이유도 가지가지

60대 택시 기사 이모씨는 15일 승객을 태우고 두 번이나 엉뚱한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서부경찰서에 가 달라”는 승객의 말을 듣고 처음 이씨가 찾은 곳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은평경찰서였다. 승객이 “잘못 왔다”고 말해도 이씨는 “은평경찰서로 가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승객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보이며 애초 목적지는 서부경찰서였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이씨는 금세 자신감을 찾았다. “서부경찰서면 뭐”라며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은평구 녹번동의 옛 서부경찰서 자리였다. “경찰서가 언제 이사했느냐”고 재차 묻던 이씨는 그때서야 택시에 장착돼 있던 내비게이션을 켜고 대조동 서부경찰서를 찾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택시 기사와 승객 간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내비게이션 때문에 기사와 승객이 드잡이하며 경찰서를 찾는 경우도 있다.

본보 취재진은 지난 12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택시 20대를 탔다. 모든 차량에 내비게이션이 설치돼 있었다. 이 중 16명의 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비게이션에 손도 대지 않았다. 20년 넘게 택시를 몰았다는 한모씨는 “뻔히 아는 길을 놔두고 내비게이션을 누르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데이터 사용량이 오를까봐 내비게이션을 꺼두는 이들도 있었다. 16명 중 10명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몰라 승객에게 길을 물었다. 내비게이션을 사용한 기사는 4명이었다. 그나마도 3명은 승객이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자 마지못해 내비게이션을 눌렀다.

특히 60, 70대의 고령 기사들은 내비게이션 조작이 어렵다고 불평했다. 70대 변모씨는 “내 또래 택시 운전사들은 승객이 주소를 불러줘도 기계에 입력하는 데만 한참 걸린다”고 전했다.

성중기(무소속, 강남1) 서울시의회 의원이 지난해 6월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택시 운전사의 50.94%인 4만3429명이 60세 이상이었다. 70세 이상도 8137명으로 9.54%에 이르렀다.

“왜 길을 돌아가느냐”며 승객과 택시 운전사가 경찰서까지 찾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경찰 관계자는 “요금이 평소보다 비싸게 나왔다며 승객과 택시 운전사가 다투는 일은 매일 밤 있는 흔한 일”이라며 “빠른 길의 기준이 없어 누구 말이 맞는다고 편들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택시물류과 관계자도 “하루에도 2∼3건은 택시가 길을 돌아간다는 민원이 들어올 만큼 승객이 운전사를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승객과 다투지 않으려고 무조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로만 움직이는 운전사도 있었다. 5년차 택시 운전사인 윤모(37)씨는 “예전에는 돌아간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 승객에게 늘 ‘어느 길로 갈까요’라고 먼저 물었는데 이마저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정해준 길로 가는 게 서로 속 편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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