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청년상인 육성'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나

주형식 기자 2017. 2. 2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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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청 지원 끊기자 50% 폐업.. 무슨 일이?]
-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일자리창출·시장 살리기 위해 전국 20개 시장 점포 218곳, 최대 1년 2500만원씩 지원
"유동인구 적어 카페·식당 안돼" 지원금으로 임차료 내고 버텨

지난 21일 오후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시장에 있는 '청년 상인 드림몰'. 작년 6월 중소기업청이 '청년 일자리 창출'과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지원금을 주고 청년이 운영하는 점포들을 입주시킨 곳이다. 그러나 불과 8개월 만에 과일 주스 가게 '열대의 오후'처럼 20·30대 젊은 점주(店主)들이 운영했던 점포 10곳 가운데 9곳이 문을 닫았다. 이날 시장을 찾은 대학생 박모(26)씨는 "친구가 전통시장에 청년들이 운영하는 점포가 있다고 추천해서 왔는데, 1년도 채 안 돼 거의 다 폐업해 황당하다"며 발길을 돌렸다. 폐업한 청년 점포 옆에서 수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윤모(59)씨는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원래 카페나 음식점을 운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며 "정부가 왜 이런 곳에 청년 점포들을 입주시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전광역시 중구 유천시장에 있는 청년 점포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17일 오후 이곳에 갔더니 중기청이 입주시킨 청년 점포 10곳 중 5곳이 폐점한 상태였다. 굳게 닫힌 유리문 위에 '임대 놓습니다' '더 이상 운영하지 않습니다'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직 이곳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청년 상인 김모(33)씨는 "종업원 없이 혼자 영업하면서 적자만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라서 힘들다. 다음 달에 가게를 정리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중기청은 작년부터 용현시장과 유천시장을 비롯해 전국 20개 시장의 청년 상인 점포 218곳에 총 47억원을 지원했다. 지원 기간은 최대 1년이고 점포당 2500만원까지 지원됐다. 청년이라는 취지에 맞춰 지원 대상은 만 39세 이하로 선발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중기청의 지원금이 끊긴 지난달에만 48곳이 운영을 포기했다. 지원금을 받은 5곳 중 1곳꼴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원금이 없으면 적자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동안 지원금으로 임차료와 인건비 등을 지급하며 근근이 버텨왔지만,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현재 장사를 하고 있는 청년 점주들 역시 "점포 입지가 나쁘기 때문에, 지원금만 믿고 뛰어들었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구로시장의 한 청년 상인은 "주 고객층인 젊은이들이 성수기엔 강남, 홍대 같은 번화가를 찾아가지 굳이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며 "영업 부진으로 그만두려고 했는데, 중기청 지원금이 끊긴 뒤에도 서울시가 올해 9월까지 월세 45만원을 전액 지원해준다고 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했다.

서울 인현시장도 마찬가지다. 한 청년 상인은 "7곳의 점포가 들어섰는데 한 곳은 재계약을 포기하고 나갔다"며 "주변에선 인현시장하면 인쇄소 골목으로만 알지, 청년들이 하는 가게가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인천 동구 중앙시장의 한 청년 상인은 "10곳 중 5곳이 살아남았는데, 유동인구가 하루에 200~300명 수준으로 적기 때문에 지원금이 끊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청년 점포가 성공하지 못했는데도 중기청은 새로운 '청년 상인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 14개 시장에서 장사를 할 청년 상인 점포 301곳을 선발해 지원하는 '청년몰'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청년몰(mall)이란 전통시장 내에 청년 점포 20곳 이상을 모아 쇼핑몰처럼 꾸미겠다는 것이다. 중기청은 청년몰 1곳당 2년간 최대 7억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실패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 예산만 쏟아붓는 중기청에 대해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인기 영합적인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기청 지원을 받았던 한 상인은 "초기 비용만 지원해주는 게 능사가 아니다"며 "청년 상인들이 지역 상인들과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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