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흥미 없어".. 질문 사라진 교실

입력 2017. 2. 24. 03:03 수정 2017. 2. 2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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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어교육硏 학생언어 분석

[동아일보]

다음 달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들을 둔 주부 이모 씨(44·경남 창원시)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개학이 두렵기만 하다. 지난해 말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와의 상담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다.

“평소엔 활달한 아이가 수업만 시작되면 질문을 전혀 하지 않아요.”

만점도 곧잘 받던 아이의 시험지에 오답이 늘기 시작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 씨는 “집에선 시끄러울 정도로 밝은 아이가 왜 수업시간에 조용해지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혹시나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라고 털어놨다.

이 씨의 우려는 기우(杞憂)가 아니다. 교실에서 질문하지 않는 아이는 수업에서 멀어진다. 2002년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질문을 하지 않으면 학업 성취도도 떨어진다. 7주 동안 중학교 다른 학급에 각각 평범한 수업과 질문을 유도하는 방식의 수업을 진행한 후 17문항짜리 시험을 치른 결과 ‘질문 강화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평균 2.8문항을 더 맞혔다.

하지만 우리 교실에서는 교사에게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드는 학생이 드물다. 23일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가 9∼19세 학생 3429명의 언어문화를 분석한 결과 1주일 동안 질문을 3회 이하로 하는 학생이 과반인 58.4%에 달했다. 질문을 단 한 번도 안 하는 학생도 16.2%였다. 반대로 질문을 10회 이상 하는 학생은 18.3%였다. ‘손 드는 소수’와 ‘입 닫은 다수’가 같은 시간 같은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모습. 우리 교육의 현주소였다.

○ 질문 잃은 아이들이 흥미도 잃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침묵은 더 깊어진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5.6%였던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27.9%까지 뛰어오른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 A 씨는 “대입 준비로 바쁜 고등학교 3학년 수업에 들어가면 나 혼자 떠들다 나가는 ‘독백 수업’을 했다는 느낌까지 받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조차 ‘질문이 사라진 교실’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수업시간에 아이가 낙서를 하고 있어 가 보니 교과서에 물음표를 잔뜩 그리고 있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언제든지 편하게 질문하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뭘 질문해야 할지 몰라서’와 ‘창피 당할까 봐’를 질문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을 넘어서면 ‘관심과 흥미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큰 이유로 올라선다. 친구와 교사 눈치를 보며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아이들이 수업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연구진과의 면담에서 질문하지 않는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은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서 다 풀어서 알고 있는 문제를 나만 몰라서 질문하는 것 같아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친구 눈치를 보며 침묵하던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쯤 되면 “선생님이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그냥 귀찮다”는 이유로 질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 교실 안팎서 ‘눈치 문화’ 깨뜨려야

교사들은 “친구들 눈치를 보다 수업이 끝난 뒤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면 그마저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교사 B 씨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비뽑기까지 만들어 질문을 유도해 봤지만 아이들의 질문도 그때뿐이었다.

연구를 진행한 민병곤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정보의 홍수시대에선 답을 찾기보다는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창의적 역량인데 우리 교실은 여전히 ‘눈치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교사 각자가 교실의 권위적인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실이 살아있는 질문 수업’이라는 책을 쓴 현직교사 양경윤 씨는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에게 질문을 미리 만들어 보도록 하면 질문 참여도와 수업 집중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질문하지 않는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는 “학교 다녀온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라는 안부 인사를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로 바꿔도 아이들의 질문 습관을 크게 바꿀 수 있다”고 조언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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