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지 못한 군대는 강도떼나 다름없다"

정희상 기자 2017. 2. 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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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24일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사진)는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19년 동안 국방부와 싸웠다. 국가기관이 순직 처리를 권고했지만, 국방부는 거부했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241GP 벙커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망사건은 대한민국 군대 인권의 상징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대 의문사 문제가 공론화됐고, 군 인권 문제에 대한 제도개선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군 당국이 3차례에 걸쳐 자살이라고 처리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대법원과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 등은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진실 규명 불능)고 보았다.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씨(74·예비역 육군 중장)는 19년째 아들 죽음의 진실을 둘러싸고 국방부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훈 중위의 유해는 아버지가 1군단장으로 재임하며 관할했던 경기도 고양시 1군단 헌병대 영현창고에 방치되어 있다. 김척씨를 만나 국방부와 치르는 험난한 전쟁기를 들었다.

ⓒ시사IN 신선영

김훈 중위가 떠난 지 19년이 지났다.

남들은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가슴에 묻는다는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된다. 그게 묻히는 게 아니라 가슴속에 살아서 계속 뛰고 있다. 아내는 고속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집에서도 마음대로 울 수가 없으니 고속도로에 가서 통곡을 하다가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또 훈이 동생은 형을 잃었다는 고통이 심하고 내 어머니를 포함해서 모든 가족들이 정말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며 가정이 파탄되는 분위기 때문에 정말 사람답게 살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19주기 추모제를 준비하지만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이제 와달라고 말도 못한다.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 더 그렇다.

무엇에 가장 분노하는가?

평생 군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 또 그 아버지를 따라 헌신하겠다고 입대한 아들을 두고서, 이렇게 아버지를 왕따시키고 자식을 아주 무능하고 허약해서 군복무에 적응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처리했다. 우리 가족은 국가의 그런 부당한 조처에 대해 너무 억울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죽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잊고 노후를 평안히 보내라는 말도 듣지 않나?

내가 살면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게 잊으라는 말이다. 며칠 전에 만났던 내 육사 동기생과 선배들이 위로한답시고 “이제 그만 잊어야지. 잊어야 다른 사람들이 살지”라고 하더라. 나는 거기에 분노한다. 요즘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서도 잊으라고 한다는데 그런 태도에 대해서 나도 분노가 치밀어오르더라. 그 엄마 아빠와 형제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다른 사람들이 잊으라고 아무리 강요해도 그건 부모가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못한다. 진상 규명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부모들도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남은 길이 아무리 어렵고 철벽같아서 싸우다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런 각오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군 장성 출신으로서 이런 전쟁을 치르는 데 대한 국방부의 반응은?

달걀로 바위를 치며 싸움하는 격이었다. 군에서는 아무도 돕지 않았다. 유족은 대한민국 국가가 그리고 국방부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다들 오직 자기 출세를 위해서, 영달을 위해서 국민과 전우들의 가족을 깔아뭉갰다.

군에서는 김척 장군이 지휘하던 사단과 군단에서는 의문사가 없었느냐고 힐난했는데?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비열하기 짝이 없는 모략을 했다. 나는 월남전 참전부터 최전방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다. 그 공로로 역대 대통령 표창을 포함해 월남무공훈장, 보국훈장을 받았다. 또 클린턴 정부 시절 내가 3군 부사령관으로 있을 때 한미연합사에서 미국 텍사스에 파견해 합동훈련을 하면서 미군 훈장도 받았다. 이렇게 정말 목숨 걸고 국가를 지킨 군인 가족한테 국가가 이럴 수 있나.

김훈 중위 유해는 벽제 헌병대 창고에 아직도 방치돼 있나?

지금 훈이 유골함이 있는 벽제가 군 의문사의 상징적인 장소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죽었는데 한 뼘 남짓 창문 하나 크기에 유골함을 만들었다. 그곳을 찾아갈 때마다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는 하나다. 김훈 중위처럼 억울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바라는 건 순직 처리가 아니다. 진상 규명이다.

김훈 중위 사망 당시 지휘책임자인 김동신 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김척 장군과 육사 동기생 아닌가.

맞다. 내 동기생인 김동신 대장이 판문점에서 훈이 직속상관이자 사건 조사 한국 측 대표였다. 그런데 김동신 장군은 전우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국방부를 포함한 전 군에 권총 자살이라고 상황 전파를 했다. 그때 김동신 부사령관이 그렇게 명령한 문서도 확보했다. 국방부는 그에 따라 모든 출입기자들한테 권총 자살이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니 그날 12시20분에 훈이가 권총 사망자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뉴스를 통해서 오후 4시44분 권총 자살로 퍼진 것이다. 그때 퍼뜨린 권총 자살이 나중에 군 조사 결론으로 굳어졌다.

초동수사가 엉망이 된 이유는?

권총 사건에서 중요한 건 누구 손으로 총을 쐈나 하는 것이다. 그걸 밝히려면 김훈 중위 주변 사람들도 조사해야 되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 소대원들이나 다른 사람들, 최초 발견자나 같은 방 쓰던 사람 같은 관련자들한테도 처음에 증거를 압수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 엉터리 수사였다. 김훈 중위를 제외하고 아무도 알리바이 조사를 안 했다. 진술서는 다 같이 모여서 작성하고 과학적인 팩트, 증거는 하나도 감정 의뢰한 게 없다. 그런 조사를 하고 나서 자살로 발표했다.

고 김훈 중위(오른쪽)의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1군단장 재직 시절의 김척 장군.

진상 규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온 가족이 전역병들을 만나려고 전후방을 쏘다녔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지만 성과가 있었다. 김훈 중위 사건 배경이 된 소대원의 이적 행위(적공조와의 내통)가 전 국민한테 알려졌다. 또 우리나라에 권총 전문가가 없으니까 미국에서 찾은 저명한 총기 사망사건 부검 전문가가 노여수 박사였다. 노 박사로부터 과학적 타살 소견이 나오면서 국방부 차원의 특별조사단(특조단)이 다시 꾸려졌다. 그러나 특조단 역시 군사작전식으로 재조사를 한 뒤 자살 결론 굳히기로 묵살해버렸다.

그 과정에 진실 규명을 돕던 군 관계자는 없었나?

김훈 중위 사건 배경이 된 판문점 군기 문란은 부대원들만이 아니라 김훈 중위 동기생들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들이 군에 당할까 봐 말을 못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이 김훈 중위 사건 관련 동기생들을 만나고 나면 군에서 보안검사를 한다고 전부 책상을 뒤졌다. 내 아들 죽음의 진상을 밝히다가 그 동기생들이 다치면 안 되니까 손을 떼게 했을 때 가슴이 아팠다.

군의 거듭된 자살 결론에 맞서서 법정으로 끌고 갔는데?

우리가 직접 범인을 지목할 수가 없으니 형사소송은 안 되고 민사소송만 가능했다. 대법원에서 김영란 대법관이 김훈 중위 사건 주심 판사였다. 김 대법관은 군 헌병대의 초동수사가 잘못돼서 타살 정황을 전부 묵살한 점을 질타하고 초동수사 잘못으로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유족에게 고통을 안겼으므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확정판결했다. 그 뒤 우리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국방부에 내고 김훈 중위 명예회복을 요구했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2007년 대법원은 “초동수사를 담당한 군사법경찰관은 현장 조사와 현장 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품을 확보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대원들에 대한 알리바이 조사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 형식적으로 하는 등 그 잘못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초동수사는 수사의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아니한 채 행하여진 것으로서 경험칙과 논리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일견 명백한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라고 판결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등 다른 국가기관 두 곳도 국방부 자살 결론을 배척했는데?

군의문사위가 3년간 조사했다. 군의문사위는 조사 결과 “우리는 자살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현행 법규상 범인을 지목하지 않으면 진상 규명을 할 길이 없어서 진상 규명 불능으로 처리하고자 한다”라고 알려왔다. 군의문사위는 군에서 주장한 자살 징후나 동기는 전부 허위로 밝혀져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유족으로서는 한참 기대에 못 미친 결론이었다.

권익위가 나선 배경은?

2010년 SBS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아버지의 전쟁 2편>이 나왔다. 그 방송에서는 과학적인 검증을 더했다. 1998년에 노여수 박사가 왔는데 그 후 또 3차례에 걸쳐 군부대에서 권총 발사 실험이 있었다. 그 시험 자료를 가지고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총기 전문가한테 조언을 구한 것이다. 미국 총기 전문가는 김훈 중위가 타살되었다고 답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김훈 중위 동기생들 15명이 권익위에 ‘김훈 중위 순직 요청서’를 냈다. 마침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이를 받아 군 인권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라 보고 조사를 시작했다. 권익위까지 국방부와의 싸움에 나서서 과학적으로 타살을 입증했다. 이후에 계속 권총 발사 실험을 했는데 총을 쏜 사람의 손에 화약흔이 나타난 것이다. 김훈 중위는 손에 화약흔이 없었다. 군의문사위가 국방부의 자살 징후 조작을 확인했다면 권익위는 과학적 실험과 증거를 통해 이 사건이 타살임을 입증했다는 점이 큰 성과였다. 그 당시 상처나 총을 쏜 모습, 방향, 피가 튄 정도까지 다 조사해서 타살임을 입증했다. 다만 범인 지목은 안 됐다. 그래서 권익위가 2012년 8월6일에 국방부에 김훈 중위 순직 권고를 했다.

ⓒ시사IN 자료 군의문사 사건 유가족들이 벽제 헌병대 창고에 마련된 사망 군인 유골함 봉안실에서 오열하고 있다.

그 뒤 어떻게 됐나?

국방부는 권익위에 “정신질환자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라면서 김훈 중위를 정신질환 자살자로 몰았다. 어이없는 태도에 국회에서는 국방부에 “김 중위가 정신질환자였다면 병원 정신과에 다녀온 근거가 있을 거다. 진단서나 약 먹은 증거를 가져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정신질환이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거기서 끝이었다. 김훈 중위가 육사 52기이고 내가 육사 21기다. 나와 아들의 육사 동기생들과 육사 총동창회에서 나서서 “김훈 중위 수사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순직 처리해라. 그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고 군대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국방부는 순직 처리를 거부했다. 국방부는 아직도 자살이라고 한다.

장성 출신으로서 군의 현실을 보고 느낀 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이렇게 물었다. “정의가 없는 국가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의롭지 못한 군대는 강도떼나 다름없다. 강도떼가 어떻게 국민의 군대가 될 수 있나? 진실을 조작한 자들을 찾아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 안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기를 사오는 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병사들에게 ‘내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가는데 내 한 몸 바쳐서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 하는 충성심과 애국심을 만들고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군에 온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게 말이 되나? 국가를 운영하는 지휘부들이 자기 영달만 위하고 진실 규명 요구를 깔아뭉갠 채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그래서 내가 정의를 찾고 자유를 찾으려 한다. 이제는 지난 19년의 전쟁을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절대 억울하게 죽은 사람한테, 또 그 유가족에게 참으라고 강요하지 말라. 진실을 밝히고 그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썩은 것도 바로 그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군 의문사 유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 엄마 아빠들은 행복하지 않다. 김훈 중위처럼 우리 아들이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장군 출신인 나도 이렇게 당했는데 군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누가 만나주며, 누가 정보를 주며, 세상에 알려주나?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어떻게 하면 잊히지 않게 할지 궁리하며 끝까지 갈 것이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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