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들에 물었다 "그래서 마음이 어떠세요?"

정은주 2017. 2. 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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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017 광장의 노래] 4부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설계도
에필로그-광장 너머의 민주주의 / 정혜신과 인터뷰이들

[한겨레]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와 세대별 패널들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좌담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3부 인터뷰이로 등장한 6명
정혜신 정신의학 전문의 만나
광장서 느꼈던 복잡한 마음 풀어

“내가 속한 세상에서는
나도 우병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이중적인 마음과 동시에 자기성찰

지지부진 탄핵에 무기력·죄책감
“그렇게 많이 모였는데 아직도…
내 행동 부족했나하는 마음 들어”

나부터 바뀌어야 세상 바뀌는 건지
세상이 바뀌어야 내가 바뀌는 건지
“내가 변해야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

어쩌면 우린 모두 아픈 사람들이다.

토요일마다 촛불을 드는 40대 회사원도, 태극기를 두 손에 쥐고 목이 쉬도록 외치는 70대 할아버지도 아프다. 압축성장을 겪은 우리는 큐브처럼 다양한 면을 가진 입체적 존재이지만, 저마다 자신의 시공간에서 평면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 사회는 이 외로운 평면들을 연결해줄 고차방정식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1987~2017 광장의 노래’는 이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기나긴 문제풀이 과정이었다. 연재를 준비하고 써내려간 석달 동안 <한겨레>가 만난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기사에 등장했던 주인공 6명이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다시 모였다. 87년 6월 연세대 앞에서 쓰러지는 이한열을 부축했던 이종창(50·파주 가람도서관 관장)씨, 출판사 대표 김정한(49)씨, 대구에서 올라온 김기한(41·직장인)씨, 주거 공동체에서 사는 김진선(37·작가)씨, 대학생 황지수(19)씨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강지은(19)씨. 불안하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이중적인 마음들이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울고 웃었다. 정 전문의는 고문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 사회적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어 왔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뒤에는 안산에서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어 유가족들을 치유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깊이 주목하는 정 전문의가 “그래서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묻자 다들 울컥하며, 마법에 걸린 듯 깊은 속 이야기를 풀어냈다.

# 부모 세대와 대치… 무섭다

정혜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정혜신 연말·연초에 어수선한 정국을 지나면서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해보는 자리에요. 내 마음이 어떤가, 찬찬히 들여다보죠.

김기한 시민 대 시민이 대치하는 게 참 싫어요. 정부가 시민들끼리 개싸움 시키는 거잖아요. (87년 6월항쟁 때) 전경하고 대치했지만 지금은 우리 부모 세대와 대치하고 있어요. 어버이연합,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하는 태극기집회를 보면 ‘저 사람들 나쁘다’ 욕하다가도 결국 우리 아버지가 아닌가 싶고요. 태극기를 두르지 않아 표시가 나지 않을 뿐이지 우리 부모님도 똑같으니까요.

정혜신 아버지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김기한 그럴 수 있겠다 싶죠. 나도 나이 어린 사람 말 잘 안 듣고, 안 바꾸고 하니까 아버지도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못 바꾸는 게 아닐까 해요. 100%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해요.

정혜신 못하나요, 안 하나요?

김기한 안 하죠. 아버지니까, 얘기한다고 바뀔 분이 아니니까. 너무 말이 안 되는 부분만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수용하는 척하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죠. 여당 성향이 강하신 윗분들과는 그렇게 지내요. 옛날처럼 경상도, 전라도도 아니고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을 부추기니까 정말 무서워요.

정혜신 무섭다는 표현이 마음에 확 박히네요.

김진선 아빠가 충청도 분인데 되게 바뀌셨어요. 예전엔 “너는 진보지? 하지만 아빠는 아니야”라고 하고,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은 편을 가른다고 싫어했는데 최근엔 안희정(충남지사)이든 누구든 정권 교체하는 쪽으로 표를 찍을 거라고 하세요. 최근 약간의 화해가 됐죠. 전쟁이나 박정희 정권을 겪은 아빠는 자기 경험 속에서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 집에서의 아빠는 그렇게 보이지만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서 만나는 이상한 사람들(박사모)은 좀 무섭죠.

정혜신 뭐가 무섭나요? 그 사람이? 내 생각이?

김진선 군대를 일으켜야 한다 하니까요. 기득권과 싸우고, 그걸 해체해야 하는데 다른 쪽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죠. 마음이 복잡해요.

87년 6월항쟁 당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안았던 이종창씨

이종창 지난 토요일에 지하철을 탔는데 어르신들이 태극기를 달고는 ‘요즘 젊은 애들 정신 차려야 돼. 박정희의 혜택 안 누린 사람 누가 있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반대쪽에서 보면서 ‘이 상황에서도 왜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정화되고 박제화 된 생각들이 참 무섭구나. 어쩌면 박근혜도 국정농단한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 안 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데 재밌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니까 어떤 여학생이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치며 나가더라고요. 저런 기발한 아이디어로 해나가면 잘 되겠다 싶었어요.

김기한 그 사람들(어르신)도 같이 안고 가야 해요. 지금 보수처럼 색깔 칠하는 것과는 (우리는) 달라야 해요. 생각은 다르지만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을 고민해야 합니다.

# 죄책감과 이중적 마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강지은씨는 “(벌써) 스무살인데 아무것도 미래가 정해진 것이 없어서” 불안하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이 한심하고 지지부진한 탄핵을 보며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초반엔 당장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젠 그렇게 많이 모였는데도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은) 저러나 싶고. (내가) 마땅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아서인가 죄책감이 들어요. 예전엔 친구들이랑도 정치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점점 무관심해졌어요. 생일이 지나면 선거할 수 있는데 뭔가 더 알아야 하는데….”

정혜신 죄책감이라…. 외부의 일이 개인 내면의 갈등으로 번기고 있는 거예요. 몇 달이 지나니까 피폐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종종 듣습니다.

김정한 아이가 네 살인 늙은 아빠예요. 토요일마다 촛불집회에 나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 마시니까 가정불화가 생기더라고요. 아내에게 계속 육아를 떠맡기니까요. (지금은) 촛불집회 가는 걸 자제하고 있어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고 있는 김기한씨

김기한 미음이 이중적입니다. 형편없는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빨리 사회가 안정돼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도 큽니다.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야당이 대체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해 답답해요. 김기춘(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전 청와대 민정수석)와 같은 기득권을 보면서도 마음이 어수선합니다. ‘나도 진작에 열심히 (공부)해서 저렇게 자기 멋대로 세상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 안은 참 따뜻하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 애한테 이런 세상을 보여주는 게 걱정스럽습니다.

정혜신 그 사람들의 삶에서 개인적으로 부러웠던 게 어떤 건가요?

김기한 우리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대기자 수가 너무 많은 거예요. 아는 사람 있으면 전화 한 통이면 (들어) 가잖아요. 그런 예외가 없으면 부러워하지 않겠지만, 누구는 번호표 뽑고 네 시간 기다리는데 누구는 전화 한 통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힘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죠.

# 무기력과 자기성찰

이종창씨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첫 4년제 대학생이었던 그는 대학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대학병원 관련 청탁에 시달렸다. “(병원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청탁을) 할 수도 없어요. 못 도와주니까 마을 어른들이 ‘저놈 출세 하더니만 날 무시한다’고 욕하더래요. 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 참모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나왔다는 기사만 나오면 사업하는 사람이 줄을 대달라고 전화가 왔고요. 특권의식으로 굴러가는 사회 체제가 고쳐지지 않으면 어디선가에서 피해 볼 수밖에 없어요.”

김기한 화가 나죠. 10, 20대였으면 몸으로 나가서 진짜 데모를 막 해서라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텐데 내 나잇대에는 워낙 그런 부조리함, 힘의 서열에 학습돼 있으니까 수긍하게 됩니다. 화가 나지만 이게 세상이다, 비참하지만 받아들이고요. 길들어져 있다고 봐야지요.

정혜신 어쩔 수 없다고 수용하게 되는 내 마음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비참한가요? 아님 다른 어떤 마음이 드나요?

김기한 비참한 것은 지났고 무덤덤하고 무기력하죠. 직장에서도 힘의 논리에서 배제되는 걸 느끼니까 나라는 오죽하겠나 싶고요. 그런 사람들은 계속 존재했으니까요.

김정한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무덤덤해지는 게 있어요. 과연 바뀔 수 있을까와 바꾸자는 마음이 공존하죠. 그들의 힘이 굉장히 세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런 무기력이 밀려오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친구들과 술 마시고 느꼈던 절망감처럼.”

정혜신 전문의는 ‘무덤덤’을 이렇게 설명했다.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으면 사람한테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 감정마비예요. 처음 때리면 화가 나지만 초주검 만들어 놓으면 울음도 안 나고 아주 덤덤해져요. 자기 통제권이 완전히 무력화됐을 때, 완전한 상실감 속에서 사람은 감정마비, 다르게 말하면 무덤덤함을 경험합니다.”

“또래들도 ‘해도 안 변해’ ‘세월호 때처럼 묻힐 거야’ 그런 말을 해요. 너무 슬프죠. 아닌데, 하면 바뀔 텐데.” 황지수씨가 울컥해 말을 잇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인 황지수씨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세월호라는 단어가 나오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무덤덤한 사람이 되지 않고 싶다. 무기력해지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김기한 나이 들면서 좋은 게 좋은 거다, 비겁한 게 아니라 융화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황지수씨)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기합리화였구나, 꼰대라는 사람이 내가 됐구나 싶어지네요. 문뜩 내가 속한 세상에서 나는 우병우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정혜신 전문의는 김기한씨의 머뭇거림을 자기성찰이라고 설명했다. “살면서 주춤하는 순간이 많은 사람이 성찰하는 인간입니다. ‘내가 우병우 아냐?’멈칫, 멈칫하는 것, 빛나는 성찰이에요.”

# 탄핵이 기각되면

정혜신 전문의가 물었다. “혼자 방에 있다가 탄핵이 기각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몇몇은 견고한 기득권을 재확인하며 더 깊은 늪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출판사 어마마마 대표 김정한씨

김정한 두 달 동안 탄핵이 될 거라고 믿으며 (기각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가 하얘 지겠지요. 헌재(헌법재판소)에 당장 불을 지르나. (웃음) 87년에도 그렇게 싸우고 노태우가 대통령 되는 걸 봤잖아요. 지금도 또 그렇게 되는가, 정의로운 사회는 안 되는가 절망감이 밀려올 겁니다.

김기한 화가 나고 답답해서 촛불집회에 나가겠지만, 안 바뀌겠구나, 해도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겠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쌓여와서 (기득권에) 금을 낼 수는 있지만 무너지진 않겠구나.

강지은 역시 이렇게 될 거였나 싶을 듯해요. 진짜 탄핵이 됐으면 좋겠지만 확신은 못 하고 있었으니까요. 달라진 (친구들) 의식에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이렇게 해도 역부족이라는 것을 슬퍼해야 하나,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반면 이종창씨와 황지수씨는 탄핵 기각이 실패도, 끝도 아니라고 답했다. “정치적 상황에서 자기 목소리 내고 행동한 경험이 중요합니다. 탄핵이 안 되더라도 정치나 사회 변화가 오지 않겠어요? 수십년간 고정된 정치적 생각을 바뀌기가 쉽지가 않은데 촛불이 그걸 해냈고 국민의 정치적 의식을 높이는 계기 됐다고 생각해요. ”(이종창) “만약 기각이 되면 처음엔 어이가 없고 그다음엔 화가 나고 토요일뿐 아니라 매일 촛불집회 나가고 마이크 잡든 전단 뿌리든 더 적극적으로 할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이 늘어날 테고 그 규모가 커지면 결국엔 진짜로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는 일까지 일어나지 않을까요?” (황지수)

김기한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헌재에서 (기각이라고) 판단하면 그 또한 존중해야 합니다. 대신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권리인 선거를 잘해야 해요. 물론 (촛불집회) 나가서 목소리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합법적인 방법인 투표가 바르다고 봅니다. 그걸 못해서 이렇게 됐잖아요.” (김기한)

황지수 법치주의라는 게 무조건 승복과는 다르죠. 비상식적 (헌재) 결정에 거리 뛰쳐나오는 것은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법치주의로 향한 발걸음이죠.

김정한 (김기한씨 의견은) 심판의 뜻 존중하자는데 말인데, 명백히 파울인데, 홈런이라는 선언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아요. 당연히 어필해야 합니다. 국민 80%가 탄핵해야 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상식 믿는다면 (헌재가) 탄핵 인용을 해야죠.

# 정권 교체와 나의 삶

정혜신 탄핵이나 정권 교체가 내 삶과 어떤 연결성이 있다고 느끼나요?

김정한 개인 생활까지 (영향이) 오기는 (어렵지 않나요?)

정혜신 그런데 왜 촛불 나가요? 우리나라가 좋아져 봤자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데?

김정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누적된 여러 가지 분노로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갔죠. 정권이 바뀌면 경제적으론 연관이 없지만 정서적으로는 스트레스가 덜해지겠지요. 확실히 그건 다를 겁니다.

황지수 당장의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니겠지만 더 좋은 정부 만나면 삶의 질을 높아진다거나 자유로워지는 등 내 삶에 긍정적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 정치 참여로 내 삶이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촛불집회 나가는 거예요.

종창 대학생 딸이 둘 있는데 취업이 어렵잖아요. 노동정책이 새누리당 쪽보다는 야당이 나으니까 기대가 됩니다. (내가 일하는) 도서관도 활성화되고 자원 투입이 많아질 거에요. 실질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도서관에 투자를 많이 했어요. 블랙리스트뿐만 아니라 문화정책도 달라질 것이고요. 어느 정치 세력이 (국가 운영을) 더 잘할까 생각하면 야당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김진선씨

김진선 우리 대통령은 이런 사람이라고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중요해요. 정의로운, 혹은 올곧은 사람이 대통령 되면 좋겠어요.

김기한 이재용이 구속되면 우리나라가 정말 한 단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비정상의 정상화이니까요. 힘의 논리에 의해 서민들이 봤던 피해가 하나씩 깨지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번호표 서서 줄 서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죠.

정혜신 (이재용이 구속되면) 내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요?

김기한 우리 애한테 도덕책에 나오는 바른 세상을 떳떳하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때리지 마라,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낫다, 왕따를 당하는 것보다 시키는 게 낫다는 마음이 있죠. 피해자가 너무 힘든 걸 아니까요. 바른 세상이 오면 그냥 떳떳하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치기가 없으면 똑바로 줄 서는 사람이 바보가 되지 않으니까요.

# 세상은 어떻게 바뀌나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강지은씨

이야기를 찬찬히 듣던 강지은씨가 질문을 던졌다. “나부터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 건가요, 세상이 바뀌어야 내가 바뀌는 건가요?” 막내의 송곳 질문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이가 가장 많은 이종창씨는 “30년 전 대학 다닐 때 내내 궁금했던 질문”이라며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종창 어렸을 때부터 솔선수범을 강조하며 컸어요. 그게 몸에 배어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변하려면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참 힘들죠. 직장생활에서 갈등을 겪고 큰 힘에 굴복하는 경험을 했죠. 21년간 대학 도서관에서 일했는데 총장이 바뀌니까 다 무너지더라고요. 공허해서 가족 생각 안 하고 그만뒀습니다.

김기한 말단에서 일하면 그렇게(솔선수범) 할 수가 없죠. 원칙적으로 안 되는 업무를 (상사가) 시키더라도 그걸 못한다고 이야기하면 무능한 사람이 됩니다. 옆에 있는 직원이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손을 들어버리니까 내가 바보가 되죠.

숙명여대 학생 황지수씨

김진선 솔선수범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어요. 처음 딱 들었을 때 고리타분한 느낌이었는데, 윗세대는 그런 생각이 있구나 싶고요. 아랫세대는 자신한테 떳떳함을 말하는데 윗세대는 사회에 대한 떳떳함을 말하는구나. 나만 좋으면 무슨 재미인가, 그런 게 촛불을 나가는 것과 연결돼 있구나 싶었어요.

황지수 (솔선수범하는) 미련한 바보들이 모이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정혜신 탄핵이 되든, 안되든 끝이 아니라는 이종창씨의 말에 깊이 공감해요. 정권이 바뀐다고 무조건 행복해지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개인의 삶에는 난관이 여전히 많고 계속 애써야 할 것들로 빼곡하잖아요. 절대로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궁극적인 것은 우리의 삶 그 자체입니다.

정리 정은주 박유리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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