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엄마 책임 육아를 국가가 도와주니 고마워하라고요?"

대담=신혜선 VIP뉴스부장, 정리=이영민 기자 2017. 2. 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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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이 만난 사람들]<3> '88만원세대' 저자 우석훈박사의 '아빠육아' 이야기
우석훈 경제학 박사(50)는 자신의 현재 직업을 '전업 육아 아빠'라고 소개한다./ 사진=임성균 기자

'88만 원 세대'. 한번 쯤은 들어봤을 단어다. 취업난과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는 20대를 지칭하는 이 말은 우석훈 박일권이 지난 2007년 <88만원세대>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신조어가 됐다. 책 안 읽는다는 대한민국에서 20만 부나 팔렸다니 공감대를 짐작할 만하다.

저자 우석훈 박사(경제학)는 올해 우리 나이로 50이 됐다. 36세(2004년)에 결혼해 9년 만에 첫 아이 세중이(6살, 2012년 생)를 얻었다. 그는 현재 직업을 '전업 육아 아빠'로 소개한다. 첫 아이를 얻고 주말에는 무조건(잠시가 아니다. 주말 모든 약속을 전폐했다.) 아이 돌보기에 집중했지만, 그렇다고 하던 일을 그만 둘 생각 까지 한 건 아니다. 평일엔 여전히 밤 12시 귀가였다. 그가 육아 아빠를 선언한 것은 작년 3월 경. 허약 체질로 태어난 둘째 소중(4살, 2014년 생)이를 제대로 돌봐야겠다고 생각해서다.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박사의 신간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는 경제학 박사의 시각이 담긴 '좌충우돌 아빠 육아 일기'다.

최근 출간한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다산 펴냄)는 6년간의 '좌충우돌 아빠 육아 일기'다. 아빠가 쓴 육아 일기는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우 박사 얘기를 들어보자 한 이유는 책 주 독자층이 10년 전 '88원세대'를 읽고 어른이 된 이들이라는 점에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동병상련 처지가 된 그의 육아 일기에는 경제학 박사답게 육아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있지만 '흑룡의 해' 상술에 당황하고, 유모차 구매를 두고 고민하면서 시행착오를 하는 우리 모습 그대로다.


- 10년 전 88만원 세대였던 20대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부모가 됐다.
▶ 이명박 정부 때 공기업 비롯해서 대졸자 임금을 20% 정도 삭감했다. 결혼하기 더 힘들다고 하지 않나. 그만큼 애 낳기도 부담스러워 진 거다. 평균 대한민국에서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2억 원이 든다니. 하지만 통계 상 우리나라의 경우 일단 결혼하고 아이를 안 낳는 경우는 별로 없다. 90~91년 사이에 첫째를 덜 낳는 충격이 한 차례 왔지만, 대략 결혼 후 13~15개월쯤 되면 첫째를 낳는데, 이 수치는 거의 안 바뀐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지속해서 하락 중이다. 프랑스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국가 중 유일하게 2 수준이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비혼이 늘거나 결혼 자체를 늦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첫째 낳는 패턴은 큰 변화가 없다. 물론 넷째 낳는 비율은 사실상 0이다. 우 박사는 둘째가 줄어든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한다.

통계상 결혼을 하면 첫 아이를 낳을 확률이 아직은 높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결혼을 피하지 않도록 하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그다음으로 첫째 아이 지원책을 강화하자는 게 그의 생각. “첫째를 안 낳거나 늦게 낳는데 셋째까지 고민할 여력이 있을까요? 셋째 지원책을 강조하는데, 첫째를 안정적으로 키우면 둘째는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아이 100일까지를 국가가 책임지는 식으로 첫째 아이 지원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를 포기한 경험을 돌이키니 고개가 끄덕여 진다.

- 본격적으로 육아 경험담을 들어보자. 바깥 일을 중단하고 '전업 아빠'가 될 생각을 한 이유가 뭔가.
▶ 큰 애가 태어난 2012년부터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도 주말은 악착같이 지켰다. 주말 약속은 두어 번 나간 게 전부다. 작년 3월 둘째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2주 후 또 입원했다. 천식 경고를 받았다. 천식은 잠깐 아픈 게 아니라 평생 조심해야 하는 병이다. 문득 '뭐가 중요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아이가 태어난 그 해는 대선을 치렀다. 투표 후 상황실에서 개표를 같이 보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사놓은 지 3개월이 돼가는 아이 유모차를 그때까지 조립하지 않고 있더라. 처음엔 나도 아이 키우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둘째 아이를 생각하면서 육아 아빠가 되기로 했다.

- 진짜 전업인가.
▶ 불가능하다. 내 가사 참여율은 45% 정도다. 아내가 밥하는 동안 내가 아이랑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내가 간식 만드는 동안 아내가 빨래하고 청소하는 식이다. 장모님께서 주중에 와계시기도 한다. 어린이집 등하교도 아침은 내가, 오후는 아내가 가는 식으로 함께 한다. 애 둘이면 부모 한 명이 제대로 돌볼 수 없다. 전업 부모라면 아마도 밥할 때는 아이를 재우거나, TV를 보게 하는 식으로 할 거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겠지만, 부모가 다른 일을 한다는 이유로 그냥 두면 그건 육아가 아니다.

-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시작했지만, 아빠들이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한 건가.
▶ 둘째가 아프다는 변수는 있었지만, 어쩔 수 없어서 한 일은 아니다. 당시 연봉 1억 원이 넘는 자리를 제안받았다. 뭐가 더 중요한지 고민하고 선택한 거다. 난 아빠로서 돈을 버는 것보다 아이를 집중 돌보는 게 더 중요하다가 판단했다. 돈 덜 벌고, 술 덜 사고, 소비 줄이면 된다. (실제는 돈보다 시간의 이유로 많은 술자리를 가지 않고 있다.)

누구든, 어떤 종류이든 간에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최근에도 (고액연봉) 제안이 오지만 아직도 아니다. 아이를 더 돌봐야 한다. 연봉이 높아도 아이가 아프면 행복할까. 나중에는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도 습관 같은 거라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유아 시절 소근육이, 대근육이 각각 발달하고, 뇌가 발달하는 시기가 다르다. 아빠만이 해 줄 수 있는 놀이가 분명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 박사는 인터뷰 내내 한국 아빠들의 태도를 몇 차례 강조했다. “회사일 핑계 대지 말고, 평일, 주말 육아에 꼭 참여해야 합니다. 특히 결혼을 포기하지 않은 젊은 남자들이라면 가사 노동이나 육아에 대해 아버지 세대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냉정하게 말해, 결혼을 꿈꾸는 여성의 다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실제 인터뷰를 했는데 결혼 대상자로 '잘 생기거나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낭비벽이 심하지 않은 남성을 소개해 달라'는 여성들이 꽤 많더군요. '돈은 내가 벌어도 된다'는 젊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는 “결혼한 남자들은 '기저귀를 잘 가는' 남자들”이라고 못 박는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 분들이라면 기저귀를 잘 갈 수 있는지 자신부터 점검하세요.” (하하하)

- 영어유치원을 보낼지를 두고 고민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다 하는데, 내 아이만 안 해도 될까.' 비슷한 걱정 주변에서 많이 한다. <88만원세대>에서 스펙 경쟁이 더는 필요 없어질 거라 했는데, 없어지기는커녕 아기 세대까지 내려왔다.
▶어머니가 돈이 없어 그러느냐며, 비용 댈 테니 아이를 영어유치원 보내라고 하셨다. 뜻밖에 재력 있는 양가 어른들 성화에 못 이겨 선택하는 부모도 있더라. 돈 문제가 아니다. 보내놓고 스트레스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호기심을 채우는 재미있는 놀이를 해야 한다. 3살이면 (영어 학습이) 이미 늦는다고? 말도 안 된다. 사실 유치원조차 안 가도 된다. 어린이집이면 충분한데 무슨 영어유치원.

우석훈 박사는 한국 아빠들의 태도에 대해 "회사일 핑계 대지 말고, 평일, 주말 육아에 꼭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88만원세대>를 읽고 성장한 30대 초중반 친구들이 상담을 많이 해온다. 주로 “그런 건 안 해도 돼. (자식에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라는 조언을 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 결정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나도 해보고 알았다.

- 육아정책에 대해 '할아버지 행정'이란 표현을 썼다.
▶ 육아 정책 관련, 공무원을 만나본 일이 여러 차례다. '정부에 왜 고마워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육아는 엄마 책임인데 5년 사이 정부가 이렇게 많이 도와주는데….” 세상에, 육아가 엄마의 일이라니, 고마워하지 않는다니, 말이 되나. 상징적으로라도 '육아는 국가의 책무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국가가 못하니 엄마와 가정이 거들어주는 거다.

흔히 '애 본다'는 표현을 쓴다. 애를 그냥 보고 있으면 되나? '옛날 할아버지'처럼 어르고 예뻐하기만 하면? 육아를 책임져보지 않은 이들이 탁상공론 정책을 수립한다는 면에서 한 비유다. 육아 정책이 제대로 서려면 행정조직(실무자)이 더 젊어져야 한다.

- 우 박사의 첫 아이가 어른이 되는 2030~2040년은 AI(인공지능) 시대다. 그 시기를 고민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할 거 같다.
▶ 맞다. 미국은 '스템'(STEM)을 한 방향으로 잡았다. 스템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엔지니어링(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네 가지의 앞 자를 딴 개념이다. 스템을 통한 궁극적 목표는 '메이커'(Maker)다. 즉 스스로 만들 줄 아는 사람. 미국에서 스템 열풍이 엄청나게 불었다. 마션,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이런 영화들이 일종의 스템 영화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코딩교육'으로 빠졌다. 코딩이야말로 AI가 하는 일인데.

우 박사는 책에서 국내 육아 정책의 문제점뿐 아니라 외국어 교육이나 외국식 교육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한마디로 '귤이 탱자가 된' 넘치는 사례들. 미국의 '여학생 사커' 붐이 우리나라에 '헬리콥터 맘'으로 어떻게 변질했는지, 엄지 척의 개념인 '썸'이 '매스 썸' '그린 썸'을 거쳐 우리에겐 전혀 엉뚱한 '썸 탄다'는 말로 바뀌었는지 등등. ('우리말, 숫자, 그리고 영어' 299~319쪽)

- 미래의 어른인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자세를 말한다면.
▶ 한때 리더십이 있는 아이로 키우자는 바람이 불었다. 적극적으로 그룹을 지휘하면서 스스로 돋보이게 하자는 의미다. 하지만 이제 그런 아이는 '왕따'다. '너가 뭔데?'란 반응이 바로 나온다. 친구들에게 관대하고 '리액션'을 잘하는 아이들이 인기 있다. 친구가 하는 일을 칭찬하고, 잘 웃고. 이는 협업의 개념이 몸에 밴다는 의미다. 이걸 잘하는 아이들이 결국 훌륭한 리더가 된다. 리액션은 집에서 엄마 아빠들과 놀이만 해도 잘할 수 있다. 되도록 안 하려 하지만 체벌도 해야 한다. '손찌검 한번 안 하고 키웠다'고 말하는데 그게 다는 아니다. 만약 아이가 잘못했는데도 넘어간 거라면? 밖에서 맞을 짓 해서 맞고 들어오느니, 내 손으로 혼내고 꾸중해서 바로잡는 게 더 낫다.


문득, '기저귀를 잘 가는 남자=결혼 성공 확률이 높은 남자'이란 등식에 이의를 제기할 젊은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최근 젊은이들은 부부 가사노동 분담이나 공동 육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직은 극소수고,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젊은 남자 직장인들도 나오기 시작했고.

인터뷰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계를 찾아봤다. 이런. 아직 멀었다. 2016년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분담은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사 대상(3만8600명)의 절반이 넘는 53.5%에 달했지만, 실제 공평하게 분담하는 비율은 남자 17.8%, 여자 17.7%라고 나타난 게 한 예다. (출처 : 통계청, 2016년 일·가정 양립 지표) 또, 전업주부 아빠도 많이 늘었다지만, 남성이 전체 육아 및 가사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겨우 2%를 넘었다. 2016년 기준 비경제활동인구 중 육아·가사 종사자는 720만4000명으로 이중 남성은 2.1%에 그쳤다. (출처 : 통계청, 2016년 사회조사)

<출처, 통계청 2016>


청년 실업과 세대 내 갈등에 주목한 경제학 박사의 뒤늦은 육아 이야기에는 인식의 변화와 깨달음도 담겼다.

“예전에는 지나가는 아이들을 봐도 나이 가늠은커녕 관심도 없었죠. 지금은 다 우리 집 애들같이 보이고, 몇 살인지도 맞춥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어요. 이를테면 '그 사람은 어릴 때 어땠을까'. 이전에는 이런 생각 안 해 봤는데…. 증오도 많이 사라졌어요. 삶을 조금 이해한다고나 할까. 욕심 많은 사람에게는 행복이 오지 않아요. 허망한 욕심이 아이를 망친다고 보고요. 하하하,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가 성장하는 것인가 봅니다.”

◆ 우석훈은 누구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자칭 'C급 경제학자'.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생태경제학을 전공했다.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을 거쳐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으로 수년간 국제협상에 참가했다. 환경과 경제라는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의문과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해서 항상 고민한다.

그의 사유의 기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연민이다. 저서 '88만원세대'로 경쟁 사회 끝에 내몰린 한국의 20대에게 희망을 찾아주면서 젊은 지지자들을 많이 얻었다. 강의와 글쓰기를 통해 경제와 사회, 문화와 생태의 영역을 넘나들며 우리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해왔다.

2016년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임기가 끝난 후부터는 40줄에 얻은 두 아들을 직접 키우기 위해 육아에 뛰어들었다. 괜찮은 일자리 제안도 마다하고 육아에 전념 중인 그는 자신을 육아·교육정책의 '반전문가'라고 말한다. 현재는 영화제작사 타이거 픽쳐스에서 자문을 맡고있다.

지은 책으로 △88만원세대 △살아 있는 것의 경제학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솔로계급의 경제학 △불황 10년 등이 있다.

대담=신혜선 VIP뉴스부장, 정리=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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