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못 써 일 그만 두는 女변호사들

장윤정(변호사) 기자 입력 2017. 2. 2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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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리포트][악화일로 변호사시장]③ 출산·육아휴직 등 근로기준법 안 지키는 로펌 많아..채용과정서도 여성 변호사 불리해

[머니투데이 장윤정(변호사) 기자] [[the L리포트][악화일로 변호사시장]③ 출산·육아휴직 등 근로기준법 안 지키는 로펌 많아…채용과정서도 여성 변호사 불리해]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여성 변호사 A씨는 1년 간 다니던 법무법인에 아이를 임신해 임신 사실을 알리자, 대표 변호사로부터 향후 3개월까지만 근무하고 퇴사를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퇴사 후 아이를 낳고 재취업을 준비 중이지만, 7개월이 넘도록 취업이 되지 않았다. 친한 선배가 근무하는 법무법인에도 지원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몇 개월 안 된 아이가 있는 여자 변호사는 일 할 여유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결국 A씨는 취업을 포기한 채 어쩔 수 없이 변호사 사무실을 직접 개업할 생각까지 하고 있는 상태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문제는 결코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다. 그럼에도 임신을 하게 되는 주체로서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종래에 비해 많은 기업들이 복지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모성(母性)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적인 인식과 기반 시설은 우리나라의 발전 단계에 비해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은 법을 다루는 변호사 사회 안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노동 관계법에 명시된 권리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이들이 '고용 변호사'들이다. 변호사업계에선 "변호사 시장만큼 근로기준법을 안 지키는 곳도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 신규 여변들 취업률 갈수록 낮아져…'강제 개업' 내몰려 남성보다 개업비율 높아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활동 중인 여성 변호사들 다수는 근로기준법상의 연차나 육아휴직을 거의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 법원 일대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은 법에 명시된 유급휴가를 거의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쉬는 날이라고는 법원이 휴정하는 여름, 겨울 일주일 중 며칠 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임지영 변호사는 "임신과 출산 등의 경우 인력 대체가 어렵다는 인식이 여성 변호사의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든다"며 "이에 더해 송무(訟務)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적합할 것이라는 전통적 편견도 여성 변호사의 입지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지난 2016년 말 조사한 여성 변호사의 근무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 변호사가 남성 변호사들에 비해 고용 대비 개업을 한 비율이 높게 집계됐다. 이는 여성 변호사가 개업을 꺼린다는 변호사업계 인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따라서 소위 '강제 개업'에 내몰린 여성 변호사들이 그만큼 늘어났다고 해석되고 있다. 채용시장에서 밀린 여성 변호사들의 개업에 나설 수 밖에 없는 법조계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설문조사에서는 여성 변호사들 중 약 10% 정도가 가사와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이유로 변협에 휴업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형 법무법인에 근무하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한 B 변호사는 "출산휴가를 쓰는 것도 눈치보이고, 선배 변호사들 중 육아휴직을 썼던 전례도 없어 말도 꺼내지 못하고 퇴사했다"며 "입사 때부터 '여자들은 결혼하면 애 낳고 해서 뽑아놓으면 여러 핑계로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더 위축됐다"고 말했다.

그는 "로펌들에서 갈수록 여성 변호사를 뽑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미혼이면 곧 결혼할 것이라는 이유로, 기혼이면 임신을 이유로 채용을 기피해 반강제적 비혼을 택하는 여변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임 변호사는 "이제 막 신규로 진입하는 새내기 변호사들의 경우, 여성 변호사의 미취업 비율은 상대적으로 더 높고, 입사지원을 하더라도 서류 심사 단계에서부터 배제되거나 면접까지 가더라도 면접 중 성차별적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성별로 인해 출발선에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는 여자 변호사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 女 변호사 기피 현상에 대한 대책은?

여성 변호사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국가나 변호사단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변호사는 "국가나 변호사단체가 어린이집을 확대하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용 또는 승진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게 해야 한다"며 "그 외에도 여성 변호사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 마련 및 지원, 여성변호사 근무실태 파악, 고용 및 근무환경에서 성차별 방지 권고, 신고센터의 운영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워킹맘으로 개업한 C 변호사는 "변호사 단체에서 회원들의 복지를 위해 어린이집을 운영해주고, 실질적으로는 임신이나 육아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변호사 사무실에 제재를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면서도 "물론 근본적으로는 변호사 시장의 남성 중심적인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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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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