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경제인사이드] '가짜 돈' 잡는 진짜 '매의 눈'

홍석호 기자 2017. 2. 2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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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를 찾는 사람들
하얀색 가운을 입은 KEB하나은행 원진오 차장이 21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지하 1층에 있는 위변조방지센터에서 화폐분석기로 위조지폐로 의심되는 5만원권을 감별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던 인류는 화폐를 만들었다. 갖고 있는 물건과 바꿀 물건을 가진 사람의 필요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정확하게 교환가치를 측정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폐는 물물교환의 어려움을 해결했고, 화폐(돈)는 곧 ‘부(富)’ 자체를 의미하게 됐다. 그래서 유구한 화폐의 역사만큼 위조지폐의 역사도 길다. 10세기 중국 송나라는 위조지폐 기술자를 관리로 채용해 위조지폐 단속을 했다. 12세기 영국에선 위조범 100여명을 검거해 손목을 잘랐다는 기록이 있다. 미국 남북전쟁이나 세계대전 중에 상대국의 경제를 흔들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기도 했다.

5만원권에 16가지 위조방지 장치

지폐를 위조하거나 변조하는 것은 큰 죄다. 형법 제207조에 따르면 화폐를 위·변조하면 무기 또는 2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위조지폐를 취득하거나(형법 제208조), 알면서 사용한 경우(형법 제210조)에도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손쉽게 부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한 지폐 위·변조는 계속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발견된 위조지폐는 1373장이다. 2015년(3293장)보다 1920장 줄었다. 한은은 “발견된 위조지폐 대부분 일반 프린터로 제작됐다. 위조방지 장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육안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화폐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위조방지 장치가 마련돼 있다. 5만원권만 해도 16가지의 장치가 있다. 위조지폐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비춰보기’ ‘기울여보기’ ‘만져보기’가 있다. 가장 쉬운 건 5만원권 지폐를 들어 빛에 비춰보는 것이다. 지폐 왼쪽에 숨겨진 초상이 나타난다. 진짜 화폐는 제작 과정에서 두께와 밀도의 차이를 이용해 숨겨진 초상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일반 출력(평판)한 위조지폐와 음영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비스듬하게 기울여보는 방법도 있다. 각도에 따라 지폐의 띠 홀로그램에 태극, 우리나라 지도, 4괘의 색상이 바뀐다. 만져보면 감촉에서도 차이가 난다. 진짜 지폐에선 신사임당 초상이나 뒷면의 월매도, 문자, 숫자 등을 만졌을 때 오돌토돌함을 느낄 수 있다. 특수 조각 기법으로 만든 인쇄판에 잉크를 채워 초상과 글자 등을 볼록하게 인쇄한 기법(요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조지폐를 찾는 사람들

지난해 발견된 위조지폐 가운데 65%(885장)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찾아냈다. 한국은행이 발견한 것은 33%(459장), 개인이 신고한 것은 2%(29장)에 그쳤다. 금융기관에서 발견한 위조지폐가 많은 까닭은 돈이 모이는 곳인데다 위조지폐 감별기를 갖추고 있어서다.

금융기관 가운데 발군은 KEB하나은행이다. 지난해 원화 80장(72만3000원)과 외화 622장(13만8000달러 규모)의 위조지폐를 찾아냈다. 2015년에는 전체 은행권 위폐 발견 금액의 91%에 해당하는 약 24만 달러 규모의 위조지폐를 적발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이 두드러지는 배경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위변조대응센터가 있다. 위변조대응센터는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센터장을 포함해 17명의 전문 인력이 근무한다.

2014년 11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만들어진 위변조대응센터를 이끄는 이호중 센터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위조지폐 감별 전문가다. 1995년 외환은행에서 위조지폐 감별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 13년 동안 국가정보원에서 금융범죄분석담당관을 맡기도 했다. 나머지 16명도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위조지폐감정 고급과정’을 통해 길러낸 전문가다. 이들은 ‘화폐를 연구하는 연구원’이라는 취지에서 모두 흰색 가운을 입고 일한다.

센터장을 제외한 16명은 원화팀과 외화팀으로 8명씩 나뉜다. 주요 업무는 KEB하나은행 영업점에서 보낸온 의심 지폐의 전수조사. 영업점에서 위조지폐로 의심되는 화폐를 팩스로 보내주면 분석하기도 한다. 1인당 하루에 10만장 넘는 지폐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한다. 위변조대응센터에서 다루는 화폐의 종류만 해도 45종에 이른다.

어떻게 위조지폐 찾나

위변조대응센터의 무기는 ‘첨단 장비’와 ‘전문 인력’이다. 원화팀과 외화팀 사무실의 가운데 있는 화폐분석실에는 위조지폐 감별기 5대가 놓여 있다. 비싼 것은 2억3000만원이나 한다.

우선 영업점에서 보내온 지폐 다발을 기계에 넣고 위·변조 여부를 확인한다. 위조지폐 감별기는 적외선 투사 등을 통해 자동으로 구권, 신권, 사용 불가능 지폐를 구분한다.

감별기가 읽지 못하는 것은 위조가 의심되는 지폐다. 이때부터 전문 인력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먼저 확대경으로 위조방치 장치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100달러 구권은 지폐 왼쪽에 그려진 수직 막대에 ‘USA 100'이라는 글자가 아주 작게 인쇄돼 있다. 지폐의 오른쪽 아래 인쇄된 숫자 100도 색 변환 잉크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울기 방향에 따라 녹색 혹은 검은색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최첨단 위·변조 영상분석 광학 장비도 동원된다. 이 장비는 각국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 등에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는 위변조대응센터에만 있다.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서 보유한 장비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외화 위조지폐는 구권 달러화가 가장 많다. 2013년 10월 신권을 찍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위조방지 장치가 추가됐지만 아직도 구권의 유통량이 상당한 데다 기축통화라는 점에서 화폐 가치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위조범의 주요 표적이 된다. 최근 들어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국내에서 발견되는 위안화 위조지폐도 늘고 있다.

위변조대응센터 외화팀 원진오 차장은 “위폐를 감별하려면 각국 화폐와 위조방지 장치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며 “최근 들어 지폐를 반으로 나눠 위조하는 등 위조 기술이 발달하고 있어 감별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지만 별도의 장비가 없더라도 위조방지 장치를 중심으로 자세히 지폐를 보고 만져보면 위조된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나 동남아 등을 여행하다 진짜 지폐를 바꿔치기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환전은 환전상보다 은행에서 하고, 가능하면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며 “화폐를 쓸 때는 소액권으로 환전해 사용하는 것이 위조지폐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글=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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