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주고 싶었던 제 욕심이.. 며느리에겐 病이 될 줄이야

2017. 2. 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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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시누이 없는 시집살이도 나름 힘든 점이 있다고들 합니다. 딸이 없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입장과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지요.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선의'조차 상대에게 부담이 되곤 합니다. 내 마음 몰라준다 서운해하기 전에, 더는 못 견딘다 선언하기 전에 서로 살피고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습니다.

홍여사 드림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이 실리려나 싶어 매주 별별다방을 챙겨 보는데, 지난주에 실린 어느 며느리의 씁쓸한 독백에는 저도 모르게 펜을 들게 되네요. 십수 년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고 마침내 시어머니의 인정을 받았지만, 지금 다시 그 길을 걸으라면 못 갈 것 같다고 했지요? 남은 건 병든 몸과 미워하는 마음뿐이라고요? 저는 며느리가 아닌 시어머니 입장이지만, 사연을 읽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십여 년 전에 며느리를 봤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등생 아들이 데려온, 모범생 며느리였기에 기대가 컸습니다. 내 아들에게 완벽한 내조자가 되어주길 바랐고, 건강하고 영특한 아이를 어서 낳아주기 바랐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딸이 없는 저에게 딸 대신이 되어주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마저 일찍 여의어 모녀의 살가움을 맛볼 기회가 없었던 저는 그 결핍을 며느리를 통해 해소해보려는 야무진 꿈이 있었거든요. 진짜 모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잘 모르면서, 남들에게 다정함을 과시하려고도 했었지요. 그런 욕심이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나 봅니다. 저는 며느리를 자주 불렀고, 이것저것 시키거나 가르치려 들었고, 내게 소홀하다 싶으면 그렇게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게 다 시어머니 짓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줄을 몰랐었습니다.

그러다 결혼 팔년 만에, 며느리가 폭탄 발언을 하더군요. 어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요. 그래서 우울증이 왔고 이혼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요.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며느리를 괴롭히려는 뜻이 전혀 없었거든요. 오히려 저는 항상 그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었지요. 길 가다가도 멋쟁이 미시들을 보면, 나도 저런 옷을 며느리에게 사 입히고 싶었습니다. 뭐든 제철 음식을 해서 불러다 먹이고 싶었고요. 어느 자리에나 팔짱 끼고 데리고 다니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꽤 괜찮은 시어머니라고 자부까지 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뜻으로 다가갔다 해도,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은 존재인 모양입니다. 며느리가 극단적인 각오까지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선을 긋는데, 기가 막히더군요. 더구나 아들까지 동조를 하니 '나는 몰랐다, 말을 하지 그랬니?'라고 하기엔 감정이 너무 상해 버렸습니다. 급기야 저는 '자식 하나 없는 셈 친다'고 말하고, 등을 돌려버렸지요. 아이들은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저는 당분간 서로 보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몇 년을 우리는 마치 연 끊은 사람들처럼 지냈네요. 수시로 하던 전화 통화도 안 하게 되었고,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안 보고 지내니 제 마음이 편할 텐가? 서운한 마음 그지없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것도 차츰 진정이 되더군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저는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집 고부는 어떻게 지내는가 싶어서요. 가만 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고부 관계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더군요. 아니할 말로 자식이 상전이고, 무소식이 희소식이고, 효도는 셀프라는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며느리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할 말은 있습니다. 주위의 시어머니들도 처음부터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들 역시 처음 얼마간은 헛된 기대로 며느리와 밀당을 했었다 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된 것이지요. 다른 집 며느리들은 곪아 터지기 전에 한 번씩 들이받기도 하고, 시어머니 욕심의 싹을 자르는 야멸찬 소리도 곧잘 했던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왜 우리 아이는 그러지를 못했을까요? 어머님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 소리를 할 배짱이 있는 아이가, 왜 좀 더 일찍 '싫어요,' 소리는 못한 건지….

아마 우리 둘 다 초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며느리 초보, 나는 시어머니 초보. 새며느리는 시부모가 무조건 어렵기만 하고, 시어머니는 어린 며느리를 데리고 꿈에 그려온 인형놀이를 하려고 했던 거죠. 물론 어른인 제 잘못이 더 크지요. 그러니까 제가 더 넓은 자락으로 며느리를 품어, 마음의 앙금을 풀어야겠지요. 실은 그럴 작정이었습니다. 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준비가 저는 거의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마흔인 며느리가, 암 선고를 받고 현재 항암 치료 중이라는 겁니다. 조기에 발견해서 괜찮다고, 저희는 이미 어려운 시간을 다 지났다며, 아들이 넌지시 알려주더군요. 그 말 듣고 바로 며느리에게 전화했지만, 통화는 길게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울음을 참느라 말이 안 나오고, 며느리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어서 끊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그렇게 밀어내는 걸 보니, 정말 이 시어머니가 마음에서 멀어졌나 봅니다. 하기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떻게든 재발 없이 건강을 회복하기만 바라지요.

나 때문에 힘들다더니, 그게 병이 되었나 생각하면 너무나 괴롭습니다. 안 보고 사는 것도 속 편하지만은 않아 병이 된 것일까요? 어쨌든 그 병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저는 며느리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네가 미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초보 시어머니라 욕심이 과했던 거다. 그러니 안 좋은 기억은 지우고 건강관리에 힘쓰라고요. 그리고 제발 앞으로는 속마음은 털어놓으면서 살라고 하고 싶습니다.

자식이 아프다니 모든 욕심 내려놓게 되네요. 누구 탓도, 밀당도 의미가 없네요. 이것이 부모 마음이겠지만, 그 마음 몰라준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부디 회복해서, 대차게 대드는 며느리가 되었으면….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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