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몰래.. 가죽 바느질 배우는 넥타이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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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제약회사 영업부.
김 대리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서둘러 가방에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제약사 영업사원 1년 차인 그가 반차를 내고 찾아간 곳은 회사에서 5km가량 떨어진 한 공방(工房). 가죽을 이용해 가방이나 지갑 등을 만드는 곳이다.
유일하게 합격한 곳이 중소 규모 제약사 영업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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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 대리, 또 반차 냈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 거야?”
21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제약회사 영업부. 박모 팀장은 걱정 반, 의심 반의 목소리로 김모 대리를 불러 세웠다. 김 대리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서둘러 가방에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어머니가 편찮다”는 반차 사유는 거짓말이었다. 제약사 영업사원 1년 차인 그가 반차를 내고 찾아간 곳은 회사에서 5km가량 떨어진 한 공방(工房). 가죽을 이용해 가방이나 지갑 등을 만드는 곳이다. 공방엔 멀쑥한 양복 차림의 남성 10여 명이 어울리지 않는 앞치마를 두른 채 느리고 서툰 솜씨로 가죽에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모두 취업 1∼3년 차인 새내기 직장인이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힘겹게 들어간 직장 상황도 좋지 못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306개 기업에서 1년 이내 퇴사한 대졸 신입사원의 비율은 27.7%였다. 2년 전보다 2.5%포인트 상승했다. 퇴사 이유는 상당수가 ‘조직과 직무 적응 실패’였다.
취업난에 적성이나 근로조건과 상관없이 ‘무작정’ 들어간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속출하는 셈이다. 당장 퇴사를 하고 싶어도 재취업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과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공방에 손기술을 배우러 온 직장인들, 이른바 ‘생존형 공방족’이 늘고 있다.
‘회사 몰래’ 6개월째 공방 수업을 듣는 김 대리는 1년 전 100곳이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다. 희망하던 회사에서는 모두 낙방했다. 유일하게 합격한 곳이 중소 규모 제약사 영업부였다. 매일 밤 업무 핑계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 상사와 업체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취업보다 어려운 것이 재취업이었다. 그는 “퇴사를 생각하다가 공방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만들어 팔면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20, 30대 직장인들이 생존형 공방족이 되는 건 취업난이 불러온 일종의 후유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문이 워낙 좁다 보니 적성과 근로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묻지 마’ 취업이 늘고 이는 결국 사회 초년생의 퇴사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꿈꾸던 직장생활과 너무 다른 현실에 재취업보다는 심적 스트레스가 덜한 창업을 택하려는 것도 공방으로 몰리는 원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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