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페루에서 온 내 딸 아말리아, 예쁘게 잘 컸죠?

정종훈.홍상지 입력 2017. 2. 23. 02:28 수정 2017. 2. 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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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가 맺어준 특별한 인연들
가난 탓에 공부 꿈도 못 꾸던 소녀
후원 덕분에 어엿한 국립대생으로
"힘들 땐 '한국 엄마' 떠올리며 버텨"
울타리 필요한 국내 청소년이나
의료비 절실한 장애아와 연결도
"밝게 자라는 모습 보면 정말 뿌듯"
임지연씨(41)와 아말리아(20)가 11년 만에 처음 만나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전민규 기자]
서울 잠실에 사는 주부 임지연(41)씨 집의 냉장고에는 한 외국 여자 어린이의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아이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지구 반대편 페루에 사는 아말리아(20)다. 두 사람은 2006년 6월 국제아동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을 통해 처음 만났다. 당시 임씨는 우연히 참석한 해외 아동 후원행사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말리아의 사진을 보고 ‘이 아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출산 직후였던 임씨의 눈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은 전보다 더 절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후원자님은 제 베스트 프렌드”

아말리아는 일용직을 전전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는 페루 소녀였다. 이후 10년간 임씨는 아말리아의 든든한 경제적·정신적 후원자였다. 매달 후원금을 보내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136통의 편지가 오가는 동안 학교는커녕 꿈을 갖는 것조차 사치였던 아말리아는 페루 국립대에서 국제경영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됐다. 실제로 만나진 못했지만 두 사람은 맞교환한 사진들을 보며 서로의 모습을 막연히 상상해 왔다. 그러던 지난 16일 오후 임씨와 아말리아는 11년 만에 처음 마주하게 됐다. 한국컴패션이 후원자의 지원으로 어느덧 자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된 아동들을 위한 ‘졸업식’ 행사에 아말리아를 초대한 것이다.

“너무 떨려요. 진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을까요?”

열두 살 된 아들과 함께 아말리아를 만나러 온 임씨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후 아말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임씨는 활짝 웃으며 아말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을 꼭 잡았다.

한국어에서 영어, 다시 영어에서 스페인어로. 임씨와 아말리아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두 번의 통역을 거쳐야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아말리아는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자랐다”며 임씨의 아들을 단번에 알아봤다. 임씨는 “너무 예쁘게 컸네. 비행기 오래 타느라 고생했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후원자님은 제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제일 친한 친구)’ 같은 존재예요. 힘들 때마다 늘 ‘이 세상 어딘가에 나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힘을 냈어요.” 아말리아의 말에 임씨는 눈물을 훔쳤다. 임씨는 “사실 매달 얼마 안 되는 돈을 보내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렇게 잘 성장한 아말리아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제 아말리아에게는 은행에 취직해 가족들을 돌보고 나아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아말리아는 “임씨 덕분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고 드라마 ‘꽃보다 남자’도 봤다”고 했다. 임씨는 아말리아에게 그 나이 또래 여학생들이 쓰는 화장품을, 아말리아는 임씨에게 페루 전통의상을 선물했다. 아말리아의 말이 두 번의 통역을 거쳐 전달될 동안 임씨는 가는 시간이 아쉬운 듯 아말리아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비영리단체(NPO)를 통한 일대일 결연은 임씨와 아말리아처럼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는 한국컴패션을 비롯해 월드비전·초록우산어린이재단·밀알복지재단 등 다양한 NPO가 후원자와 국내외 소외 아동들을 연결해 주고 있다. 결연을 맺게 되면 후원자들은 아동에게 단순한 후원 관계를 뛰어넘어 ‘친구’ 또는 또 하나의 ‘부모’ 역할을 한다. 후원자들은 “후원 아동이 밝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과 행복감은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입을 모은다.

"의미 있는 일 하고 싶어 아들 명의로 후원”

백인주씨(52) 부자가 모잠비크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각 NPO]
회사원 백인주(52)씨는 5년 전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 중인 소년 루카 비키타(18)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아프리카 모잠비크를 방문했다. 아들 상우(17)군도 함께였다. 백씨는 “상우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후원을 시작했다. 후원을 아들 이름으로 하고 있고 편지도 직접 쓰게 한다”고 말했다. 백씨는 한 살 차이인 두 친구를 직접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사비를 털어 비행기 티켓을 샀다.
루카는 모잠비크 북부 지방에서 어머니·누나와 함께 농사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었다. 첫 대면에서는 반가움보다 서먹함이 앞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던 찰나 백군 턱에 살짝 자라난 수염을 본 루카가 “나이도 나보다 어린 애가 왜 이렇게 수염이 나냐”며 먼저 농담을 던졌다. 이후 백씨가 갖고 온 축구공을 갖고 놀며 두 친구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백씨 부자는 루카 동네 주민들에게 농기구를 선물하기도 했다. 백씨는 “가뭄이 심해 농사 걱정을 하는 루카를 보며 ‘우리 아들과 사는 환경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잠비크에 다녀온 뒤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아이를 돕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양현열씨(58)와 박비주양(17). [사진 각 NPO]

국내 청소년과 추억을 쌓아 나가는 후원자도 있다. 부산에 사는 양현열(58)씨는 2013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박비주(17)양과 인연을 맺었다. 박양은 66㎡(약 20평)도 채 되지 않는 임대아파트에서 아버지와 할머니, 몸이 불편한 동생과 살고 있다.

스물여섯 살 된 아들이 하나 있는 양씨에게 박양은 막내딸 같은 존재다. 공부 욕심이 강한 박양은 장차 외교관이 꿈이라고 했다. 양씨는 가끔 박양과 식사를 하며 성적·진로 등에 대한 고민을 들어준다. 한번은 ‘수학이 다른 과목에 비해 약하다’는 박양의 말에 지인을 불러 과외를 해 준 적도 있다. 양씨는 “비주와의 인연으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을 알았다. 내 작은 도움으로 비주 같은 친구들이 잘 자라나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게 보람이고 행복”이라고 했다.

장애우 김영수군(10·가명)이 아버지와 길을 걷고 있다. [사진 각 NPO]
뇌병변·지체장애·호흡기장애 등 6가지 장애를 안고 태어난 김영수(가명·10)군에게는 지난해 다섯 명의 후원자가 생겼다. 밀알복지재단은 1년 이상의 지속적인 의료비 지원이 필요한 만 18세 미만의 장애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애아동 결연사업을 하고 있다. 김군은 후원자들의 도움 덕에 9년 넘게 착용해 오던 산소호흡기 없이도 생활이 가능해졌다. 키가 8㎝나 자랐고 자유롭게 거동도 할 수 있게 됐다. 김래홍 밀알복지재단 국내사업부 대리는 “후원자들은 단순히 장애아동 한 명의 의료비를 지원한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그 가정이 소속된 지역사회와 나라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상지·정종훈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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