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3월호] 폭로-잠적-논란..고영태의 진실은?

김포그니 2017. 2.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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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인(義人)' 아니지만, 그래도 '쓰레기'는 아니다"
'내부고발자'인가? 국정농단 최순실의 '공범'인가? 탄핵심판 결정 앞두고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선 그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고영태 씨는 최순실 게이트의 포문을 연 핵심인물이다. 그는 “불의를 오래지켜봤더니 없던 정의감이 생겼다”고 했다. [중앙포토]
고영태(41) 씨는 지난해 10월 최순실(61)씨의 국정농단의혹 폭로한 핵심 내부고발자다. 당시 검찰을 비롯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가자 그를 두고 ‘정의로운 제보자’라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가 K스포츠재단을 장악하려 했다고 유추할 수 있는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국정농단의 ‘공범’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진실은 무엇일까?

Q : ‘김수현 녹음파일’이 문제되고 있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 A : “검찰에서 이미 조사받고 문제없다고 해 끝난 일이다. 제가한 말 전부 떠오르지는 않지만, K스포츠재단 당시 사무총장의 배임행위를 인지하고 ‘사무총장을 잘라야 한다’는 식으로 농담겸 한 말로 기억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사석에서 흔히하는 농담 있지 않느냐? ‘아주 이 나라가 썩었어. 싹 다 바꿔야 해. 너는 국무총리 하고 나는 문체부 장관 할게’ 뭐 이런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해명하는 것도 구차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든 적극적으로 조사받을 준비가 돼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말해왔듯 그간의 제 행태에서 문제되는 부분이 드러나면 반드시 책임지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 “삼성과 계약, ‘위험하다’는 기분 들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국에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대국민 촛불집회가 일었다. [중앙포토]

Q : 농담이라고 하기엔 대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라서 이해가잘 안 간다. A : “적어도 2016년도 당시에는 주변 동료와의 대화에서 ‘맞장구’를 잘 쳐줘야 했다. 재단의 비정상적인 면을 언론에 제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관련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서는 동료조차 속여야 했다. 제가 최순실 씨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다양한 정보를 주변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Q : 이미 2014년 말 한 언론에 최씨의 행태를 제보하지 않았나? A : “그때는 최씨가 아니라 차은택 씨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타깃이었다. 이들이 저질렀다고 추정되는 불법행위를 한 언론에 제보했지만 이상하게도 보도되지 않았다. 나쁜 일을 언론에 알리면 즉시 바로잡힐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이뤄지지않아 크게 상심했다. 이후 2015년에는 한동안 야인생활을 했다. 최씨와 사이가 틀어졌지만 문체부 측 관계자나 주변 동생들한테는 굳이 내 처지를 말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제가최씨와 알고 지내는 척하면 상대방이 저를 좀 더 존중해줬기 때문에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Q : 그러다 다시 최순실과 일하게 됐다. 마음이 바뀌었던 건가? A : “최씨로부터 2015년 7~8월쯤 갑자기 연락이 왔다. 독일에서 새로 시작할 사업이 있는데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침 독일 이민을 준비하던 지인 노승일 씨가 생각났다. 그 친구에게 좋은 기회일 것 같아 최씨와 연결해줬다. 겸사겸사 저도 같이 독일로 넘어가 (사업과 관련해) 상황을 파악하게 됐다.”

Q :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A : “삼성과 무언가를 계약하고…. 알다시피 이미 보도된 그런 내용이다. 계약할 때 저한테도 오라 했는데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기분이 들어 ‘내가 거길 왜 가?’ 이러면서 내뺐다. 방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Q : 왜 그랬나? A : “법은 잘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내빼는 편이다. 항상 그런 식이다. 말로는 남자 특유의 허세가 가득한데 막상행동은 못한다. 그냥 운동선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컴퓨터나 문서 작성, 이런 걸 잘 모르기 때문에 마치 사업가라도 된 듯허세 가득한 말로 그 분위기는 즐겼어도, 막상 실무적인 것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자리를 피했다. 누가 시키면 잘하는데 주체적으로 뭔가를 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의 개인회사 ‘더 블루 케이’ 사무실. 고영태 씨는 지난해 8월 이 회사에서 퇴직당했다. [중앙포토]

Q : 지난해 또다시 최씨에 대한 ‘폭로’를 시작했는데 어떤 계기가있나? A : “2016년 당시 K스포츠재단을 둘러싸고 비정상적인 일이 많았다. 운 나쁘게 엮였다가는 억울한 일 생길 것 같은 기분이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위선을 떨면서 잇속을 챙기는 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와, 이건 아닌데….’뭔가 나쁜 일을 하면 속으로라도 반성해야 하는데, 소위 배운 사람들이 잘못된 상황을 뻔히 다 알면서 반성조차 없었다. 챙길건 다 챙기면서 말이다.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런 걸 오래 지켜보면서 없던 정의감도 생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뭔가에 홀리듯 그렇게 (제보를) 안 하면 견딜 수 없었다.”

Q : 최씨라는 ‘권력의 핵심’과 알고 지냈는데, 개인적인 욕심도 있지 않았나? A : “당연히 있었다. 저의 경우 돈보다는 스포츠 선수 육성사업이라든지 은퇴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축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문서는 볼 줄 몰라도 운동선수한테 뭐가 필요한지는 잘안다. 하지만 좋은 기획을 올리면 김종 전 차관 같은 사람들이 사리사욕만 채워 답답하고 울컥했다.”

Q : 2016년 2월 ‘김수현 녹음파일’을 보면 K스포츠재단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내용도 나온다. A : “당시 K스포츠재단의 고위급 임원 몇몇은 최씨의 지시만 따르면서 재단 돈을 펑펑 써댔다. 무식한 내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라, 이에 대한 불만을 주변에 ‘사무총장 몰아내고 재단을 장악하겠다’는 식의 농담으로 풀어내곤 했다. 점점 성취감도 없어지고 바보가 되는 듯해 더블루K에 사직서 양식을 요청했다.

평소 최씨에게 ‘저런 XX들을 왜 쓰냐’고 자주 불만을 터뜨려서였던지 그 무렵에 오히려 최씨가 내게 사직을 강요하더라. 잘됐다 싶었다. 다만 어느 정도 정보가 모일 동안 주변 비위를 맞추면서 한동안 붙어 있었다. 더블루K를 그만두기 한 달 전인 7월 초에는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만나 그간 미처 알지 못하던 미르재단의 문제점에 대해 들어보기도 했다.”

━ “내가 내연남? 그랬다면 차은택 씨처럼 잘나갔겠지”
1월 9일 국정조사 제7차 청문회에서 노승일 씨가 “폭로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고영태 씨도 같은 이유로 한동안 잠적하게 됐다고 했다. [중앙포토]

Q :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왜 만났나? A : “이 사무총장은 미르재단의 잘못된 점을 알게 되자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외롭게 싸우던 인물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었다.”

Q : 어떤 얘기를 해주던가. A : “사업계획 없는 비정상적 사업 운영안이 올라오면 절차상 하자를 들어 결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사장을 비롯한 사업이사 등이 위임전결규정을 변경해서라도 사업을 강행했다고 하더라. 또 미르재단의 구성원이 아니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이들이 이 사무총장에 대해 재단 사유화및 개인비리 등 음해성 소문을 퍼뜨려 개인적으로도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Q : 한동안은 외부 접촉도 하더니 최근 왜 잠적했나? A : “최씨 밑에서 일했던 입장에서 뭘 잘했다고 떠들썩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겠나. 또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도 해서 움츠러든 측면도 있다.”

Q : 신변의 위협을 어떻게 느꼈나? A : “뭐라 딱히 표현할 수 없는데…. 애초 언론에 제보하고 검찰에 모든 내용을 다 얘기할 때도 은연중 그런 생각은 항상 안고 갔다.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닐까? 보복당할 수도 있을 텐데’라고. 한 번은 집에 가는데 어떤 봉고차가 멈추더니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더라.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이젠 죽는구나 했다. 그때 심정을 이루 다말할 수 없다. 알고 보니 기자들이었지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Q :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 ‘의인’ 소리 듣다가 최근엔 국정농단의‘공범’ 얘기가 나온다. A : “이제껏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의인으로 생각해본 적 없다. 어떤 국회의원님이 저를 의인이라 하시던데 개인적으로 부담스럽고 민망했다. 별로 제게 도움되지 않는 소리다.” 고씨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기자와의 수차례 통화에서도 “자꾸 내가 의인이라는 식으로 방송에 나오던데,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누가 보면 의인이라고 자평하는 줄로 오해할 것 같아 염려된다”고 말해왔다.
최순실 씨가 설립한 재단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K스포츠재단. 고씨는 “지난해 K스포츠재단에는 비정상적인 일이 많았다. 한 고위급 임원은 재단의 돈을 펑펑 써댔다”고 했다. [중앙포토]

Q : 최순실씨와 내연관계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A : “실제 내연관계였다면 증거가 반드시 있을 거다. 그런데 왜내놓지 못하나? 내연남이라면 차은택 씨처럼 잘나갔어야지,왜 한몫 제대로 못 챙겼을까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다. 내가의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쓰레기까지는 아니다.”

Q : 과거 유흥업계에서 일한 전력 때문에 좋지 않은 소문이 있는 것아닌가? A : “펜싱으로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메달도 따봤기 때문에 운동으로 먹고 살고 싶었다. 제일 잘하는 게 펜싱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한 유명 펜싱 팀에 입단하려 했다.그런데 지방에 신설된 한 펜싱 팀에서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입단하면 내가 추천한 선후배도 함께 들어올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소중했기 때문에 고민 않고 신생팀에 입단했다.

문제는 그 팀이 고작 1년 만에 해체되고 만것이다. 갑자기 팀이 없어져 오갈 데가 없어지자 큰 충격을 받았다.할 줄 아는 건 운동뿐이었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게다가 아직은 어릴때라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 건지 지혜도 부족했었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가라오케 영업사장 일을 시작하게 됐다. 어떤 일이든 시키면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는없다. 겉모습이야 한심해 보일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 “연설문 고치는 일이 큰 죄인 줄도 몰라”
고영태 씨가 2월 6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중앙포토]

Q : 지난해 말까지 머무르던 집이 장시호 씨의 명의로 된 집이었는데, 그건 왜 그런가? A : “원래 아는 형과 같이 살았는데 최씨가 보안 유지를 위해 집을 옮기라고 지시했다. 최씨의 요구대로 보안상 정식 계약서는 쓰지 않았지만 내 개인 돈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머물렀던 집이다. 원래 단순한 성격이라 그 집의 명의가 누구로돼있는지 관심도 없었고, 당시에는 장시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난 뒤에야 장씨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중에 장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간 최씨가 벌였던 일들에 대해 의문점도 있었는데 장씨와 얘기하며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보고 싶다.” 장시호 씨는 이 부분과 관련해 지난 2월 10일 변호인을 통해 기자에게 “고영태 씨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내 명의로 된 집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고씨와 동거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어이없어서 크게 웃었다. 구치소에서덕분에 처음으로 웃었다”고 말했다.

Q : 국정농단 사건의 ‘키맨’ 역할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있나? A :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폭로한 건 아닌데 여기저기서 오해를 많이 받는다. 감옥 안 가려고 다른 사람의 죄를 폭로한 게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솔직히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 가령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게 그렇게 엄청난 잘못인지 상상도 못했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그냥 뾰족한 게 튀어나와 있어서 망치로 땅땅 때려 넣고 싶었던 것뿐이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서로 반성하고, 처벌 받을 게 있으면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당장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

Q : 살아오면서 가장 큰일을 겪고 있는 셈인데, 후회하지는 않나? A : “가끔 길에서 모르는 분들이 제게 ‘힘내세요. 고영태 씨~’라고 해주신다. 순간 멋쩍고 민망해서 고개로 까닥 인사하고돌아서곤 했다. 언젠가 방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뭐라고…’라고 중얼거리게 되더라. 처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잘못된 일을 알리는 나 자신이 마치 영화 <내부자들>의 주인공이라도 된듯 착각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철이 드는 것 같다. 최씨가 나쁜 사람인 줄 알면서도 열심히 시키는 일을 하던 시간이 있었다. 남은 시간 반성하며 살고 싶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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