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라인] 자의 반 타의 반.. '결혼은 선택'이 된 사회

이천종 입력 2017. 2. 22. 19:30 수정 2017. 2. 2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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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꺼리고 만혼 풍조 만연.. 서울 합계출산율 1명 붕괴 / 우려했던 '인구절벽' 가속화 / 베이비붐세대 자녀 혼인율 낮아 / 30대 초반 여성 출산율 5.7% 감소 / 고령산모 비중은 10년새 5배 늘어 / 초산 연령 높아져 둘째 출산 줄어 / 세종 1.82명.. 전국서 나홀로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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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22일 발표한 ‘2016년 출생·사망통계(잠정)’는 저출산·고령화의 늪에 빠진 한국의 우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년 출생아 수는 급감해 40만명선에 가까스로 턱걸이했고, 서울(0.94명)은 아예 합계출산율이 1명을 넘지 못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뜻하는 조(粗)출생률도 7.9명을 기록해, 마지노선인 8명대가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결혼을 기피하거나 만혼이 느는 추세라 앞으로 출산율이 반전될 기미도 없다는 점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수십조원을 퍼붓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려했던 ‘인구절벽’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을 수 있는 30대 초반 여성의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지난해 30∼34세 여성의 1000명당 출산율은 110.1명으로 2015년에 비해 6.6명(5.7%) 감소했다. 고령산모(35세 이상) 비중도 늘었다. 고령산모 비중은 지난해 26.3%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2.4%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고치다. 10년 전인 1996년에는 고령산모 비중이 5.3%에 불과했다.

지난해 아이를 낳은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도 32.4세로 전년 대비 0.2세 상승하며 최고치를 찍었다.

고령산모의 증가는 베이비붐세대(1946년 이후 1965년 사이에 출생)의 자녀인 ‘에코세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거나 사회생활 때문에 늦게 결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여성인구 1000명당 출산율을 보면 20대 후반(25∼29세)은 56.4명인 데 반해 30대 초반(30∼34세)은 110.1명, 30대 후반(35∼39세)은 48.7명이다. 40대 초반(40∼44세)도 5.9명에 달한다. 만혼으로 초산 연령이 점점 늦어져 둘째아 출산도 줄어든다. 출생아 중에서 첫째아의 구성비는 지난해 52.5%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증가한 반면 둘째아 구성비(37.7%)는 전년 대비 0.3%포인트 줄었다.

결국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해 아이를 낳던 1970년대 초반에는 100만명에서 1990년대까지는 60만∼70만명을 유지하던 한 해 출생아 수가 에코세대가 결혼하는 2010년 이후 40만명대로 반 토막 났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베이비붐세대의 자녀로 인구 규모가 큰 베이비붐 에코 세대가 30대 후반으로 편입됐지만, 혼인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아이를 낳지 않은 영향도 있다”며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돼 출생아 수는 40만명 전후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저출산 정책도 출산율을 높이지 못한 이유로 지목된다.

정부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2016년 목표치는 합계출산율 1.27명, 출생아 수는 44만5000명이었다. 하지만 두 항목 모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제3차 기본계획은 큰 틀과 세부정책들에서 기존 대책들과 차이가 없다”며 “새로 제시한 청년 일자리·주거 대책마저도 청년들의 결혼·출산 선택을 지지할 수 있는 실효성이 결여됐다”고 지적했다.

출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1.82명)였다. 지난해 태어난 출생아 수도 3300명으로 전년 대비 22.2% 늘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나홀로 상승세였다. 공무원과 전문직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젊은층 인구가 대거 유입된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전남(1.47명)은 지방자치단체의 출산장려 지원책이, 제주(1.43명)는 젊은층 인구의 유입이 약발을 발휘해 상위권 성적표를 냈다.

사망자 수는 고령화 영향으로 기대수명에 다다른 80세 이상 고령층에서 증가해 역대 최고치(28만1000명)를 찍었다. 남자 사망자 수는 70대(4만4000명)가, 여자 사망자 수는 80대(5만1000명)가 가장 많았다. 50대 남자의 사망률이 여자보다 2.7배 높아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50대 남성이 간암이나 폐암 등 질환을 여성보다 더 많이 앓고 있다는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다.

◆ 극약 처방에도… 3년 만에 출산율 ‘뒷걸음질’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통해 지난해 합계출산율 1.27명, 출생아 수 44만5000명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은 3년 만에 또다시 뒷걸음질했다. 막대한 혈세만 날린 셈이다. 정부가 긴장하는 이유다.

정부는 1995년 합계출산율이 1.65에서 점차 줄기 시작해 2005년 사상 최저치인 1.08까지 떨어지자 비상이 걸렸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해 이듬해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차 계획 땐 0~4세 차등보육, 교육비 지원 대상 확대와 함께 방과 후 학교를 확충하는 등 출산·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에 역점을 뒀다. 2011년부터 시작된 2차 계획에서는 신혼부부에게 미임대 국민임대주택 입주 우선권 부여, 양육수당 지급 대상자 확대 등 임신·출산과 양육비에 대한 지원이 확대됐다. 육아휴직 급여 정률제 도입과 유연근무제 확산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도 본격 추진됐다.

나아가 3차 계획에서 합계출산율을 2020년 1.5명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21조4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은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2014년 1.21명에서 2015년 1.24명으로 소폭이나마 반등했다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다양한 정책과 함께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한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다양한 수치를 통해 확인된다.

출산율의 경우 전년과 비교해 35세 이상에서 늘고 35세 미만은 감소했다. 가임여성 수 또한 2006년 1361만5000명에서 2015년 1279만6000명으로 10년 새 82만명이 줄었다. 합계출산율이 늘어난다 해도 전체 분모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출생아 수는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제도적인 뒷받침도 부족하다.

저출산 로드맵이 3차 계획에 이르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정책운영위원장을 겸직하고 위원회의 사업을 점검·평가할 분석평가과가 복지부 내에 설치되는 등 상설 전담기구도 없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통합 추진되는 탓에 상호 모순되거나 충돌하면서 정책 목표의 일관성도 떨어진다. 청년 일자리·주거대책 등이 실현 가능성이 낮고 효과도 불투명해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저출산 정책 전담부서 마련 △양육·고용·주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정책 개발 △출생-사교육-고용-소득-결혼-출산-노년복지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해소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 중기 육아휴직 도입률, 대기업 절반 그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가정 양립을 위한 각종 제도 도입 격차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고용노동부의 일 ·가정 양립 제도 도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인 이상∼30인 미만 중소기업의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 도입률은 각각 53%, 15%를 기록했다. 육아휴직·유연근무제 도입률이 각각 93%, 53%인 대기업(300인 이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30인 미만 중소기업의 출산휴가제 도입률도 53%에 그쳐 대기업의 89%와 큰 격차를 보였다. 30인 이상∼100인 미만 중소기업도 출산휴가 도입률 73.6%, 육아휴직 73.1%, 유연근로제 25.9% 등으로 대기업과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고용부는 중소기업의 일·가정 양립제 활성화를 위해 올해부터 인센티브를 강화하기로 했다. 시차출퇴근제, 재택·원격근무제 등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해 운영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간접노무비를 활용근로자당 연 최대 520만원으로 인상해 지원한다.

또 재택·원격근무 도입에 필요한 시스템과 설비·장비 비용을 지원하는 ‘원격근무 인프라 구축 지원 사업’을 도입해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등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도입할 경우 지원 규모도 전환근로자 1인당 월 최고 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인상한다.

한편 고영선 고용부 차관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제이앤비컨설팅을 방문해 “4차 산업혁명, 저출산 등 경제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경직적으로 장시간 일하는 문화를 유연하게 바꾸는 것은 기업과 국가의 생존전략이 됐다”며 “정부도 유연근무, 전환형 시간선택제 제도 확산과 함께 인식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며 중소기업의 변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제이앤비컨설팅은 경력단절을 경험한 이수연 대표가 직접 일·가정 양립을 위해 정시퇴근, 유연근무 등의 제도뿐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가족과 함께하는 사진 콘테스트 등을 시행 중이다.

◆ 결혼도 ‘스펙’… 소득 높아질 때까지 미룬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결혼에도 소득이나 학력 등 스펙이 작용하며 이를 높이기 위해 결혼이 늦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2일 발표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고학력·고소득일수록 미혼 확률이 컸고 남성은 저학력·고소득일수록 결혼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보고서는 2000∼2002년 당시 만24∼28세였던 미혼 남녀 734명을 2015년까지 추적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 과정에서 결혼한 사람은 560명, 2015년까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174명이었다.

미혼자 174명 중 남성이 70%(121명)였고 여성은 30%(53명)였다.

소득 수준을 보면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높았다. 미혼 여성의 평균 소득은 192만원으로 기혼 여성 전체의 평균보다 많았고 미혼 남성은 265만원으로 기혼 남성 전체 구간(158만∼248만원)보다 많았다.

여성 미혼자의 교육수준은 평균 6.29로 미혼 남성(5.72)이나 기혼 여성(5.41∼6.25)보다 높아 고학력이면서 고소득인 여성일수록 미혼으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반면 남성 미혼자의 학력 수준은 5.72로 27세 이상 남성 기혼자(6.42∼6.64)보다 낮았다.

보건사회연구원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은 하향적 선택 결혼을, 여성은 동등한 수준을 택하는 결혼을 할 확률이 높음을 의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은 재무적 능력과 감정적 능력(결혼으로 배우자를 만족시키는 정도)이 비슷한 남녀가 결혼한다는 내용의 경제학의 ‘선택적 결혼 이론(Assortative mating)’으로 설명된다.

이 이론은 결혼을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과정을 각자 교육에 대한 투자, 그리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배우자 선택과정으로 본다.

기존에 남성 주도였던 결혼 시장이 전체적인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며 남녀가 서로 동시에 선택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이 때문에 남녀간 탐색 기간이 길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세종=이천종·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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