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악의 평범성'은 교활한 면죄부 아닐까

2017. 2. 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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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를 주도한 김기춘 같은 사람들이 ‘범죄인 줄 몰랐다’거나 심지어 김문수는 ‘행정에서는 다 하는 일’이라고 하는, 질기고도 질긴 악의 상투적이고 진부한 역사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끔찍한 전율을 느낀다.

1962년 5월 31일, 교수형에 처해진 사체가 화장돼 지중해의 이스라엘 수역 밖으로 뿌려졌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그렇다. ‘악의 평범성’으로 잘 알려진 인물,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이 나라 엘리트 공무원들을 향해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곧잘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용어의 주인공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은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처음 사용했다. 권력과 주권과 저항과 전체주의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바탕으로 해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 전체를 취재한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끝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교수대 위에서 행한 마지막 발언을 정리한 후, 이렇게 쓴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뤄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장에선 아돌프 아이히만.
독일 나치시대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진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해보자. 악의 평범성. 혹시 이것은 교활한 면죄부는 아닌가. 일부의 주장은 아렌트가, 그리고 재판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아이히만의 연기, 고도의 연기, 어리숙한 척하면서 자신을 부당한 명령에도 거역하기 어려웠던, 일상에서는 지극히 자애로운 아버지이고 어쩌면 직장에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를 충실하게 이행한 죄밖에 없는, 그러므로 역사적 단죄를 할 수는 없는, 그런 어리숙하면서도 성실했던 중간관리자로 능숙하게 연기한 것에 속아넘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아이히만에 대해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엘리트 공무원들에 대해 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을 쉽게 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묵묵히 책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부당한 줄 알지만 중간관리로서 이에 저항하거나 최소한 회피할 만한 힘도 용기도 없었노라고, 그렇게 면죄부가 쉽게 남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조리 법정에 세우고 모두를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법적 처리 여부와 무관하게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이 손쉽게 남발됨으로써 이 표현 사이로 수많은 사실들과 무책임한 행위들이 면죄부를 받고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악의 평범성’이 아렌트의 책에 담긴 복합적인 주장을 제대로 옮기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평범성’이라는 학술적 개념이 일상에서 쓰이는 생활용어의 어수선한 느낌 사이로 섞여 들어가면서 원래의 날카로운 뜻이 마모된 점이 있다. 아렌트에게 ‘평범성’이란 오랜 관습과 진부함에 사로잡힌 상투적인 관념과 행위일 텐데, 이것이 우리의 언론이나 생활언어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부당하지만 강력한 상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희뿌옇게 쓰이고 있다.

‘악의 평범성’은 아렌트 주장 제대로 반영 못해

아렌트의 원서에 쓰인 ‘banality’란 용어는 ‘평범’이라는 뜻도 있지만 ‘진부함’이나 ‘상투성’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평범성’이라는 번역이 결코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원제에 쓰인 ‘banality’를 평범성 대신에 ‘진부함’이나 ‘상투성’이라는 말로 썼더라면 ‘정치철학자’ 아렌트의 뜻이 좀 더 뚜렷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렌트의 보다 정확한 뜻은 일상생활을 충실하게 유지하려는 ‘평범한’ 사람에 대한 인상기적인 묘사가 아니라, 권력의 강력한 명령에 부합해 저마다의 위치에서 나름의 소신대로 확고하게 행동해 온, 그러면서도 그 행위가 지닌 역사적·정치적·윤리적 책임을 망각해버린, 오랜 세월 동안 독일 관료계와 지성계에 ‘진부하고도 상투적으로’ 지속된, ‘말과 사고’를 상실한 독일인들의 ‘진부한’ 사유체계 전반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렌트는 이 책을 마무리하기 직전에, 그러니까 위에 인용한 대목의 바로 위에서, 아이히만이 교수대 위에서 행한 최후의 행동과 발언을 묘사한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처형장으로 걸어갔으며, ‘포도주 한 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을’ 마셨다. 성서를 읽어주겠다는 개신교 목사의 도움을 거절하였는데, ‘두 시간밖에 더 살 수 없는데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형리들이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쓰겠냐고 물었을 때 아이히만은 ‘나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이러한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아렌트는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고 썼다.

그리고 교수대 위의 최후 진술. 아이히만은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렌트는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 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 냈다’라고 썼다. 바로 이 ‘상투어’가 아이히만의 정신을 줄곧 지배했던 ‘평범성’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다시 말해 ‘부당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 특히 전체주의적 권력에 수직계열화된 사람들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행동과 사유 말이다.

독일 나치시대의 음악가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연주한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앨범 사진. / 정윤수
그러니 법적 단죄 여부를 떠나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이 스스로를, 또는 그를 묘사하는 언론 등이 그럴 듯한 현상이라도 포착한 듯 ‘악의 평범성’을 손쉽게 운운해서는 곤란하다. 저 일제시대 이후 지금까지 관료사회를 지배한 정서는 ‘부당한 명령이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평범한 관리’가 아니라 ‘진부하고 상투적인’ 틀 안에서 오랫동안 부당한 명령에 순응하거나 심지어 노련하게 입안하고 실무적으로 집행해 온 역사, 곧 악의 상투적인 진부함(banality of evil)의 역사였다.

히틀러 영웅주의 스스로 내면화했던 오르프

히틀러 시대의 음악가로 칼 오르프가 있다. 그의 대작 오라토리오 <카르미나 부라나>는 현대 관현악의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은 지 오래이며, 특히 그 첫 번째 곡은 오디오 마니아들의 테스트 음악으로도 쓰인다. 영화 <엑스칼리버>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 코미디, 광고의 배경 효과음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바이에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오르프는 <카르미나 부라나>를 통해 지극히 독일적인, 독일의 민속성과 사랑과 영웅주의가 교직된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당대의 쉬트라우스나 스트라빈스키가 그러했듯, 오르프는 기존의 관현악 선법을 과감히 물리치고 각 성악 파트와 대규모 합창단 및 관현악단을 총동원해 특정 주제나 악구의 반복, 무반주로 배치된 독창부의 내레이션, 그레고리언 성가를 연상시키는 화성 전개 등의 실험을 구가했다.

자신의 정신과 사상의 원천인 바이에른의 베네딕트 수도원 도서관에서 발견된 12세기경의 시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단번에 히틀러의 관심을 끌었다. 인간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운명의 여신’에 대한 찬가를 시작으로 해 독일의 자연과 건강한 독일 남녀의 비극적 영웅 정서를 환기시킨 오르프의 세계는 히틀러가 추구한 문화정책과 직결됐다. 게다가 오르프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선율은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에 질색한 히틀러의 강력한 호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바로 이런 점이 아렌트가 묘파한 ‘악의 평범성’, 아니 오래된 독일인 특유의 ‘진부하고 상투적인’ 영웅주의다.

다만 한 가지 우리의 경우와 다른 점은 히틀러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히틀러적인 영웅주의를 내면화했던 오르프는 그래도 전쟁 이후에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이념을 건축으로 과시한 알프레드 슈페어도 20년의 감옥생활을 마친 후에 세상 밖에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저 일제강점기와 독재를 거쳐 이 21세기에도 지속된 사상과 예술의 검열과 탄압, 즉 ‘블랙리스트’ 범죄를 주도한 김기춘 같은 사람들이 ‘범죄인 줄 몰랐다’거나 심지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행정에서는 다 하는 일’이라고 하는, 질기고도 질긴 악의 상투적이고 진부한 역사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끔찍한 전율을 느낀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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