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여호의 4월 평양 원정, 정말 별탈없을까?

김태석 2017. 2. 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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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여호의 4월 평양 원정, 정말 별탈없을까?



(베스트 일레븐)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북한을 상대로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 총 네 차례 맞붙었다. 당시 홈 앤드 어웨이였기에 두 차례 평양 원정 경기가 성사되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은 대한축구협회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걸었다. 극도로 축소된 취재진만 방북을 허용하겠다는 뜻과 함께, 경기 전에 의무적으로 국기 게양 및 국가 제창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몽니를 부리는 북한을 FIFA와 AFC에 제소했고, 북한은 한국을 상대한 두 차례 홈 경기를 중국 상하이 홍커우 스타디움에서 열어야만 했다. 이념적, 정치적 문제를 떠나 축구와 스포츠로서 소통해야 한다는 기본적 의무를 저버린 상황이다.

오는 4월 평양에서 중요한 일전을 앞둔 윤덕여호는 어떤 운명을 마주하게 될까?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은 오는 4월 3일부터 21일까지 평양에서 예정된 2018 AFC 여자축구 아시안컵 B조 지역예선에 임한다. 북한·우즈베키스탄·홍콩·인도와 한조에 속한 한국은 B조 지역예선에서 북한을 넘어 1위를 기록해야만 내년 요르단에서 예정된 2018 AFC 여자축구 아시안컵 본선에 오를 수 있다. 2018 여자축구 아시안컵에는 2019 프랑스 여자축구 월드컵 본선 티켓 다섯 장이 걸려 있다. 즉, 평양에서 열리게 될 지역예선 B조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윤덕여호에게 반드시 돌파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다.

그런데 이번 지역 예선을 두고 윤덕여호는 말 못할 고민에 빠져있다. 북한이 여자축구계에서 세계적 강호라는 점을 차치한 고민이다. 상대의 월등한 실력은 키프로스컵을 비롯해 남은 기간 주어진 훈련과 경기 일정을 통해 부지런히 노력해 극복하면 된다. 윤덕여호를 괴롭히는 진짜 이유는 평양에서 어떠한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일단 생활적 측면에서부터 엄청난 고난이 예상된다. 다른 팀은 몰라도, 군사적 대치 상태에 놓여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윤덕여호는 훈련과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호텔에서만 머물 수밖에 없다. 감시원이 따라붙을 공산이 큰 만큼 사실상 구금 상태가 될 공산이 크다. 20일 첫 훈련이 끝난 후, <베스트 일레븐>과 만난 윤 감독도 바로 이점을 걱정했다. 선수들이 경기 및 훈련 외적 시간에 산책 등 여유를 즐기며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어야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것도 경기라도 치를 수 있을 경우에나 할 수 있는 고민이다. 가장 큰 관건은 경기 전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제창을 북한이 허락할 수 있느냐다. 북한은 앞서 허정무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입때껏 단 한 차례도 이를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런데 윤덕여호는 4월 7일 김일성경기장에서 벌어질 북한전을 비롯해 평양에서만 네 경기를 치른다. 남북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는 허락한다는 제3의 선택지를 북한이 제시할지 모르나, 한국을 대표해 국제대회에 나서는 윤덕여호와 대한축구협회로서는 이런 제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대한축구협회도 이점을 무척 걱정하고 있다. 일단 북한이 이번 지역예선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만큼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제창을 당연히 허락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북한의 태도를 떠올리면 낙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윤 감독도 걱정이 크다. “어쨌든 경기 일정이 주어졌으니 훈련을 통해 최상의 전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제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떠한 일이 빚어질지 알 수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이점에 대해 나름 대처 방안을 준비할 것이라면서도, 만에 하나 빚어질 수 있는 상황 때문에 주어진 승부에 집중할 수가 없어 윤 감독으로서는 고민이 크다.

축구와 정치는 분명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원론적 시각을 떠나, 축구와 정치가 별개일 순 없다. UEFA가 지난 유로 2016 지역 예선 대진 추첨 당시 취했던 자세를 떠올리면 그렇다. UEFA는 대진 추첨에 앞서 당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스페인과 지브롤터를 정치적 이유로 한 조에 묶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경우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대립 때문에 다른 조에 묶이게 했다. 스페인과 지브롤터의 경우, 영국 자치령인 지브롤터를 자국령으로 주장하는 스페인의 자세 때문에 부러 같은 그룹에 자리하지 못하도록 했다. 원론적 시각에서 무작위 대진 추첨이 되어야 하지만, 행여 지역예선을 치르면서 불거질 수 있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UEFA가 미리 손쓴 것이다. 이렇게 미리 손썼음에도 불구하고 UEFA는 지역 예선을 치르면서 혹독한 경험을 해야 했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대결에서, 같은 핏줄인 코소보의 독립을 축하는 알바니아 팬들의 드론 퍼포먼스 때문에 난투극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AFC도 UEFA와 마찬가지 자세를 취해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북한에 지역예선 개최권을 부여했다면, 행여 한국이 같은 그룹에 속하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해뒀어야 했다. 하지만 어떠한 제약 조건도 없이 한국과 북한이 같은 조에 들어가게 되면서 경기 개최를 둘러싸고 상당히 복잡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시작했다. 최근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비롯해 김정남 피살사건까지 벌어진 터라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윤덕여호는 별탈없이 평양을 다녀올 수 있을까?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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