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에 2조원짜리 '인공호흡기'

조형국·김기범 기자 입력 2017. 2. 21. 06:01 수정 2017. 2. 2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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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정부, 오염원인 ‘보’ 그대로 두고 ‘천변 저류지’ 10곳 조성 계획
ㆍ습지 없앤 자리에 ‘인공 습지’…수질 개선 실패 또 한 번 자인…엇박자 정책에 예산 눈덩이

2013년 8월 4대강 사업으로 지어진 영산강 승촌보 인근에 마치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은 녹조가 강을 뒤덮은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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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나빠진 하천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2조원 넘게 들여 저류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원래 있던 천연 여과기능 습지는 밀어버렸다가 수질이 나빠지자 이제 와서 돈을 퍼부어 ‘친환경 여과시설’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애초에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둬서 수질을 악화시키지 않았더라면 필요도 없을 ‘값비싼 인공호흡기’를 달아 연명하는 셈이 된다. 수질을 개선한다던 4대강 사업의 목표가 실패했음을 정부가 자인한 또 하나의 방증으로 꼽힌다.

20일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제출받은 ‘차세대 물관리를 위한 11대 당면과제’ 문건을 보면, 정부는 낙동강 강정 고령보, 영산강 승촌보 등 전국 10곳의 보 인근에서 ‘친환경 필터링 시스템(다목적 천변저류지·EFP)’을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드러난다. 모래 여과, 생태처리 기능을 갖춘 자연형 저류지를 하천변에 조성해 상류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을 정수해서 하류로 흘려보내거나 상수원수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수공이 EFP를 적용하기로 한 대상지역 10곳은 한강 이포보, 낙동강 달성보·합천 창녕보·창녕 함안보·강정 고령보 등 모두 4대강 사업으로 지은 보가 들어선 곳이다. 총 면적 약 8000㎡에 천변저류지·천변습지·생태저류지를 조성하는 데 약 2조2000억원이 투입될 방침이다. 한 곳당 적게는 1600억원, 많게는 3300억원이 들어간다. 수공은 수질오염이 특히 심한 영산강 승촌보, 낙동강 강정 고령보 2곳에서 우선 시범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당초 이명박 정부는 ‘수질 개선’을 4대강 사업의 명분 중 하나로 내세워 16곳에 보를 설치했다. 그러나 반대 측의 우려대로 물이 잘 흐르지 못해서 4대강 수질은 악화돼 왔다.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정작 더 나빠지자 천변·생태 저류지나 습지로 흙탕물과 유기물, 녹조 등을 여과한다는 계획을 꺼내든 것이다.

이는 주요 오염원인 보를 그대로 둔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안 의원은 “처음부터 4대강 사업으로 보를 짓지 않았으면 안 생겼을 문제인데, 정부는 보를 유지하면서 추가 비용을 들여 ‘인공호흡기(여과시설)’를 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땜질식 처방은 정부 스스로 내놓은 정책 곳곳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생태 가치가 높은 4대강 유역 보전지구, 완충지구를 친수지구로 바꿔 개발하는 데 빗장을 풀기도 했다. 또 수변공원에 투자를 늘리고 규제를 완화해 개발업자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제는 천연 여과기능의 습지를 개발논리로 밀어 수변공원을 만들었다가, 수질이 나빠지자 돈을 들여 여과기능을 하는 친환경 저류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나마 남은 천변 습지마저 파괴될 우려가 제기됐다.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강을 강답게 만드는 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보를 유지한 상태에서 인위적인 저류지를 조성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를 철거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실상 4대강 사업의 수질 개선 기능 실패를 자인하고 후속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수질 악화가 예상될 때 4대강 보에 갇혀 있던 물을 제한범위까지 최대한 방류하기로 결정(경향신문 2월13일자 4면 보도)하거나 저류지 조성을 통해 수질 개선을 도모하는 식이다.

수공과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4대강 지류·지천의 수질개선, 농업용수 활용 등에 2조8000억원을 들인 데다 이번 EFP 사업까지 더하면 4대강 사업 예산은 기존 22조원에서 최대 27조원대까지 늘어난다.

<조형국·김기범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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