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영웅에게 듣는다② '국민노예' 정현욱 "상대 이름값 신경쓰지마"

정명의 기자 2017. 2.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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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오는 3월6일 한국과 이스라엘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과거 영웅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난 감동을 되새기며 이번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해 본다.

2009년 WBC 정현욱.© AFP=News1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노예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정현욱(39·삼성 라이온즈 코치)은 흔치 않은 뜻의 노예라 불린 사나이다.

국민노예. 정현욱이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얻은 훈장과도 같은 별명이다. 노예처럼 쉴 틈 없이 마운드에 올라 상대 타선을 꽁꽁 묶은 데서 유래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국가대표 데뷔전'

정현욱의 2009년 WBC 시작은 미약했다. 그는 대표팀의 불펜 추격조 투수였다. 대회 첫 등판은 3월7일 일본과의 1라운드 경기. 선발 김광현이 무너지며 2-8로 뒤지던 2회초 1사 후 등판했다.

정현욱이 아직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는 순간이다. 태극마크를 처음 단 정현욱은 씩씩하게 마운드에 올라 국가대표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은 2-14, 7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지만 정현욱에게는 성공적인 데뷔전이었다.

1.1이닝 1탈삼진 무실점. 정현욱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남긴 성적이다. 이미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나온 호투였지만, 이날 일본전을 계기로 정현욱은 대표팀의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잡았다.

정현욱은 "1라운드 첫 경기, 일본을 상대로 던졌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아무래도 국제대회 경험이 없으니 패전처리 역할을 맡게 됐는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막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다"고 자신의 국가대표 데뷔전을 떠올렸다.

명장면, '검객' 오가사와라 3구삼진

정현욱은 대회 기간 대표팀이 치른 9경기 중 5경기에 등판했다. 왜 그에게 '노예'라는 별명이 붙여졌는 지 알 수 있는 대목. 등판한 5경기에서 정현욱은 10⅓이닝을 소화하며 단 2실점, 1승 1홀드에 평균자책점 1.74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야구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명장면도 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대표팀의 '검객'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3구삼진으로 잡아낸 것. 오가사와라는 일본프로야구에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 연속 30홈런을 기록했다.

2009년 WBC 정현욱.© AFP=News1

3월9일 열린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 정현욱은 한국이 1-0으로 앞선 6회말 1사 후 마운드에 올랐다. 가볍게 6회말을 마친 정현욱은 7회말에도 등판해 첫 타자 이나바 아쓰노리를 4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러자 일본은 우치카와 세이지의 타석에 대타 오가사와라를 등장시켰다. 일본 입장에서는 1점 차 뒤지고 있던 경기 흐름을 일순에 돌리기 위한 회심의 카드였다.

그러나 정현욱은 공 3개로 오가사와라를 덕아웃으로 돌려보냈다. '미스터 풀스윙'으로도 불리는 오가사와라는 시원하게 헛스윙만 3번을 한 뒤 씁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당시를 떠올려 정현욱은 "오가사와라 얘기는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도 상대 이름값에 위축되고 그런 것은 없었다"며 "내 공을 믿고, 포수 미트만 보고 던졌다. 상대를 의식하지는 않았다. (박)경완 선배, (강)민호를 믿고 던졌던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말 "국가대표 아무나 하나"

3월6일 개막하는 제4회 WBC 대회에도 한국 투수들은 이름값이 쟁쟁한 타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네덜란드 대표팀에는 잰더 보가츠(보스턴), 디디 그레고리우스(양키스), 안드렐톤 시몬스(에인절스), 조나단 스쿱(볼티모어) 등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포진했다.

그러나 정현욱은 "캐처 미트만 보고 꽂는거다. 뭐 있나"라며 "다들 공이 좋은 투수들이다. 국가대표 아닌가. 국가대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감을 갖고 던지면 무서울 타자는 없다"고 후배 투수들이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대표를 스스로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는 조언도 있었다. 사실 비 시즌 동안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선수들에게는 무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대회를 통해 훌쩍 크는 선수들도 많다. 정현욱이 딱 그런 경우다.

정현욱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국가대표다. 또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당시 선동열 삼성 감독과의 재밌는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정현욱은 "WBC를 다녀와서 오히려 선 감독님께 밸런스가 안 좋다고 많이 혼났다. 그 땐 선 감독님이 엄하셔서 죽어라고 훈련할 때였다"며 "그래도 그 해 감독님이 관리를 엄청 해주셨다. 중간에 힘들 것이라며 엔트리에서도 빼주셨다. 머리를 식히라는 차원이었다"고 전했다.

◇결승전의 아쉬움 "후배들이 설욕해주길"

2009년 WBC는 한국에게나 정현욱에게나 나무랄데가 없는 대회였다. 다만, 3월23일 일본과 맞붙은 결승전이 아쉬웠다.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연장 끝에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허용하며 3-5로 분패했다.

무실점 행진을 벌이던 정현욱도 첫 실점을 기록했다. 정현욱은 선발 봉중근에 이어 1-1 동점이던 5회초 무사 1,3루에서 등판했다. 5회초 위기는 무사히 넘겼지만 7회초 1점을 빼앗긴 뒤, 8회초 남겨놓고 간 주자를 구원 등판한 류현진이 홈으로 들여보냈다.

정현욱은 "그 땐 팀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어린 선수들이 많아 부담도 없었다"며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승전이었다. 이번엔 후배들이 설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현욱이 꼽은 이번 대회 키 플레이어는 차우찬. 과거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사이다. 정현욱은 "(차)우찬이는 선발과 불펜 전천후로 뛸 수 있는 투수이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면서도 "다들 대단한 투수들인데 내가 감히 누굴 평가하겠나"라고 몸을 낮췄다.

2009년 WBC 정현욱.© AFP=News1

◇정현욱 2009년 WBC 성적

3월7일 일본전(1라운드) : 1.1이닝 1탈삼진 무실점

3월9일 일본전(1라운드 순위 결정전) : 1.2이닝 2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홀드

3월15일 멕시코전(2라운드) : 2.2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승리

3월21일 베네수엘라전(준결승) : 1.1이닝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3월23일 일본전(결승) : 3.1이닝 4피안타 4탈삼진 2실점

5경기 10⅓이닝 2실점,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1.74

docto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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