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의 내 인생의 책] ②나와 너 | 마르틴 부버
[경향신문] ㆍ다름을 전제한 대화의 자세
1970년대 후반,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었던 명동의 필하모니는 아지트와도 같았다. 머리를 길러 다분히 히피족이었으니 그 모습으로 대낮에 명동 거리를 활보하기는 너무나 위험했다. 자칫하는 순간 고이 기른 머리에 경찰들이 흠집을 내기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아주 편한 의자에 독서등까지 있던 그곳은 하루 종일 머물러도 눈치 받지 않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대로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고, 그때마다 책가방에는 파스칼이나 니체 혹은 카프카와 같은 이들의 책이 들어 있곤 했다.
시간이 지나 정해 놓은 그들의 책을 얼추 읽었다고 생각할 즈음에 또 다른 이가 나타났다. 그는 이스라엘의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대인인 그는 나치와 히틀러 그리고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인간성 상실시대를 살아가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간 사이 존재론’을 역설하며 강조했다. 그가 쓴 <나와 너>는 그러한 인간관계의 시작인 만남과 그 관계를 이어주거나 유지시키는 대화의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만남과 대화야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만남이 서로 다른 것들끼리 맺어지는 관계이듯이 대화 또한 그 다름을 전제하여야 하며, 대화를 통하여 서로 다른 삶이나 사고의 방향을 보이더라도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는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행위라고 말한다.
책은 인간이란 결국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너를 나와 같게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놓치지 않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너에게 나를 이야기하기보다 너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너를 듣기보다 나를 이야기하고 강요하려 했으니까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지누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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