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북 "국제법 위반" 트집..부검 결과 앞두고 수사 정당성 부인

쿠알라룸푸르 | 심진용·이인숙·이지선 기자 입력 2017. 2. 20. 22:47 수정 2017. 2. 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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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강철 회견으로 본 북 전략

20일 오후 3시1분(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부킷다만사라에 있는 북한대사관 앞.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4분 후 강철 대사가 나타났다.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말레이시아가 신원이 확인된 외교여권 소지자의 시신을 친족의 DNA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인도를 늦추는 것은 정치적 음모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입에서는 단 한번도 ‘김정남’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말레이시아 외교부에 불려 갔다 온 길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전날 사실상 북한이 김정남 피살 사건 배후임을 시사하는 기자회견을 한 데 이어 이날 오전 강 대사를 초치, 사흘 전 말레이시아 정부를 비난한 것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평양에 나가 있는 자국 대사까지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외교부는 강 대사 면담이 끝나기도 전에 보도자료를 내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했고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왔다. 강 대사의 비판은 근거 없고 우리 정부의 평판을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강 대사가 김정남 부검이 진행된 병원 앞에서 기습 회견을 해 말레이시아를 맹비난한 데 대한 반격이었다.

강 대사가 준비해 온 5쪽 분량의 영문 기자회견문은 수사과정을 하나하나 문제 삼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결탁한” 말레이시아와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르면 22일 발표될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사의 정당성을 부인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받아들여지기 힘든 공동조사를 제안한 것도 명분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강 대사는 기자회견 내내 ‘김철이라는 이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국적자’라고만 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남은 “DPRK에 적대적인 세력이 주장하는 이름”일 뿐이다. 강 대사는 “우리가 알기도 전에 남한 언론들이 사건 발생 후 하루 만에 DPRK 요원에 의해 다른 이름을 가진 이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남은 누구냐’ ‘김철은 뭐하는 사람인가’ 등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정남은 모른다. (여권에) 김철로 돼 있다”고만 한 뒤 등을 돌렸다.

말레이시아 당국도 지금까지 김정남의 이름을 공식 언급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그(김정남)가 들고 있던 여권이 진짜가 맞다”고 했고, 기자회견을 한 경찰청 부청장도 김정남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살해’라고도 단정짓지 않았다. 북한에 섣불리 빌미를 주지 않는 기술적인 회견이었다. ‘김정남’도 ‘피살’도 없이 북과 말레이시아 사이에서 치열한 고공 외교전이 진행 중인 셈이다.

이날 강 대사의 회견에서는 그간 우호적이었던 말레이시아가 ‘공정한 수사, 법대로 처리’를 고집하며 신속·단호한 대응을 밀어붙이는 데 대한 적대감이 묻어났다. 19일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정치적 배경에는 관심이 없다”면서도 북한 용의자 5명의 신상과 얼굴을 모두 공개했고, 시신도 “가까운 유가족에게 내주겠다”고 밝혔다. 현지 한국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강력한 경찰력이 수사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까지 “우리 수사당국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며 힘을 실었다.

북한은 그간 자신들 소행으로 알려진 큰 사건이 일어나면 입장을 내지 않거나 관련 사실을 부인하면서 “모략 책동”이라고 반발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탈북한 김정남의 외사촌 이한영이 1997년 살해됐을 때에는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당시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반공화국 모략 책동”이라며 반발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탈북한 1997년에는 “한국 당국이 황 비서가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부인했다가 뒤에 “납치”라고 말을 바꿨다.

이번 강 대사 회견에는 현지 언론과 한국 등 외국 취재진 150여명이 몰렸다. 회견 뒤 북한대사관 직원 5명이 검은 코롤라 승용차를 타고 나가자 기자들이 몰려들어 질문을 던졌으나 “왜 물어보시오. 뒤에서 칼침 놓는 것 아니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쿠알라룸푸르 | 심진용·이인숙·이지선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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