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러시아 커넥션' 경로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2017. 2. 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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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친러 우크라 정치인 → 친러 트럼프 측근 → 미 안보사령탑
ㆍNYT, 서류 전달 과정 공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 스캔들로 사퇴하기 1주일 전. 플린의 사무실에 미국의 러시아 제재 해제 방안이 담긴 제안서 한 통이 담긴 밀봉된 봉투가 전달됐다. 서류봉투를 가져온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헨이었다. 연방수사국(FBI)이 러시아 연루 의혹을 갖고 조사 중인 트럼프 주변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코헨은 2007년 트럼프그룹에 특별고문으로 합류했고, 옛 소련에 속했던 조지아에서 트럼프타워 건설 사업 등을 조언했다. 코헨은 지난해 대선 때 체코 프라하에서 러시아 정부 관계자를 만나 민주당 해킹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나왔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신임을 받고 있다. 코헨의 부인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코헨은 지난 1월 말 뉴욕 맨해튼의 로우시리전시호텔에서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의원 안드리 아르테멘코와 옛 소련 출신 미국인 사업가 펠릭스 세이터를 만나 이 제안서를 넘겨받았다. 제안서 작성자는 아르테멘코다. 그는 친서방 성향인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결 관계다. 2013년 말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시민혁명으로 축출돼 러시아로 망명한 후 포로셴코가 취임했다. 트럼프 캠프 선거본부장이던 폴 매너포트는 야누코비치를 도운 사실이 드러나 사퇴했다. 우크라이나 친러-친서방 세력이 대결할 때에 개입했던 미국 로비스트들이 그대로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에 입김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트럼프 정부를 러시아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19일(현지시간) 공개한 제안서 전달 과정은 트럼프 주변에서 ‘러시아 커넥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코헨은 뉴욕타임스에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달 초 트럼프를 만났고 플린 사무실에 제안서를 전했다”고 인정했다.

아르테멘코가 일면식도 없는 코헨을 통해 제안서를 백악관에 전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사람은 부동산 사업가 세이터다. 세이터는 과거 마피아와 연루된 주가조작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트럼프타워에 사무실을 두고 사업을 했고, 트럼프의 선임보좌관으로 합류했다.

아르테멘코가 만든 제안서에는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50~100년 ‘임대’하는 방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영토를 빼앗긴 우크라이나 정부로선 수용할 수 없는 안이다. 발레리 찰리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대사는 “아르테멘코는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어떤 외국 정부에도 평화안을 제안할 권리가 없다”며 반발했다. 반면 아르테멘코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도 격려를 했다고 주장한다.

제안서를 백악관이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달 경로만으로도 러시아의 로비가 움직이는 방식이 드러난 셈이다. 친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치인, 트럼프 주변을 잘 아는 옛 소련 출신 미국인, 친러시아 성향의 트럼프 측근을 거쳐 미국 안보사령탑에게까지 러시아를 위한 방안이 전달된 것이다. 정보당국의 커넥션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비선을 통한 러시아 관련 로비는 이어졌고, 그 중심에는 트럼프와 사업으로 얽혀 있던 인물들이 있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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