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은 핑계..'한한령' 활용해 자국산업 키우는 중국

김동윤 2017. 2. 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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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화장품 등 한국산 수입 불허
대부분 수출기업 실수로 벌어져
"보복조치, 과장되거나 루머 많아"
한류 콘텐츠·전기차 배터리 규제, 진짜 속내는 자국기업 육성
창업 등에 대한 투자는 적극 지원
"중국, 분풀이보다 실리 고려한 것"

[ 김동윤 기자 ]

2012년 9월19일 장쑤성 난퉁시에 문을 연 롯데마트 중국 100호점.


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에는 ‘코리안 스타트업 인 차이나’란 이름의 단체방이 있다. 중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한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관계자 400여명이 참여해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다. 최근 여기에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보복 조치로 어려움을 겪은 사례를 제보해달라”는 요청을 올렸더니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항저우 등에서 중국 지방정부와 제휴해 한국 스타트업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넷미고의 정동현 대표는 “사드 이슈가 불거진 이후에도 한국 스타트업 지원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사드 보복 조치와 관련해 한국에서 돌고 있는 근거 없는 루머가 중국 언론을 통해 재보도되면서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작년 하반기 이후 한국 기업을 겨냥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한국 내에선 위기감이 커졌다.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인, 외교관, 정부 유관기관 관계자들은 사뭇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사드 보복 과장됐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가 상당 부분 과장돼 알려졌다고 강조한다. 작년 11~12월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중국 당국의 수입 불허 조치가 대표적이다. 톈진, 웨이하이 등에서 10년째 한국 제품 수출입 지원 업무를 해온 변재서 관세사는 “수입이 허용되지 않은 화장품은 모두 서류 미비, 특정 성분 기준치 초과 등 명백하게 해당 기업의 귀책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중국 규정에 부합하는 대부분의 한국산 화장품은 아무 문제 없이 수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닷컴이 중국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쇼핑몰 티몰에서 철수한 것도 사드 보복 조치와 관련있는 것으로 보도됐지만 사실무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티몰 관계자는 “연말이면 입점 업체에 계약 연장 여부를 물어보는데 롯데닷컴 측이 작년 말 먼저 영업 부진을 이유로 철수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

◆사드 보복으로 ‘꿩먹고 알먹는’ 중국

상당수 한국 기업 관계자는 사드 보복 조치는 분명히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작업이 진전될수록 중국 정부가 보복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대기업들이 최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점검 작업을 단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국내 대기업 중국 법인장은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문제가 될 소지를 아예 없애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백히 사드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치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중국 정부의 자국 산업 육성, 시장 선진화 등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류 콘텐츠 규제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방송정책을 담당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기 한 달 전인 작년 6월 외국 방송 콘텐츠의 중국 진입을 규제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문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외국 방송 콘텐츠 관련 규제는 항상 한류 콘텐츠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며 “굳이 사드 배치가 아니었어도 한류 콘텐츠 규제는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였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이 생산한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것도 중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사드라는 정치적 이슈를 활용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베이징의 한 정부 유관기관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2015년 초 발표한 ‘중국제조 2025’ 계획에서 배터리를 차세대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며 “삼성SDI와 LG화학이 중국 현지 공장 완공 이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나서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창업 분야 투자는 적극 장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이 현재 필요한 분야에 대해선 여전히 한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영진 한화자산운용 중국법인장은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로 작년 말 톈진에 사모펀드 전문 운용사를 세웠다”며 “톈진시 정부가 발벗고 나서 도와준 덕분에 법인을 설립하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장성의 항저우시와 자신시는 사드 보복 조치가 한창이던 작년 하반기 한국 스타트업 지원센터를 개설했다. 중앙정부의 창업활성화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한 국내 대기업 중국법인 대표는 “중국은 사드 문제로 경제 보복을 하더라도 절대 ‘분풀이식 보복’은 안 한다”며 “철저하게 자국의 경제적 실리를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사드를 빌미로 자국 산업 육성 조치를 노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사드문제가 해결돼도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 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베이징=김동윤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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