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433억 VS 3조 1천억.."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미다스의 손"

김용철 기자 2017. 2. 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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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은 삼성의 백기사였나?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을 조명한 SBS 뉴스토리 120회 '위기의 국민연금,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매우 탐욕스러웠던 미다스 왕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더 많은 부귀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술(酒)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디오니소스는 소원을 들어주었고, 미다스는 정원수, 조각물, 가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황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만지기만 하면 황금이 되니 도대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상심한 그는 무심코 자기 딸을 안았다가 기겁을 했다. 사랑하는 딸이 금 조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위키백과>

지난 17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특별검사팀에 구속됐다. 삼성그룹 총수로는 처음 있는 일로 최순실 씨 측에 준 433억 원 상당의 금품을 일단 대가성이 있는 뇌물로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라는 것은 지난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국민연금이 도와주도록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차원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지난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에서 의결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표결 결과는 69.53%의 찬성, 특별결의 요건 66.7%를 갓 넘겼다. 11%의 의결권을 가진 국민연금의 찬성이 없었다면, 제일모직 1주에 삼성물산 주식 0.35주를 병합하는 합병 결의는 불가능했다는 계산이다.

상장기업간의 합병 비율은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다. 삼성물산의 합병 결의 이사회 전날인 2015년 5월 25일을 기준으로 이전 1개월, 1주일, 당일의 주가를 산술 평균해 산출한 합병 기준 가격에 따르는 것이다. 당시 산정된 기준 가격은 삼성물산 55,767원, 제일모직 159,294원이었다. 삼성물산은 5년 이래 최저치 주가를 기록한 반면, 제일모직은 6개월 전인 2014년 12월 18일 상장된 이후 공모가의 3배로 치솟은 상황이었다.

자문기관 추산 적정 합병비율

당시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4.1%의 시가만 8조 원으로 순자산 가치는 13조 7천 억 원, 제일모직의 순자산 가치는 8조 7천 억 원에 불과했다. 이를 근거로 서스틴베스트와 ISS 등 국내외 의결권 행사 자문 기관들은 모두 합병 비율이 일반 투자자들이 대부분인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합병 시기를 조정하든지, 합병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 일가의 지분은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1.41%가 전부, 반면 제일모직에 대한 이 부회장 일가 지분은 42.17%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합병 결정 전후에 보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행태였다. 내부 분석 보고서에서 적정 합병비율이 1대 0.46이라고 분석하고도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운운하며 내부 투자 위원회에서 합병에 찬성을 결의한 것이다. 투자 위원 12명 가운데 3명은 회의 며칠 전에 교체돼 투입됐고, 회의 중간에 정회를 거쳐 장시간 논의를 한 끝에도 운용전략실장, 해외증권실장, 리스크관리센터장은 ‘표결기권’, 투자전략팀장은 ‘중립‘ 의견을 냈지만, 과반수인 8명이 찬성했다며 찬성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전 주가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결정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바로 1개월 전에 이뤄졌던 (주)SK와 SKC&C의 합병 과정에서 투자위원회가 찬성했지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반대하자 합병에 최종 반대했던 것과는 다른 조치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국민연금의 주식 매매 행태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이사회에서 합병을 결의하기 직전에 보유했던 삼성물산 주식을 대거 팔았다가 이사회 결의 이후에 다시 사들인 것이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주식 보유 비율은 3월 26일 11.43%에서 5월 22일 9.54%로 줄었다가 주총 직전에 다시 11%대로 올라갔다.

소액주주들은 국민연금이 삼성 물산의 주식을 팔아 주가를 떨어트림으로써 합병 비율을 낮게 맞춘 뒤, 합병 비율이 결정되고 나서는 주식을 다시 사서 의결권을 추가 확보했고, 이를 이용해 합병이 가결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고등법원도 소액 주주들이 낸 소송의 2심에서 주가조작 가능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이었던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모든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서 국민연금은 좀 더 의결권 행사에 신중했어야 한다.”면서 “서스틴베스트가 영업 가치와 수익 가치, 자산 가치 등을 고려해 산정한 적정 합병 비율은 1대 0.92 정도였다. 삼성물산와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 일가에게 엄청 유리한 ‘미다스의 손’이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홍순탁 전문위원은 “국제 자문기관들이 산정한 적정 합병 비율은 1:1 정도였다. 이것이 1대 0.35로 결정되면서 이재용 부회장 일가는 3조 1천 억 원의 이익을 더 확보했지만, 반대로 국민연금은 4천 9백 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합병에 따른 추정 손익

홍 위원은 또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삼성물산 합병 문제는 투기 자본과 토종 자본의 대결 구도로 변질됐다. 엘리엇이 삼성그룹에게는 백기사가 된 셈이다. 엘리엇의 반대가 사전 각본이었다면 정말로 엄청난 고수의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제일모직은 에버랜드입니다. 에버랜드의 CB 발행, 삼성SDS의 BW 발행, 삼성생명의 상장,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커오는 이 과정 자체가 우리나라 자본시장 왜곡의 역사를 축소시켜 놓은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합병 비율의 적정성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 일었지만, 합병기업으로부터 ‘주요사항 보고서’와 ‘유가증권 신고서’를 받는 금융감독원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상장기업의 경우 30% 이내에서 합병비율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고, 계열사간 거래의 경우 10% 이내에서 합병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우 계열사간 거래로 20%까지 합병 비율을 조정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하는 일은 공시해야할 사안에 대한 기재 사항 오류나 누락만 따질 뿐, 합병 비율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안에 대해 22개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한화투자증권의 주진형 전 사장은 “모든 기관 투자자들이 초대형 고객인 삼성 앞에 그냥 들러리를 섰다. 금융 당국도 그저 뒷짐을 지고 먼 산을 바라본 격이다.”라고 지적했다.

캘퍼스(CalPERS :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를 비롯한 선진국의 기관 투자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투자기준을 만들고, 그 원칙에 위배될 경우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투자한 자금도 회수한다. 대표적인 기준이 ESG(Economical Social Governance) 원칙으로 환경오염을 유발하거나 노동권을 침해하거나 또는 지배 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2월 타인의 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기관 투자가들의 투자 원칙을 담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만들고, 국내 기관 투자자들에게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미래에셋과 한국투자, 삼성자산운용 등 8개 대규모 기관 투자자들이 도입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의 상급 기관인 보건복지부는 “초대형 기관 투자가로서 국민들의 자금을 운용하는 정부기관인 만큼 보유 주식에 대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대해 논란이 많다. 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며 도입 의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성신약의 윤석근 부회장은 일부 소액주주들과 함께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조정, 합병무효, 국민연금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주식매수청구 가격 상향조정소송에서는 1심에서 패했지만 2심에서 승소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제 35민사부는 ‘구 삼성물산(주)의 실적 부진이 이건희 등의 이익을 위하여 누군가에 의해 의도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주식 매도가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 ’합병에 관한 이사회 결의일 전일 무렵 구 삼성물산(주)의 시장주가는 구 삼성물산(주)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주권상장법인의 주식매수가격을 결정함에 있어서 반드시 또는 항상 시행령 기준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식매수청구가격을 1주당 57,234원에서 66,602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주식매수청구권 관련 소송은 삼성물산이 즉각 상고하면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맞서 상고한 소액주주측은 주식매수청구 가격이 삼성물산이 합병 전 KCC에 자사주를 판 가격 7만 5천 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합병무효와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심리도 곧 재개될 예정이다.

‘한국 최대 기업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은가‘를 묻는 기자에게 일성신약의 윤석근 부회장은 어릴 적 자신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님이 형한테 사과를 두 개 주면서 ‘나누어 먹어라‘ 이렇게 그 사과를 두 개 주셨는데, 우리 형이 한 개 다 먹고 내가 돌아오니까 반을 쪼개 가지고 이거 반 개 먹을래 안 먹을래, 그런 거예요. 그러니 뭐, 그거라도 먹어야지, 반 개라도. 그렇지만 내 그 생각은 상당히 억울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좀 이건 뭐, 에피소드지만, 제가 이제 그 어린 마음에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앞의 파출소로 갔어요. 파출소 소장님한테 이제 민원을 한 거예요. 아, 우리 형이 이렇게, 이렇게 했다고 했더니, 그런 건 부모님하고 상의하면 안 되겠냐고 해서 다시 이제 왔는데 어머니 얘기가 그러는 거예요. ‘형은 이제 중학교 입학 시험도 보고 그러니까 형한테 스트레스 주지 마라.’ 그 상황이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하고 유사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평소에 많이 했습니다. 억울한 건 없어야 되잖아요. 정의를 얘기하고, 사회 정의가 어떻고, 이런 걸 얘기할 주제는 안 되지만, 최소한도 억울하다, 억울하지 않다, 이런 것들은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억울하다고 느끼는 건, 얘기를 해야죠.“

2017년 한국의 법원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최소한의 억울함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빚보증을 서준 친구가 채무를 갚지 못하자 1파운드의 가슴살을 도려내 달라고 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만 베어가라.’고 판정해 안토니오를 구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재판관은 아닐지라도...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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