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분석] 대미 수출 33%가 현대차..트럼프 시비에 물건 못 팔까

조귀동 기자 2017. 2. 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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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가 9년 만에 다시 한판 붙었다. FT의 13일 자 ‘환율조작에 대한 트럼프의 분노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Donald Trump’s anger at Asian currency manipulators misses target)’ 기사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공식 대응에 나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왼쪽부터)이 백악관에서 함께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만성적 무역 적자를 타개하기 위한 카드 가운데 하나로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

이 기사에서 FT는 “한국과 대만은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는 데도 자국 화폐 가치가 높아지지 않게 계속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고 전 미 재무부 이코노미스트의 말을 인용해 지적한 뒤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한국과 대만이 최악의 환율 조작국”이라고 공격했다. 취임 100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지역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하려면 한국과 대만 먼저 선정하라는 노골적인 얘기다. 여기 대해 기재부와 한은은 항의 서한에서 “한국 정부는 환율 시장에 일방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 보고서와 미 재무부 환율 보고서가 증명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기재부가 FT를 대상으로 부처 차원의 반격에 나선 것은 2008년 10월 FT가 ‘침몰하는 느낌(Sinking Feeling)’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97년 외환위기를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 데 이어 9년 만이다.

◆ 트럼프가 가진 7가지 카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가 통상 정책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즉시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필두로 다른 나라들에 미국 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대통령 선거 당시 핵심 주장대로 행동한 것이다. 이후 중국, 일본, 독일을 환율을 조작하는 나라로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신설된 백악관 무역 자문 기구인 대외무역위원회(NTC) 위원장에는 피터 나바로 UC어바인 교수를 임명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환율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비정상적으로 싼 값에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해, 미국의 제조업이 망가졌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주요 교역국과 국가별 수출입 /블룸버그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보유한 통상 관련 카드는 다양하다. ① 가장 먼저 미 재무부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에서 교역대상국 정부의 과도한 환율 개입을 검사하도록 했다. 이후 지난해 2월 비슷한 성격의 ‘교역촉진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GDP의 2% 이상인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미국 정부가 여러 형태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성향상 올해 정례 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4월 ‘시범 사례’가 등장하지 않을까 각국이 긴장하고 있다. ② 둘째는 반덤핑관세 부과 등 전통적인 수출 제한 조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제무역위원회(ITU) 등을 이용한 기존 절차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재 수위 등이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③ 이때문에 의회 입법을 통해서 반덤핑,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강하게 공격하는 세 번째 방법이 거론된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일본 등을 겨냥해 만든 ‘슈퍼301조’에 준하는 강력한 통상 입법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④ 네째 방법은 세계무역기구(WTO), NAFTA 등 기존에 미국이 체결했던 통상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다. NAFTA나 한·미 FTA 등은 강하게 재협상을 구할 수 있다. ⑤ 법인세제를 손질해 수입한 중간재에 대해 비용 공제를 인정하지 않고, 수출 제품에 대해선 세제 혜택을 주는 이른바 ‘국경조정세’ 도입 방법도 있다. 공화당이 찬성하는 법인세 인하에 끼워 넣기 식으로 대외 교역과 관련된 세액 공제 조항을 집어넣을 수 있다. ⑥ 여섯째는 행정부의 재량적 규정 해석을 무기로 일종의 ‘창구지도’를 실시하는 것이다. ⑦ 이런 ‘무기’를 협상카드 삼아 상대국 정부에게 통화 가치 절상 및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가장 발등의 불은 4월 예정된 환율 조작국 지정이다. 일반적인 미국의 통상 정책 입안 및 집행 과정을 따르자면 의회 입법을 이용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의원들과 원만히 협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인세 개정의 경우 현행 세제의 골격을 바꾸는 작업이라 더욱 어렵다. 최악의 경우 최근 일부 국적자의 입국 금지 조치처럼 행정명령을 통상 정책에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하는 데다 협상에 나서기 전부터 일방적으로 강한 때리기에 나서기엔 부담이 크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환율 조작국 지정이 트럼프 행정부가 쉽게 휘두를 수 있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 수출 증가 5분의 4가 車·관련 부품…’현대차 착시’ 빼야

조선비즈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과의 수출, 수입 추이를 분석해 봤다. 미국 정부 입장에선 한국의 전체 대외 교역이 아니라 대미 교역의 양상이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입품목 분류체계(MTI)에 따라 1억달러 이상 수출·수입한 품목을 선별한 뒤 이를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대미 수출은 2012년 585억3000만달러에서 2016년 664억7000만달러로 79억5000만달러 가량 늘었다. 반면 대미 수입은 433억4000만달러에서 432만2000만달러로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대미 흑자 규모는 151억8000만달러에서 232억6000만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현대차 착시’라고 부를 수 있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수출 쏠림 현상이 존재한다. 자동차 및 부품 수출이 60억6000만달러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체 수출 증가분의 79%가 자동차에서 온 것이다. 2016년 자동차 및 부품 수출 규모는 220억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의 33.1%를 차지한다. 2012년 27.3%에서 5.9%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현재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회사는 현대기아차 뿐이다. 결국 현대기아차 판매가 미국에서 늘어나면서 덩달아 대미 흑자가 증가한 것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시장 점유율 변화와 별개로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내구소비재인 신규 자동차 판매가 뛴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무선전화기, 집적회로반도체, 개별소자반도체, 보조기억장치 등 휴대폰·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100억8000만달러였다. 비율로는 15.2%를 차지한다. 2012년 대비 수출 증가액은 25억8000만달러. 휴대폰과 반도체까지 고려할 경우 지난 5년간 대미 수출 증가는 이들 제품들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반면 대미수입은 집적회로반도체(34억8000만달러), 항공기부품(24억4000만달러), 반도체제조용장비(20억8000만달러), 승용차(16억8000만달러), 가축육류(14억3000만달러) 순이었다. 첨단 기기 제조에 쓰이는 중간재나 부품의 비중이 높았다. 지난 5년간 가장 큰 폭으로 수입이 는 품목은 액화석유가스(2016년 12억2000만달러·11억2000만달러 증가), 항공기부품(10억4000만달러 증가), 승용차(10억달러 증가) 순이었다. 미국산 자동차가 국내 시장에서 세를 넓혀가는 가운데 미국이 석유제품 수출을 허가하면서 관련 수입량도 뛴 것이다.

◆ 무역수지 환율 효과 적어…美 시장 개방 전략 펼까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자동차 및 부품과 휴대폰·반도체 등 IT제품의 대미 수출 규모와 환율을 함께 분석한 결과 수출과 원화 가치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수출입 구조가 환율 변동에 영향을 받느냐는 것이다. 자동차와 IT의 경우 환율 변동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 연구원은 “지역 딜러망과 협의해 먼저 판매량을 정하는 미국 자동차 유통구조 특성 때문에 환율은 판매량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게다가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현지 생산 물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결국 환율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대기아차의 수익성이라는 것이다. IT도 사정은 비슷하다. 휴대폰의 경우 버라이즌, AT&T 등 현지 통신사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폰 회사가 미리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물량을 공급하기로 제품 생산 몇 달 전 계약을 맺는다. 반도체는 환율보다 반도체 사이클에 따른 가격 변동이 오히려 큰 이슈다. 자동차의 경우 환율이 하락했던 2012~2014년에 오히려 수출이 크게 늘었다. IT는 환율과 상관없이 큰 변화가 없었다.

수입의 경우에도 환율의 영향을 받는 품목은 승용차, 농산물, 석유제품 정도인데 농산물과 석유제품은 수급에 따른 가격 변동폭이 크다. 승용차도 환율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왔다는 게 수입차 업계의 설명이다. 주요 수출 품목과 수입 품목 모두 개별 시장 여건과 산업 구조에 규모가 좌우되는 것이다.

전세계 무역수지를 살펴도 환율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제한돼 있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GDP 대비 7.2%로 2012년 4.2%에 비해 3%포인트가량 늘었다. 하지만 이렇게 확대된 흑자 폭을 설명하는 가장 큰 변수는 원유와 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 급락이다. 한국은행은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앞으로 GDP 대비 4~5% 정도로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폭을 GDP의 5.9%로 내다보고 있다. 비슷한 경제 구조를 가진 대만의 경우 2012년 9.5%에서 지난해 15.0%까지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게 늘었었다.

액화석유가스(LPG)는 지난 5년간 가장 빠르게 수입이 늘어난 미국산 제품 가운데 하나다. 미국에서 값싼 셰일 가스 생산이 늘어난 데다 미국 정부의 에너지 수출 규제가 대거 해제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게다가 환율은 특별한 방향성이 있다기보다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는 20일 “한국 원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시아 신흥국 통화”라며 “2016년 원화 가치 변동성은 말레이시아 링깃,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보다 훨씬 컸다”고 전했다. 지난해 원화 가치 변동폭은 11%였으며, 전년 대비 5.3% 정도 환율이 낮아졌다. 적어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산 제품을 ‘밀어내기’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시장 개방이나 에너지 등 원자재 수입을 늘릴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상당하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IB) 한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자본자유화 정도를 감안하면 미국이 한국을 대상으로 인위적인 평가 절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거세게 통상 압력을 넣어서 흑자 규모를 줄이도록 할 확률은 상당하다”고 점쳤다. 한 대기업 부설 경제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도 인위적으로 정부가 환율을 끌어내리는 상황으로 볼 수 없다”며 “결국 서비스 시장 개방이나 비관세 장벽 추가 철폐 등에 요구 사항이 집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의회조사국(CRS)가 9일 발간한 ‘미-중 무역 이슈’는 중국의 정부 개입에 의한 대중 무역적자 확대를 교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격적인 제재’와 ‘협상의 틀 활용’이라는 두 방안을 제안했다. 공격적 제재 정책으로는 ▲WTO 제소 확대 ▲특정 품목에 대한 반덤핑관세와 반보조금 상계 관세 부과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무역 제재 위협을 통한 미국 기업 해킹과 미국산 제품 베끼기 중단 등을 거론했다. 보고서에서 의회조사국은 중국 위안화 가치가 2015년 이후 하락하는 데 중국 정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서술했지만, 구체적으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때 득실이나 구체적인 방법은 거론하지 않았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현실성 높은 옵션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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