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이재용의 시련

박종면 본지 대표 2017. 2. 20.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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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중구기삭금’(衆口其鑠金),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굴원이 쓴 ‘초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많은 입은 단단한 쇠까지도 녹여버린다’는 뜻이다. 진실이 아닌 거짓이라고 해도 여러 사람들이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진실이 돼 버린다.

79년 삼성 역사에서 처음으로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고 말았다. “이재용 구속”을 외치는 촛불여론에 힘입은 특검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데도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한 결과다. 1차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도 결국 받아들인 것을 보면 어지간히 부담을 느낀 모양이다.

역시 많은 입은 쇠도 녹여버린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 뒤 인터넷에 쏟아진 “사필귀정, 정의는 살아있다”는 환호를 보라. 옳고 그름을 떠나 저 분노와 광기를 지금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삼성도, 이재용 부회장도 희생양이 돼 제단에 피를 뿌릴 수밖에 없다.

한 사람에게도, 한 기업에도 장담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뒤엎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특검이 적시한 혐의는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등 5가지다. 법리적으론 최대 무기징역도 가능하다. 앞으로 법원은 특검법에 따라 3개월 내에 1심을 선고하고 7개월 이내에 모든 재판을 끝낸다.

재판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은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삼성 입장에선 좋은 일이지만 정국상황이 정권교체 쪽으로 흐른다는 점은 우울한 일이다. 야당의 집권이 삼성으로선 유리할 게 없다. 당장 법원의 판결과 양형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종 징역형을 받으면 경제회복을 명분으로 SK 최태원 회장이나 CJ 이재현 회장 같은 사면복권은 꿈도 꾸지 못한다.

삼성으로선 탄핵인용을 전제로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이나 직후가 될 1심 판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자칫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징역살이가 아주 길어질 수 있다. 매에 장사 없다고 징역살이에도 장사는 없다. 또 총수 부재 상황이 장기화하면 내부 분란 등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구절비이성의’(九折臂而成醫), 역시 굴원의 ‘초사’에 나오는 말로 아홉 번 팔을 부러뜨려야 좋은 의사가 된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 생기려면 반드시 여러 번의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공자는 ‘주역’을 해설하면서 군주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아랫사람 중에 수많은 현자가 있지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삼성 미래전략실에는 빼어난 참모가 다 모여 있고 그룹에 수백 명의 변호사가 있지만 지금 이재용 부회장은 6.6㎡(2평)도 안 되는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군주든 기업 총수든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의 처지가 본래 그런 것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궁할 땐 자신의 몸이나 닦는 수밖에 없다. 기회가 올 때까지 지혜롭게 자신을 보전하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수양이고 도(道)다. 이 대목이 징역살이가 이 부회장에게 주는 큰 축복이다.

지금 광장을 뒤덮은 분노와 광기도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수그러들 것이다. 그러면 이 부회장에게도 징역살이를 통해 쌓은 단단한 내공을 바탕으로 경영에 복귀하는 날이 온다. 그때는 이 부회장에 대해 병상의 이건희 회장만큼 카리스마가 없다거나 유약하다고 수군거리지 않을 것이다. 경영승계의 대가도 톡톡히 치른 만큼 누구도 더 이상 시비 걸지 않을 것이다. 비극이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니며 실패가 고통만도 아니다.

박종면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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