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대한민국, 촛불과 태극기의 격돌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17. 2. 20. 03:17 수정 2017. 2. 2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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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여러 비전 제시해도 당선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
태극기 세력의 가장 큰 우려는 차기 정권의 대북 정책이고
美도 北 위협 심각하게 보는데 엇박자 내면 우리 안보 축 흔들려

올해 1월 첫째 주말부터 태극기 집회 참가자의 숫자가 촛불 집회의 그것을 추월하면서부터 대통령 탄핵정국 여론이 양극 대결구도로 정착되었다. 연초 진정 국면에 들어섰던 촛불은 얼마 전 문재인 전 대표가 탄핵이 반드시 관철되도록 하자며 집회 참가를 촉구한 뒤 다시 세를 불리고 있다. 태극기 시위의 확산은 그동안 사태를 지켜보며 꾹꾹 눌러왔던 거부감과 불만이 결연한 행동강령으로 전이(轉移)된 경우다. 이 집회들에 직접 참가하는 사람 숫자는 전체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한국 사회의 3분의 2는 마음속으로 각기 '촛불'과 '태극기'를 응원하는 두 쪽으로 양분되었다.

나머지 3분의 1, 관망하는 주권자들의 여론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특정 방향으로 압박하려는 소위 광장정치(廣場政治)는 국민 주권의 남용이다. 하지만 촛불과 태극기 시위대는 각자 무장한 사명감과 애국심의 정당성을 확신한다. 두 진영 간 대결이 격화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박근혜 정부 '심판'에 대한 찬반 여부이지만, 좀 더 근원적인 쟁점은 탄핵 결정 이후 전개될 차기 대통령 선출 구도에 있다. 현재의 판세는 지지를 결집할 마땅한 후보조차 없는 태극기 세력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은 경제, 복지, 안보, 교육,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비전과 공약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토대로 선출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된 이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야는 바로 안보 영역이다. 국내 정책 사안들은 관련 당사자마다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려면 국회의 법률 통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외 정책의 경우 대통령 마음먹기에 따라 야당의 반대와 국민의 우려가 있더라도 행정부의 소관으로 짧은 시간에 중요한 결정을 밀어붙일 수 있다. 태극기 세력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이 바로 차기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다.

촛불 세력 모두가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민주당의 문재인과 안희정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지지 여론이 촛불 정국으로 인해 탄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사드 배치 문제와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좀 더 부정적이거나 전향적이거나 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후보들의 공통된 견해는 북한 정권을 협상과 합의가 통하는 상대로 본다는 것이다. 어떠한 정책도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김정은으로서는 체제 보위의 핵심 수단인 핵무기의 진정한 폐기를 전제로 미국이나 한국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 목숨을 내걸고 권력자에게 핵 포기 결단을 건의할 참모는 북한에 없다. 만일 어떤 형태로든 북한이 또다시 핵 협상에 나선다면 그것은 핵 프로그램의 일시(또는 기만)적인 동결을 전제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풀고 대미(對美) 평화 협정을 관철하기 위한 경우의 수 하나뿐이다.

북한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은 갈수록 엄중해지고 있다. 자신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기습적으로 날려 보내는 연습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북한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 한국의 협력을 구하고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중국은 자신이 신변 보호를 하던 김정남을 제거한 김정은을 괘씸하게 여기겠지만, 강도 높은 대북 처벌 조치로 북한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선택은 꺼릴 것이다. 미국과 다른 대북관을 지닌 한국 대통령의 등장은 한·미 동맹의 본질적 목표와 역할에 혼선을 가져올 것이며, 이는 한국 안보와 외교의 핵심 축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의 모든 국민은 탄핵 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으로 이미 크나큰 피해를 보았다. 행정부는 복지부동(伏地不動)에 빠졌고, 국회는 대선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누가 집권하더라도 의회가 좀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기업들은 몸조심 모드에 들어갔고 경제와 일자리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무엇보다도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실추되었다. 나라의 공적(公的) 기능이 휘청대니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할 판국이다.

기존의 보수-진보나 우파-좌파의 경쟁 구도가 보수·우파 세력의 수적 우위에서 형성된 반면, 대통령 탄핵 정국이 어우러져 새롭게 나타난 촛불-태극기 대립 구도는 진보·좌파 세력의 압도적 우위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2017년에 여론의 판세가 최종적으로 어느 쪽으로 귀결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장래의 향방도 결정될 것이다. 어느 정권이든 가장 중요한 업적은 정권의 재창출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후임 지도자에 의해 부정되면 결국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눈앞에 닥친 위기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그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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