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목소리다]2부 ①'노동의 봄'은 잠시..'재벌집착'에 매몰된 노동 민주주의

송윤경 기자 2017. 2. 1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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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2부 ① 일터의 민주화는 왜 막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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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11시까지 할 수 있죠?”

오후 8시. 경기 안산 반월공단의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생산 공장에서 30여명의 노동자들이 손을 바삐 놀리는 동안 반장은 이의가 없을 것이라는 듯 한마디 툭 내뱉고 사라지려 했다. “저는 못해요.” 김지수씨(32·가명)가 침묵을 깼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매일 12시간 동안 일하며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 터였다. 자녀가 있는 또 다른 여성 노동자도 함께 9시 퇴근을 하겠다고 했다.

반장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김씨를 파견한 업체 담당자를 불렀다. 사무실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반장이 파견업체 담당자를 닦달하고 있었다. 결국 동료는 퇴근 준비를 하다 말고 다시 일하러 들어갔다. 김씨는 이날로 이 공장을 그만뒀고 임금은 딱 시간당 최저임금만큼만 계산돼 입금됐다.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은 거의 대부분 공장에서 보내야 했고 (…) 하다못해 잠자는 것조차도 내일 공장에 가기 위한 준비였다. (…) 우리들은 마치 돼지가 주인에게 자기 몸을 주기 위해 살을 찌우는 것과 같이 일하기 위해 밥을 먹고 일하기 위해 잠을 잤다.”(김경숙 외, <그러나 이제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1986년)

지금은 반월공단 내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김씨는 1980년대 노동자 수기를 접하고 이렇게 말했다. “마치 제 얘기 같은데요.” 1987년 한국 사회가 성취한 민주주의는 노동자들 삶에는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김씨에게 ‘민주주의’를 느낄 때가 있는지 물었다. “민주주의? 하…. 멀다 멀어. 그 단어는 너무 멀게 느껴져요.”

■ 민주화 30년, 노동자의 삶

올해는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이 있은 지 30년 되는 해다. 민주화 30년이 지나는 동안 과연 민주주의는 노동자들 삶에 얼마만큼 기여했을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1987년 이후 20년간의 노동자 삶의 변화를 분석해 펴낸 ‘한국의 노동 2007’과 최근 발간한 ‘한국의 노동 2016’, 장하성 교수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통계를 토대로 살펴보자.

일단 실질임금은 민주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기울기로 상승했다. 그러나 실질노동생산성(실질국내총생산/취업자 수)을 늘 밑도는 수준이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타격을 입은 1998년부터 실질임금과 실질노동생산성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상승률은 경제성장률 절반에 불과하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4%였지만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실질임금인상률은 2.5%다. 한국은행 국민통계에 의한 노동자 1인당 임금인상률은 1.4%다.

지난 30년 동안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규모는 극적으로 확대됐다. 사업체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도 커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30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노동자 평균 월급은 405만원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247만원, 5인 미만 사업체 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214만원, 이곳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138만원이다.

1990년 3월 검거된 단병호 당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시위하는 노동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싹이 보였던 ‘노동 민주화’

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삶이 지속적으로 팍팍해졌던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과 맞물려 민주화의 성취가 빛나던 때도 있었다. 1987년부터 외환위기 직전까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자들은 억눌려온 요구를 분출하면서 6%대의 실질임금인상률을 쟁취했다. 가혹한 장시간 노동을 쟁점화해 연간 노동시간을 2900시간(1980년대)에서 2113시간(2015년)으로 끌어내린 것도 노동운동의 결실이었다. 다만 노동시간 감소세는 2013년 이후 정체했고 여전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불평등도 완화되고 있었다. 1984년 25.9%에 이르던 저임금 노동자(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1990년 21.7%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중반까지 중산층의 두께는 두꺼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면서 악화하기 시작했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007년 26%까지 올랐다가 2013년 24.7%를 기록했다. 현재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다. 5인 이상 사업체로만 따져도 임금 불평등은 OECD국가 중 4위다.

1998년 10월 무료급식소를 찾은 실직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건비 절감’이라는 착취

잠시나마 피어나던 노동 민주주의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왜 실종됐을까.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성장제일주의와 그에 따른 노동유연화”(김 선임연구위원)를 원인으로 꼽는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공교롭게도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며 “(정부 정책에 힘입어) 기업은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보기는커녕 한푼이라도 줄여야 할 비용이나 한번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전략으로 치달려 왔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50%를 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건비 최소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과실’ 독점의 최정점에 재벌 대기업이 있다. 장하성 교수 분석에 따르면 국민총소득 중 기업이 가져간 소득은 1990년 17%에서 2014년 25.1%로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가 가져간 소득은 70.1%에서 61.9%로 줄었다. 그럼에도 재벌에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압력은 사실상 실종됐다.

장 교수는 저서에서 “대통령부터 정치권과 관료들까지 재벌 대기업 분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외면하는” 이유를 “재벌이 잘돼야 한국 경제가 잘된다” 혹은 “재벌이 안되면 한국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증상, 즉 “재벌집착증·재벌공포증” 때문이라고 짚었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만들어진 노동자 착취 기반의 ‘재벌집착’ 망령이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2007년 7월 농성하는 홈에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5년 검거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 허약해진 노동자 세력의 힘

기업·국가의 ‘노동 착취’ 합작이 계속됐지만 노동자 세력은 이를 깨트릴 만큼의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민주화를 계기로 노조조직률은 1989년 19.8%까지 올랐으나 점차 줄어 현재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OECD 34개국 중 31위다. 단체협약 적용률은 꼴찌다.

노동계는 김영삼 정부의 노동유연화 법안 날치기에 맞선 1996~1997년의 총파업 때까지만 해도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로 노동자 세력은 정규직·비정규직 등으로 분화하면서 급속히 힘을 잃었다.

하와이대 구해근 교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등의) 새로운 기업전략들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중대한 효과를 지녔다”고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 말 노동 대공세가 획득한 전반적인 경제적 이익은 이들 (정규·비정규직 등으로 분화된) 두 부문에 불공평하게 분배됐고, 둘 사이 격차를 벌려놓았다. 그 결과로 인한 노동계급 분절은 노동계급연대를 약화시키고 협소한 기업노조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조장했다”고 분석했다.

유성기업 사례와 같은 노조 파괴와 파업에 거액의 손해배상·가압류 철퇴를 가하는 반노동 행위를 정부가 사실상 방조한 점도 노동운동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한신대 노중기 교수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확대해 온 세력의 힘이 크게 약화된 데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집단 이기주의론 등을 퍼뜨린 정권들에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노동계가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의 착취에 대항해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다수의 전문가들 견해가 일치한다. 비정규직 노조가입률은 2%에 그친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은 2004년 원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그 바통을 이어받은 정의당은 아직 폭넓은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정치적 자유의 공간이 열리자 7~9월 노동자들은 ‘노동자 삶의 개선’이라는 민주주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분투했다. 그렇게 쌓아 올린 결실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2017년의 한국 사회가 마주해야 할 질문이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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