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불금 편의점.. 홍대선 '작업용' 손난로, 신림동 고시촌선 1+1상품 불티

송혜진 기자 2017. 2.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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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시장·홍대 입구·신림동 알바생하며 손님들 살펴보니..
홍대 입구 편의점 '클럽족' 몰려
90%가 2030 젊은청춘들, 새벽 1~3시쯤 가장 붐벼
3시 넘자 몇몇 20대 여성들 해장용 초코우유 등 찾아
동대문 시장 편의점엔 보따리상
손님 70%가 중국 보따리상, 밤 10~11시에 많이 몰려
店內엔 온통 중국어로 도배.. 중국인 '고향맛' 군고구마 불티
신림동 고시촌 편의점엔 혼밥족
운동복·수면바지 차림 맨발에 슬리퍼 꿰어신기도
새벽 2시까지 손님 이어져.. 고시생들의 '밤참 러시아워'

도시의 맥박은 금요일 밤 가장 빨라진다. 야간버스 이용객 수 역시 금요일 밤이 가장 많다. 2004년 7월 주5일제가 실시되면서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24시간 내내 영업하는 편의점은 이렇게 금요일 밤거리 도심 속 서민들의 표정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1호 편의점은 1989년 서울 방이동에 들어선 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점이다. 28년이 흐른 지금, 전국 편의점 수는 3만4000개를 넘어섰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매일 하루 15개 편의점이 새로 문을 열고 있다.

금요일인 지난 10일 밤 9시부터 11일 오전 6시까지 9시간 동안 서울 동대문시장, 홍대입구, 신림동 고시촌 근처 '세븐일레븐' 편의점 세 곳에서 본지 인턴기자들이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편의점 풍경을 취재했다. 최저 기온 영하 9도를 기록한 이날, 서울 '불금의 밤'은 뜨거웠다.

불황도 비켜 가는 홍대 클럽거리

"말보로 골드요." 검은색 단발머리에 키 180㎝가 넘어 보이는 여성이 현금 5000원을 내밀며 말했다. 다시 보니 화장을 짙게 한 여장 남자였다. 10일 밤 10시 30분 서울 서교동 홍대 클럽 거리에 자리 잡은 편의점. 세 명의 아르바이트생 사이에 섞여서 카운터를 오가면서 일했다. 이곳은 새벽 1시부터 3시까지가 소위 '피크타임'이다. "얼마 전까지는 메이트(아르바이트생을 부르는 말)가 2명이었는데, 일손이 부족해서 3명으로 늘렸다"는 게 이곳 관리자 한모(26)씨의 말이다.

손님은 이미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긴 코트 차림에 잔뜩 멋 부린 20대 남성 3명이 들어와 "휴대용 손난로 4개"를 찾았다. 이곳 홍대 클럽 거리에 즐비한 소위 '헌팅 술집' 앞에선 남자들이 밖에 서서 입장시켜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휴대용 손난로가 제법 팔려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혈기 좋은 20대 남성들이라 해도 추운 날씨에 밖에서 버티다 보면 손난로가 간절해지는 것이다.

밤 11시 35분, 손님은 점점 더 늘어나 계산대 앞에 열 명 넘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일부가 다급한 목소리로 "충전요!" 하고 외치면서 다짜고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배터리 충전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다. 1500원을 내면 40분 동안 배터리를 충전해주는 서비스는 이 편의점 매출 5위 상품이다. 한 번에 두 개씩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시켜주는 기계 한 대만으로 모자라 보조배터리 충전 기계 두 대를 더 들여놓았지만 수요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20대 청춘 십수 명이 곤란한 표정으로 손에 쥔 휴대전화를 초조하게 바라보며 편의점 카운터 앞을 서성이다 되돌아 나갔다.

0시 30분, 진열대 담배가 동이 났다. 담배는 이곳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다급히 카운터 밑에 놓여있는 담배 상자를 뜯어 진열대에 채워넣었다. 그 와중에도 들어오는 손님들이 담배를 찾았다. 담뱃값에 붙는 세금이 두 배나 오른 2015년 초에만 담배 판매량이 반짝 줄고 6개월 만에 도로 제자리가 됐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새벽 2시 15분, 편의점 점포 안 테이블에선 20대 남성 3명이 '작전회의'를 한다. "아까 걔 괜찮았는데." "지금 다시 들어가야 걔네들이랑 놀 수 있다니까?" 이들은 허겁지겁 삼각김밥을 우겨넣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거리로 나섰다.

새벽 3시 20분, 손님이 줄어드는 대신 흐느적거리며 걷는 취객들이 눈에 띈다. 몇몇 20대 여성들은 해장용으로 초코우유나 바나나우유, 딸기크림 샌드위치를 찾았다. 인근 클럽에선 여전히 쿵쿵 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아르바이트생 서 모(26)씨는 "나도 때론 이곳 손님들처럼 술 마시고 클럽 다니면서 놀고 싶지만, 노는 것도 결국 다 돈이더라"면서 씩 웃었다.

오전 5시 35분, 책임정산을 실시했다. 계산대 안에 들어있는 현금이 실제 매출로 잡힌 금액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결과는 -4500원. 아무래도 담배 계산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서씨가 착잡한 표정으로 자기 지갑에서 4500원을 꺼내 금고에 채워넣었다.

오전 6시, 지난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8시간 동안 전산시스템에 집계된 고객 수를 체크해봤다. 657명. 실제 돈을 쓴 사람만 집계됐으니 간밤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어림잡아도 1000명이 넘을 것이다. 이들 중 90%가 2030 청춘들이었다. 인근 클럽 한 관계자는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를 제외하면 이곳에 딱히 위기나 불황이라고 할 순간이 없었다"고 했다.

중국 보따리상이 점령한 동대문

"여긴 밤 10시부터 11시까지 가장 붐벼요. 전쟁터야, 전쟁터." 10일 밤 10시 서울 신당동 동대문시장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40대 남성 주모씨가 말했다. 동대문 도매상가 근처 '마네킹 골목'에 있는 이 편의점은 2~3년 전부터 옷이나 화장품, 마네킹 등을 대량으로 사들여 중국에 납품하는 중국인 보따리 상인들 사이에서 쉼터로 통한다. 손님 70%가 중국 보따리 상인이다. 주씨에 따르면 나머지 20%는 원래 동대문 도매시장을 드나들며 도매상인들에게 주문받은 물건을 배송하고 수수료를 받는 소위 '사입삼촌'들, 10%는 관광객이다.

실제로 편의점 내부는 중국어로 도배돼 있다시피 했다. 온수기에는 '小心烫手(손 데지 않게 조심하세요)'라고 적혀있었고, '요구르트 젤리(養樂多軟糖)', '요구르트 마스크팩(養樂多面膜)'처럼 각종 인기상품의 이름도 곳곳에 중국어로 적혔다. 특히 요구르트 젤리나 숙취 해소 캔디인 '레디큐 츄' 같은 제품은 '한국에서만 판다'는 식으로 중국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제품. 이곳에서도 매출 1위 상품이다.

군고구마도 큰 인기다. 한 개 1500원에 팔리는 군고구마는 중국인들에겐 그야말로 '고향의 맛'에 가까운 간식이다. 한꺼번에 8~10개씩 기계에 넣고 굽는데, 구워지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이곳에선 생수를 웬만하면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오후 3~10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인 유학생 유란란(25)씨는 "중국 사람들은 냉기가 들어가면 몸이 나빠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따뜻한 물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두유, 커피도 냉장고에 넣어두는 대신 상온에 꺼내놓는 경우가 많다. 새벽 2시엔 즉석식품 진열대에 놓여있던 치킨이 동났다. 밤에 시장을 도는 보따리 상인이 군고구마 다음으로 즐겨 찾는 간식이다. 세븐일레븐 김성철 과장은 "동대문 지점은 유난히 치킨과 커피 같은 간식과 음료가 많이 팔리는 곳"이라고 했다.

새벽 3시, 남아있던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식사 시간"이라고 했다. 이들은 교대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이곳 야간 아르바이트 시급은 9000원,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10시간을 일하면 하루 9만원을 번다. 주씨는 "몸이 힘들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편의점 앞 거리는 오전 4시 무렵쯤 한산해지는가 싶더니 오전 5시쯤부터 다시 분주해졌다. "인근 도매상가에서 상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이라는 게 아르바이트생 이모(24)씨의 설명이었다. 장사를 끝내고 허리에 현금뭉치가 든 돈가방을 찬 '사입삼촌' 네댓 명이 우르르 들어와 담배를 찾았다.

오전 6시, 인근 가게 불이 하나둘 꺼지고 거리는 물 끼얹은 듯 썰렁해졌다. 지난 9시간 동안 다녀간 손님 수를 체크해보니 423명이었다. 한 도매업자는 "사드 배치 논란 이후 이곳 경기도 제법 타격을 받았다"고 했지만, 이곳 편의점 손님수는 지난 1월부터 2월 중순까지 전년 동기보다 12.4% 증가했다. 세븐일레븐 측은 "사드 배치 논란 이후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여전히 동대문을 많이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림동 고시촌의 '혼밥족'

"이거 '2+1' 맞죠?" 10일 밤 10시 서울 신림동 근처 고시촌의 편의점에 20대 남자 손님 하나가 들어와 햄버거를 집어들고는 이렇게 묻는다. 이곳 손님들은 다들 행색이 비슷했다. 운동복 혹은 수면바지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외투를 걸친 모습이었다.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였지만 근처 집에서 바로 나왔는지 맨발에 슬리퍼를 꿰어 신고 나온 이들도 제법 있었다. 대부분이 혼자였다. 찾는 물건도 비슷비슷했다. 도시락 하나, 컵라면 하나, 김밥 한두 줄, 핫도그나 햄버거 한 개…. 대부분이 한 끼 밥으로 때울 수 있는 즉석식품이다. 간혹 맥주 한 캔이나 소주 한 병을 사가는 손님도 있었다.

이곳 편의점을 운영하는 손모(62)씨는 "손님들 부분이 '1+1'이나 '2+1' 행사 상품을 주로 사간다"고 했다. 인근 고시원이나 오피스텔에 사는 20~30대 다수가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고시생이기 때문이다. 편의점 물건은 대형마트보다 대개 비싸다고 여겨지지만, 주류나 우유 중에서 이런 행사 상품을 잘 고르면 오히려 싸게 살 수 있다. 실제로 제법 여러 명의 손님들이 "이거 행사 상품인가요?"라고 물어봤다. "1+1이다"라고 알려주자 밝은 표정으로 진열대로 뛰어가 초콜릿 우유를 집어온 손님도 있었다. 손님 대부분이 20~30대이지만 뜻밖에도 밸런타인데이용 초콜릿은 잘 안 팔린다. 사장 손씨는 "고시생에겐 사치품"이라고 했다.

밤 11시, 도시락과 햄버거, 빵을 놓아두는 진열대가 텅텅 비었다. 손씨는 "특히 빵은 간혹 다 안 팔려서 버리는 날이 있어도 함부로 주문량을 줄일 수 없다. 다음 날 찾는 손님이 또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정을 넘겨 11일 새벽 2시에 이를 때까지도 커피와 담배, 간식을 사가는 손님이 꾸준히 이어졌다. '고시생들의 밤참 러시아워'라고 부를 만했다. '짜왕' '불닭볶음면' '소시지후랑크' '혜리도시락' 등이 꾸준히 팔려나갔다. 세븐일레븐이 지난 1월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이곳 편의점 매출에서 '햇반' 같은 즉석밥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6%, 도시락 같은 가공식품류는 4.1%였다. 다른 지점에선 즉석밥류 매출이 평균 3%, 가공식품류 매출이 1%인 것에 비하면 무척 높은 수치다.

새벽 2시, 손님이 조금 뜸해지자 손씨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편의점에 오는 것만 봐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하루 치 즉석식품을 사서 집에 틀어박혀 안 나오고, 꾀를 부리는 사람은 자주 나와 주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 시간에 술을 사러 온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말대로 이때부터 술을 사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한 20대 커플이 소주를 샀다.이들은 4000원 정도 하는 오징어 다리 안주를 살까 말까 5분간 고민하더니 사들고 나갔다. 한 20대 후반 여성은 잠옷에 외투만 걸치고 와서 500mL짜리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병을 함께 사가기도 했다.

오전 4시 30분, 신문 배달원이 아침 신문을 가판대에 꽂아넣고 어제 자 신문을 수거해갔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전 6시, 밤새 9시간 동안 편의점에서 물건을 산 손님 수를 확인해 보니 108명이었다. 거리로 나왔다. 한 골목 안에 편의점 세 개가 동시에 보였다. 그 좁고 긴 어둠을 비추는 불빛은 오로지 편의점 불빛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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