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헌재, 전원일치로 갈등 봉합할까..표결은 당일 아침에 할 수도

이범준 기자 입력 2017. 2. 17. 22:06 수정 2017. 2.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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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대통령 박근혜 탄핵 선고’ 앞둔 헌법재판소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건물에 9명의 헌법재판관을 상징하는 9개의 무궁화가 새겨져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적절한 선고시기 2017년 3월2일(목) 또는 3월9일(목).’ 지난해 12월9일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헌법재판소 내부에서는 이런 의견이 나왔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충분한 심리,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의 빠른 극복, 최소한 재판관 8명의 상태에서의 선고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이다. 두 선고일 모두 목요일인 이유는 헌재의 정기선고일이 매달 넷째 목요일인 것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헌재 사람들은 특별기일을 잡더라도 목요일을 먼저 떠올린다.

탄핵심판 연구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되기도 전이자, 국회의 탄핵 의결로부터 사흘 뒤인 12월12일 기자는 보수 성향의 전직 헌재 최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신속한 재판만이 능사는 아니다. 적기의 재판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런 면에서 3월9일에 선고하면 가장 적절하다. 충분한 심리기간이나 조속한 비상상황 해소를 위한 시점이다. 더구나 이정미 재판관 퇴임(3월13일) 전이다.” 이처럼 3월9일은 헌법재판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떠올릴 수 있는 날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기일인 지난 7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가운데)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심판을 주재하고 있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지난달 31일 퇴임해 재판관석 맨 오른쪽 자리가 비어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4일 국회 권성동 소추위원이 “늦어도 3월9일까지는 헌재가 결론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5일 박한철 전 소장은 자신이 참여하는 마지막 변론에서 “3월13일 이전에는 선고가 돼야 한다”고 했다. 재판관이 7명으로 줄어들기 전에 선고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강국 전임 헌재소장도 퇴임 직전 여러 차례에 걸쳐 정치권이 재판관 공석을 방치하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대통령 대리인단은 기다렸다는 듯 반발했다.

“재판부가 소추위원과 무슨 관계이며 선고시점을 왜 미리 정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를 빌미로 대통령 측은 증인들을 무더기로 신청하고 재판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줬다. 그랬더니 정작 증인들은 나오지도 않고, 재판부가 대통령 측의 시간끌기 작전에 끌려다닌다는 소리만 나왔다. 이에 따라 헌재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의 선고일로 3월9일(목)을 제외한 8일(수), 10일(금), 13일(월)설이 나온다.

선고시기가 사실상 3월 초로 확실시되면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심판 결과다. 당초 인용이 당연하게 생각됐으나 최근 들어 기각설도 적잖이 퍼지고 있다. “아직 평의가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재판관들 자신도 결과를 모른다. 재판관들이 선고 당일 아침에 표결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결정문을 두 개 써둔다.”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는 전체 변론을 마치고 재판관들이 평의를 시작하면 결론이 대략 드러난다. 그래야만 연구관들도 한쪽에 힘을 줘서 결정문을 준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어느 재판관이 기각의견이라는 등 구체적인 얘기까지 사설 정보지 등에 실려 돌아다닌다. 주로 서기석, 조용호 두 재판관이 꼽히는데 이유는 대통령이 고른 인사라는 식의 막연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두 사람과 가까운 고위 법조인들의 평가는 이렇다. “서 재판관은 이론이 서기 전에는 심증을 굳히지 않는다. 증거들을 보고 고심하는 중일 것이다.” “조 재판관은 보수라기보다는 서구적 의미의 리버럴(자유주의자)에 가깝다. 성매매특별법에 강력한 위헌의견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가 어떤 의견일지 주변에서도 예측이 어렵다.”

오히려 헌재 안팎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용이든 기각이든 전원일치가 나올 것인지에 주목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을 비롯해 최고법원들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에서 반대의견을 가능한 한 없애려 한다. 흑인 차별의 벽을 깬 1954년 ‘브라운대 교육위원회’ 판결이 3년에 걸쳐 전원일치로 합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소수의견을 통해 판례변경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갈등을 봉합하고 논쟁을 끝내야 할 사건이 있다. 대체로 헌재소장들이 해온 일인데, 설득력이 좋은 이공현 전 재판관(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표)이 이런 역할을 맡기도 했다.

반면 전원일치가 무조건 바람직스러운 것이 아닌 경우도 있다. 헌재는 2011년 위안부 피해자 배상 청구권 분쟁이 있는데도, 정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부작위(할 일을 하지 않음)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위헌으로까지 보는 것은 무리라는 합헌의견이 3명 있었다. 헌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위헌 6명, 합헌 3명 정도 구도가 딱 좋았다. 이론적으로 반론이 적잖은 문제였기 때문에 전원일치 위헌이라면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탄핵심판에서도 재판관 8명은 이 같은 양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종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재판관들이 자신의 심증을 무작정 관철시키려 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기 의견이 전체 결론까지 바꿀 경우 개인 의견보다 헌재 의견을 고려해 결론을 틀기도 한다.

2008년 간통죄 위헌심판에서 민형기 재판관(법무법인 로고스 고문)은 당초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있어서) 위헌’이라는 심증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위헌’이 6명을 채우지 못했고, 따라서 자신이 의견을 고집하면 결론은 위헌의견인 재판관들 주장의 교집합인 ‘(벌금형이 없어) 위헌’으로 나게 된다. 이는 국회가 벌금형을 추가하면 합헌이라는 의견인데, 결과적으로 위헌을 주장한 다수 재판관의 의견과 달라지게 된다.

그는 “그 해묵은 문제에서 어중간한 결론이 나면 분쟁이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음 재판부가 해결하기를 바라면서 합헌의견을 내고, 대신 입법부가 개선하라고 의견을 적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헌재는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심판 사건’의 결정문 초안 작업에 들어갔다. “아직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법리를 정리해둬야 한다. 그러고 나서 변론이 마무리되면 인용과 기각으로 나눠서 결정문을 쓴다. 사건 전체를 한눈에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관 한 사람이 총괄해서 작성한다. 미국과 독일 사정에 두루 해박한 모 부장급 연구관이 쓰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결정문을 쓰기 시작하면 실제로 2주 정도 걸린다.” 헌재 내부를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헌재는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고 있다. “정당해산 사건 때는 선고 이후를 신경 썼는데, 탄핵 사건은 선고 이전에 주의하고 있다. 연구관들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졌다.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적고 만나도 사건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재판관들도 마찬가지다. 박 전 소장은 퇴임 때까지 점심과 저녁을 모두 구내에서 먹었다.” 법조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김용헌 헌재 사무처장은 지난달 헌재 대강당에서 치를 예정이던 아들의 결혼식을 부랴부랴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예식장으로 옮겼고, 재판관들을 제외하고는 내부에도 알리지 않았다.

“한국의 탄핵제도는 국회와 헌재를 거치는 사법형이다. 미국의 탄핵제도가 하원과 상원을 거치는 정치형인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많은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심리를 열었다. 이제 결론을 내는 일만 남았다. 개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대통령의 운명뿐 아니라 헌재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전·현직 헌재 고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아직은 시린 겨울바람이 남아 있는 봄날에 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 사건이 선고된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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