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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起)·승(承)은 넘었으나 전(轉)·결(結) 앞에 멈춰섰다

곽정수 입력 2017.02.17 21:56 수정 2017.02.18 00:0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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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겨레]

삼성의 ‘황태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는 지난 20년간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삼성에버랜드 주식 헐값 인수로 대표되는 재벌 불법·편법 상속증여의 상징이다. 둘째는 삼성전자 부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16년간 단 한번도 경영성과에 책임지는 자리를 맡은 적이 없는 ‘온실 속의 화초’ 이미지다. 여기에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근혜·최순실에게 400억원이 넘는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되며 정경유착의 상징 이미지까지 더하게 됐다. 이재용이 삼성의 후계자가 되고, 불법편법 상속증여로 10조원에 가까운 재산을 만든 것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이건희 회장이 주도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된 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벗어나 ‘뉴 삼성시대’를 선도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제대로 읽지 못한 그의 과오 탓이라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감옥 안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본인과 삼성은 물론 재벌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진은 특검에 재소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글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 그의 운명은 한국의 다른 재벌 3세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단지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어 한국 재벌체제 전체에도 큰 의미를 던져준다. 그는 과연 앞으로 어떤 운명을 선택할까?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을까? 아니면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과 삼성을 살리고, 다른 재벌 3세들에게도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개척자가 될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결국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7일 새벽 구속 수감됐다. 한국 최고 재벌의 황태자로 태어나 삼성 창업 79년 만에 총수로는 첫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이재용. 그는 지난 13일 특검에 재소환되어 조사받을 때 과연 이런 운명을 예감했을까? 이재용이 그사이 어떤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조사를 받는 중에 온갖 생각이 들더라. 내가 왜 여기에 들어왔는지…. 나중에는 분노 같은 것도 치밀더라.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하고….” 검찰 조사를 받았던 한 삼성 임원이 털어놓은 얘기다. 이재용도 아마 비슷한 심정 아니었을까? 자신의 지나온 48년 삶을 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했을 듯싶다. 내가 왜 여기에 오게 됐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동안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온 것인지? 어쩌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하지 않았을까?

이재용은 1968년 서울에서 이건희 회장의 1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회장이 아직 삼성그룹 후계자로 지명되기 이전이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이재용이 장차 한국 최고 재벌 삼성의 후계자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부친인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난 두 형 이맹희, 이창희를 제치고 삼성의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이재용의 운명도 180도로 바뀌게 된다.

지금껏 국민들의 머릿속에 박힌 이재용의 이미지는 세 건의 주요 사건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삼성에버랜드 주식 헐값 인수 사건이다. 이재용이라는 이름이 국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9살 때인 1997년 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3세 승계를 염두에 두고 ‘세금 없는 대물림’에 착수한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시점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자녀들에게 60여억원을 증여했다. 이재용 등은 증여세 16억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삼성의 비상장 계열사인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싸게 사들였다. 두 회사가 상장한 뒤 바로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팔아 600억원을 확보하는 ‘현대판 연금술’을 발휘했다. 삼성의 절묘한 절세수법에 ‘닭 쫓던 개’처럼 당하고만 있는 세제당국을 향해 “삼성은 토끼, 정부는 거북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재청구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오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6일 현재 주식가치 6조8천억

하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재용 오누이는 1996~1997년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와 삼성에스디에스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다시 헐값에 인수했다. 삼성에버랜드는 20년 뒤 제일모직·삼성물산(구)과의 합병을 거쳐, 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지금의 삼성물산(신)으로 바뀌었다. 이재용은 현재 삼성물산 지분 17%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두 여동생 지분까지 합치면 28%에 이른다. 주식 가치도 16일 현재 6조8천억원어치에 달한다. 삼성물산 지분의 진짜 가치는 삼성그룹의 두 축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분을 각각 4.2%, 19.3%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은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나머지 삼성 계열사로 이어지는 소유구조를 통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과 이재용 영장기각 규탄 법률가 농성단’이 14일 오후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그룹 경영권 장악을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면, 삼성에스디에스 지분은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종잣돈 확보용이었다. 에스디에스가 2014년 11월 상장되면서 이재용이 보유한 주식 가치도 급등했다. 이재용의 지분 9.2%의 가치는 16일 기준으로 918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월 매각한 2% 지분까지 포함하면 1조2천억원이 넘는다. 세 오누이의 에스디에스 주식 가치는 모두 1조9천억원에 이른다. 이재용 오누이가 갖고 있는 삼성물산과 삼성에스디에스 지분 가치만 8조7천억원이다. 이들의 최초 주식 인수자금 546억원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159배의 수익을 기록한 셈이다.

이재용은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세번째 부자 반열에 올라 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인 부친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상속하면, 그날로 바로 이재용 자신이 최고 부자에 오른다. 2008년 삼성 특검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인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인수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은 모두 배임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회장과 삼성 경영진이 비록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이재용의 이마에는 ‘재벌 3세의 불법편법 상속증여의 상징’이라는 깊은 낙인이 찍혔다.

이재용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상무보라는 직위로 삼성에 입사했다. 그의 나이 33살 때다. 1995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2000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니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위한 예정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은 이재용 입사 한해 전인 2000년 이(e)삼성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닷컴과 벤처 열풍을 등에 업고 2000년 5월 이후 불과 두세달 만에 이재용을 최대 주주로 하는 e삼성 등 인터넷 기업 14개가 설립됐다. e삼성 프로젝트는 그룹 사령탑인 구조조정본부(현 미래전략실)가 계열사 전체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진행했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신응환 삼성 구조본 이사가 e삼성 대표이사를 맡고, 구조본과 삼성 금융계열사 출신이 e삼성 등 인터넷 회사로 대거 이동했다”며 “후계자인 이재용의 성공신화를 만들어 3세 승계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증여한 60여억원이 종잣돈
이재용 남매, 비상장 계열사 사들여
1996~97년 에버랜드 CB 헐값 인수
20년 만에 159배 넘는 수익률 남겨 2000년 이재용 주도의 e삼성 프로젝트
구조본 나서 계열사 역량 총동원 지원
벤처 거품 꺼지며 참담한 실패 맛보자
8개 계열사 380억 손해 보며 지분 인수

하지만 불과 1년 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e삼성 사업은 급속히 부실화됐다. 삼성은 전광석화처럼 대응했다. 2001년 7월 제일기획과 삼성에스디에스 등 8개 계열사를 동원해 이재용의 e삼성 지분을 전격 인수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 성공신화를 만들기 위해 추진된 e삼성 사업이 실패할 경우 이재용에게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경영권 승계에도 장애요인이 될 것을 우려해 계열사들이 손해를 무릅쓰고 주식을 무리하게 인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e삼성 지분을 인수한 계열사들은 불과 3년 만에 380억원대의 손실을 보았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과 e삼성 지분을 인수한 회사의 경영진을 모두 배임죄로 고발했다.

11년 만에 상무보에서 부회장으로

이재용은 이후 삼성전자에서 상무(35살)-전무(39살)-부사장(42살)-사장(42살)을 거쳐 2012년에는 부회장(44살)으로 승진했다. 불과 11년 만에 상무보에서 시작해 부회장까지 5계단을 뛰어오른 초고속 승진이다. 임원 승진까지 최소 20년 이상 걸리는 평범한 월급쟁이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별나라의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재벌그룹 3세들의 경우 약관 30대에 이미 사장, 부회장으로 고속 승진을 하는 일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이재용만 비판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이재용은 삼성에서 단 한번도 경영성과에 대해 직접 책임지는 자리를 맡은 적이 없다. 상무, 전무, 부사장 등의 보직을 맡은 시기뿐만 아니라 2010년 12월 이후 사장, 부회장으로 승진해 사실상 최고경영자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2007년부터는 최고고객책임자(CCO), 2010년부터는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호칭을 달았지만, 모두 경영성과를 통해 평가받는 자리와는 거리가 있다. 삼성전자의 한 전직 고위임원은 “이 부회장의 ‘안전위주 운행’은 그룹 차원의 총력 지원을 받았던 e삼성 사업의 실패와 더해져 ‘온실 속의 화초’라는 이미지를 굳게 했다”며 “이는 이 부회장의 경영역량이나 의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2012년 7월28일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오른쪽)과 가족 일가가 런던올림픽파크 아쿠아틱센터 수영경기장에서 열린 박태환 선수의 수영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재계에서는 이재용을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3세인 정의선 부회장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의선은 이재용보다 두살 어린 1970년생이다. 둘은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정의선은 서른다섯살인 2005년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을 전격적으로 맡았다. 30대 중반에 그룹의 핵심기업 대표이사 사장을 맡은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마침 사장 취임 2년차부터 기아차 실적이 악화됐다. 특히 2년째인 2006년에는 영업적자가 1천억원을 넘었다. 정몽구 회장의 참모들은 “정 사장이 더 이상 큰 상처를 입기 전에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긴급 건의했다. 하지만 정 사장 스스로 이를 마다하고 자리를 지켰다. 2007년에는 영업적자가 절반선인 500억원대로 줄더니, 2008년에는 3천억원대의 영업이익으로 급반전했다. 사장 재임 마지막해인 2009년에는 영업이익이 무려 1조1천억원을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정의선은 이를 발판으로 현대차 부회장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현대기아차 임원들이 “정의선 부회장이 이재용 부회장과 다른 점”이라고 자부심을 나타내는 배경이다.

이재용으로서는 자신에게 씌워진 불법편법 상속증여의 상징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억울해할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에스디에스 주식 헐값 인수로 대표되는 세금 없는 대물림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친과 가신들이 주도해서 벌인 일이다. `온실 속의 화초’라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항변할 수 있다. e삼성 사업은 이재용 본인이 주도했다기보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그룹 구조본이 총동원돼 추진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용이 e삼성 실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 또한 아니다. 이재용은 나름 e삼성 사업에 상당한 열의를 갖고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경영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서른두살의 성인이었다. 더구나 지난 16년간 경영책임을 지는 자리를 한번도 맡지 않고 피해온 데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전적으로 이재용이 자초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콤플렉스 또는 스트레스

기업가에게 도전정신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삼성을 창업한 할아버지 이병철, 삼성을 글로벌 전자기업으로 키운 아버지 이건희는 무에서 유를 만든 기업가정신의 본보기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삼성의 3세 경영을 책임져야 할 이재용에게는 이런 기업가정신, 도전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주변의 시각이 많다. 이재용이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부진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외모는 물론 집요하고 지독한 성격까지 빼닮았다고 해서 ‘리틀 이건희’라고 불린다. 이부진은 최고운영책임자라는 직함만 그럴싸한 오빠와 달리, 2011년부터 신라호텔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명실상부하게 최고경영자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보여줬다. 이부진은 이재용의 구속에 따른 경영공백을 메울 유력 후보 중 하나로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결국 온실 속의 화초라는 이미지는 이재용으로는 억울한 측면과 책임져야 할 측면이 반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재용에게 일종의 ‘콤플렉스’ 내지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재용은 미국 유학 시절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임세령씨와 만나 1998년 결혼했다. 한국 최대 재벌 삼성의 후계자와 역시 재벌가 장녀의 혼사는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재용 부부는 슬하에 1남1녀를 두는 등 화목하게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은 11년 만인 2009년 합의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혼 사유는 이재용의 외도로 알려져 있다. 이재용이 임세령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지급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이혼소송을 맡았던 변호사가 속해 있는 로펌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지급한 위자료가 1000억~1500억원 정도”라고 귀띔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 삼성의 후계자이고, 재산이 10조원에 육박하는 대한민국 최고 부자이며, 재벌가 출신 미모의 부인과 사이에 1남1녀까지 두고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던 이재용이 왜 이혼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일을 저질렀을까? 콤플렉스 내지 스트레스와도 관련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재용은 이제 박근혜·최순실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되면서 ‘재벌 정경유착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도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25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은 적이 있다.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은 2015년 6월 이후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불공정 합병 비율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재용은 청와대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합병 찬성 로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이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합병에 찬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재용은 경영권 승계라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다수 국민의 이익을 무시한 부도덕성까지 부각됐다. 뇌물 사건의 좀더 근본적인 배경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다. 특검도 지난 1월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압수수색 등을 단행하는 등 수사 범위를 경영권 승계 전반으로 넓힌 것이 구속영장 발부라는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9월15일 대구무역회관에 열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확대 출범식에서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회장 타이틀만 달지 않았을 뿐”

불법편법 상속증여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가 이재용에게는 억울하고, 온실 속의 화초라는 이미지는 이재용이 억울한 측면과 책임져야 할 측면이 반반이라면, 이번 정경유착의 이미지는 전적으로 이재용의 책임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이재용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진 이후 사실상 삼성의 총수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고위임원도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 타이틀만 달지 않았을 뿐 업무수행과 권한행사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은 이병철과 이건희 시대에는 뛰어난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와 사회책임에서는 사회와 국민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며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재용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사회책임을 제대로 수행해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얻어 조부와 부친의 시대와 차별성 있는 ‘뉴 삼성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재용은 가신들의 등에 업혀 기존의 불법편법적 수법에 의존해 경영권 승계 마무리 작업을 무리하게 벌이다가 위기를 자초한 꼴이 됐다.

이재용은 부친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다시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가신들의 뒤에 숨어서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할까? 이재용은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총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등의 반대를 뚫고 합병안이 가까스로 통과된 뒤 미래전략실 임원이 축하인사를 건네자 “이게 축하받을 일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는 이재용도 가신그룹들이 주도한 무리한 합병에 대해 걱정이 컸음을 짐작게 한다.

2010년 이후 사장·부회장 올랐으나
경영실적 책임지는 자리는 극구 피해
‘온실 속 화초’라는 이미지 굳어져
“경영능력·의지 회의적 시각 많다” 뇌물공여 등 혐의 인정 땐 중형 불가피
사면복권·경영복귀 등 불투명해져
이재용 문제는 한국 재벌 전체의 문제
“대주주는 물러나 감독 역할 충실해야”

하지만 이재용은 결국 가신그룹들이 과거 방식대로 하는 것을 용인했다. 그리고 본인은 가신들에 등에 업혀가는 안전운행을 계속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이후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아직 그 문제로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를 두고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간부는 “이재용은 칼을 쥐여줘도 휘두르기는커녕 빼지도 않는 것 같다”고 리더십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만약 이건희 회장이 건재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라고 말하는 삼성맨들이 많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모두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하고, 불량 휴대폰 수십만대를 한곳에 쌓아놓고 불태우는 화형식을 단행하고, 고비 때마다 위기경영 극복의 화두를 제시했던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이재용에게서 보고자 했던 삼성맨들의 바람은 충족되지 못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01년 3월 33살의 나이에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상무보로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나섰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용이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은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시장에서는 책임경영의 시작, 온실 속 화초라는 이미지에서의 탈피로 받아들이며 긍정 평가했다. 하지만 등기이사로 선임됐을 뿐 정작 달라진 것을 찾기는 힘들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그러려면 왜 등기임원을 맡았는지 모르겠다.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의 실망이 너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재용이 이건희 회장의 병환 이후 신속하게 본인의 새로운 경영철학과 비전을 담아 뉴 삼성시대를 주도했다면 지금 상황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재용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세 가지 사건, 즉 불법편법 상속증여 사건, e삼성 실패 사건, 박근혜·최순실 정경유착 사건은 모두 삼성의 3세 승계와 깊이 연관돼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떼놓을 수 없는 이재용의 과거 삶과 미래 삶은 ‘기승전결 4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기(起)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인수에서 시작한 세금 없는 대물림이다. 승(承)은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기초를 놓기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이다. 전(轉)은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 완성을 위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이다. 결(結)은 이재용이 삼성의 최고경영자로서 경영역량을 보여줘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다. 김상조 소장은 “이번 구속으로 이재용은 전과 결을 기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2016년 12월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의 문제는 한국 재벌 전체의 문제

이번 구속으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삼성 성역’이 아님을 보여줬다. 경영계와 보수언론의 ‘총수 부재 타격’ ‘경제 파장’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은 더이상 먹히지 않았다. 또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형제 사례가 보여줬듯이 뇌물공여·횡령 등의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이재용은 집행유예는커녕 최소 5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처럼 형기 중에 대통령의 사면복권이라는 특혜로 풀려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감옥에서 풀려나더라도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경영에 바로 복귀하는 일도 앞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재용의 미래를 지금 시점에서 속단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지 알 수 없다.

이재용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한국 재벌체제 전체의 고민과도 밀접히 맞닿아 있다. 한국 재벌은 2세 체제에서 3세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외부 환경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경영역량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국민과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받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3세들에게 기업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과연 해답은 무엇일까?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3세들이 경영을 잘하면 좋지만 잘못하면 그 위험이 너무 크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대주주는 감독 역할에 충실한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김상조 소장도 “총수가 최고경영자가 아닌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을 맡아 일상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그룹 경영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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