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라이프] '新 등골브레이커'..허리 휘는 가격인데 '매진'

김도균 기자 2017. 2. 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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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112만 원, 코트 138만 원, 신발 32만 원.

혼수 용품이나 어른 선물이 아닙니다. 3월에 입학을 앞둔 초등학생을 축하하며 사준다는 아동용품의 가격입니다.

정규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인 279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 요즘 초등생을 둔 부모들 사이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 SBS '라이프'에선 이른바 '신 등골브레이커'가 지배하고 있는 아동용품 시장을 살펴봤습니다.

입 벌어지는 가격인데…'매진'

SBS 기자가 직접 서울의 한 백화점의 아동 명품 매장에 가서 요즘 잘 팔린다는 책가방의 가격을 물어봤습니다.

해당 업체 직원은 112만 원이라는 말과 함께 이 상품도 그나마 다 팔리고 딱 하나 남은 물건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비싼 책가방을 누가 살까' 싶었지만 이미 상품들은 매진됐고 재고는 아직 들어오지 않아, '없어서 못 판다'는 겁니다.

책가방만이 아닙니다. 도시락 가방은 97만 5천 원에 달했고, 아동용 코트가 72만 원이었습니다. 아동용 원피스도 72만 8천 원에 나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출시만 되는 게 아닙니다.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72만 원대 코트는 이 매장을 찾는 고객의 40% 이상이 구매하는 것으로 전해졌고, 72만 원이 넘는 아동 원피스도 해당 매장에서 가장 먼저 매진된다고 합니다.

경기 침체로 유통업계 매출은 전반적으로 줄고 있지만, 백화점의 아동용품 매출은 지난해보다 늘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아동 상품군 매출이 지난 9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완구 매출 증가율은 48.4%에 달했습니다.

현대 백화점도 이달 들어 9일까지 아동 상품군 매출이 13.3% 늘었습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전체 매출 신장률이 2%인 것에 비해 해외 명품 아동용품 매출은 30배가 넘는 신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에 'OO 키즈, OO 칠드런, OO 주니어'를 단 명품 아동용품 시장은 불황에도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제품들의 질이 그렇게 뛰어난 걸까요?

식스포켓, 에잇포켓…아이 1명에 전부 지갑 연다

'식스포켓', '에잇포켓'이라는 말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식스포켓'은 원래 199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입니다.

'6개의 주머니'라는 뜻의 '식스포켓(six pocket)'은 한 자녀를 위해 부모 외에도 친조부모, 외조부모 등 총 6명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도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 가구의 자녀가 1명 또는 2명으로 줄어든 만큼 아이가 귀해졌습니다. 이 '귀한 아이'에게 부모들과 조부모들이 자녀에게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면서 이 용어가 등장한 겁니다.

여기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모, 고모, 삼촌까지 가세하면서 세븐포켓, 에잇포켓, 돈이 나오는 주머니의 개수에 따라 '텐포켓'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습니다.

'베블런 효과' 퍼진 아동용품 시장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습니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소비를 통해 수요가 생긴다'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이 통하지 않는 시장의 모습을 잘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전문가들은 귀금속류나 고급 자동차 등에 적용되던 베블런 효과가 아동용품 시장에 퍼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자신의 아이를 왕자나 공주처럼 이른바 '골드 키즈(gold kids)'로 키우려는 추세와 함께, '어차피 한둘인데 더 쓰자'는 생각까지 더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또 부모 세대가 SNS를 많이 이용하게 된 것도 이런 세태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SNS를 통해 남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경향이 커졌고, 명품 아동용품을 선물 받은 아이의 사진을 올리며 '나는 이 정도는 해주는 사람이야'라며 '과시욕'을 충족한다는 겁니다.

귀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부작용 우려

전문가들은 아이에 대한 사랑을 막연하게 제품의 브랜드와 가격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나고 있습니다.

덕성여대 사회학과 김종길 교수는 내 아이를 비싼 브랜드로 치장함으로써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가의 키즈 산업을 성행하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일부 맞벌이에 치인 부모들이 육아의 소홀한 부분을 금전적으로 채우려는 심리도 작용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교육 전문가들도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것'과 '사랑의 표현'이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수없이 강조합니다.

여기에 수십만, 수백만 원에 이르는 아동용품이 아이들 사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사회적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샤오황띠(소황제), 샤오공주(소공주) 신드롬'을 아십니까?

1979년 이후,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인 '한 자녀 갖기' 정책이 펼쳐진 중국에서 독자로 태어나 갖은 응석을 부리며 황제처럼 자라온 세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은 풍요로움 속에서 부모의 절대적인 지지와 과보호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사회적 문제로까지 언급되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장기 불황 속, 고가 명품 아동용품 매출의 급격한 신장을 보면서 '한국의 소황제, 소공주 신드롬'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취재: 심영구 / 기획·구성: 김도균, 송희 / 디자인: 김은정)    

김도균 기자getse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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