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썰] 힘을 내요, 한국의 골프 王

이은경 기자 2017. 2. 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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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마스터스의 왕정훈. 사진=유러피언투어 홈페이지 캡처


때는 지난 설 연휴였다. 사실 처음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유러피언투어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왕정훈(22)이 2, 3라운드 선두를 유지해 갔다. 결국 4라운드에서 약간 주춤하면서 승부는 연장까지 갔지만 기어이 우승컵을 왕정훈이 가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짜릿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을 느꼈을 것 같다. 우승컵을 든 왕정훈의 '빈 모자' 때문이다.

왕정훈은 메인스폰서가 없다. 지난 시즌 유러피언투어 신인왕에 올 시즌 벌써 1승을 올렸는데도 그를 후원하겠다는 회사는 나타나지 않았나 보다.

16일 서울 을지로에서는 화려한 메인스폰서 조인식이 열렸다. 박성현(24)이 드디어 새 메인스폰서사를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자리였다. 박성현은 KEB하나은행과 2년간 후원 계약했고,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역대 최고액에 근접한다"는 말이 나왔다. 역대 최고액은 2002년 박세리가 CJ와 계약한 연봉 20억원 규모다.



KEB하나은행 메인스폰서 조인식의 박성현.  (마니아리포트 자료사진)

박성현은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현재 최고의 골프 스타다. 지난해 KLPGA투어를 휩쓸면서 최고 인기를 증명했고, 막 떠오른 신선한 스타의 느낌도 아주 강하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여자 선수 사이에서 보기 드문 시원한 장타, 그리고 한국에서 최고 기량을 인정받은 후 미국에 도전하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메인스폰서사 외에도 서브스폰서사가 한손으로 꼽기에 어려울 정도로 많다.


반면 왕정훈이 아직 메인스폰서가 없는 걸 보면, 그의 '상품성'이 적어도 한국 시장에선 박성현보다 떨어진다고 업체들이 평가를 내렸다는 뜻이다.

왕정훈이 한국팬들 앞에서 활약한 경험이 없어 인지도가 높지 않고, 유러피언투어가 국제 골프무대 전체로 보면 큰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큰 인기가 없는 것도 악재다. 게다가 한국에선 여자 골프가 남자 골프보다 훨씬 큰 인기를 누리고 있고, 왕정훈은 한국 남자라는 죄(?)로 향후 군 복무도 해야 하니 '상품 가치'에서 손해보는 걸 감수해야 한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우리 왕정훈이 안쓰러우니 누가 좀 나서 봐요'라고 정에 호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다만, 후원사와 선수들이 형성하고 있는 한국 골프의 '생태계'를 보면서 드는 아쉬움은 있다.

프로 세계가 원래 승자독식의 정글이라고는 하나 한국의 후원사들이 나름의 철학이나 뚝심을 보여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유행과 당장의 성과만을 좇는 경우는 많다는 사실은 착잡하다. 일부 여자 스타들에게는 과도할 정도로 경쟁이 붙어서 스폰서가 몰리는 모양새는 '어차피 돈 쓰는 건데 가장 빛나고 효과 빠른 것만 취하겠다'는 욕심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다 보면 부작용도 생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순간 후원사가 해당 스타를 버리는(?) 것도 그만큼 빠르다. 또 다른 최고 스타에게 빨리 투자해야 하니 말이다.

과열 경쟁으로 지출에 출혈이 생기면, 그만큼 가능성 있는 유망주에게 투자할 돈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런 제로섬 게임이 전체적으로는 해당 종목의 시장 파이 자체를 위축시킨다.

후원사가 선수의 상품성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풍토가 생기면, 반대급부로 스타 선수가 스폰서를 경시하는 부작용도 나온다. 업체와 선수가 서로 믿음을 갖는 게 아니라 약간의 금액만 더 준다고 해도 금세 후원사를 갈아치워 버리면서 시장 전체의 신뢰가 무너지기도 한다. 이는 서로 맞물려 전체적인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골프도 제대로 모르는 나 같은 일개 기자가 한국의 골프 비즈니스에 대해 뭘 알겠느냐 만은, 골프계 전반적으로 후원사들이 절박하게 '당장의 인기' '당장의 성적' '당장의 실적과 성과'만을 재촉하는 듯한 모습이 느껴지면 그 모습이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축소판 같아서 때론 숨이 막힐 때도 있다.

이은경 기자 kyo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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