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총사령탑' 사퇴에 권력 투쟁까지..백악관 흔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안 돼 백악관이 휘청거리고 있다. '러시아와의 부정 내통 의혹'이 제기된 마이클 플린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25일 만에 결국 낙마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출범 한 달도 되지 않아 백악관 안보사령탑이 사임하면서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또 백악관의 '문고리 권력’을 놓고 정통 공화당 주류를 대표하고 있는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 측과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고문이 이끄는 워싱턴 아웃사이더 출신 트럼프 사단 간의 갈등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프리버스 비서실장과 배넌은 트럼프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두 축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배넌 등 극우파 측근들의 공세로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과 그가 추천한 숀 스파이서 대변인의 교체 필요성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분위기 쇄신을 위해 백악관 참모진 개편에 나설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백악관 안보사령탑’ 플린 25일 만에 사퇴
미국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플린 보좌관의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플린은 지난달 20일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낙마한 첫 번째 인사이자, 역대 백악관 선임 보좌관 중 초단명 보좌관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플린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세르게이 키슬략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접촉하면서 '대(對) 러시아 제재 해제'를 논의한 사실이 폭로돼 궁지에 몰렸다. 트럼프 선거 캠프에서 안보 고문이었고 트럼프 당선인 시절에도 정권 인수위원회 인사였던 그가 러시아 대사와 나눈 대화는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그가 이와 관련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거짓 해명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펜스 부통령이 언론에 나서서 거짓을 말하게 했다는 사실이 미국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결국, 백악관 안팎의 사퇴 압력이 거세지자 플린이 별도의 사퇴입장문을 통해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지난해 대선 초기부터 트럼프 캠프에서 외교 및 국가 안보 정책에 참여하면서 안보진용의 한 축을 맡았던 플린의 '중도하차'로 트럼프 행정부는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는 키스 켈로그 미 NSC 사무총장이 직무를 대행할 예정이다.
트럼프 측근, “프리버스 실장 교체하라”
백악관 안보 보좌관의 사퇴에 앞서 불거진 '공화당 주류'와 '원조 트럼프 사단'과의 권력투쟁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지난 주말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크리스토퍼 러디 뉴스맥스 최고경영자(CEO)는 프리버스 비서실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파 온라인 매체를 운영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러디는 워싱턴포스트(WP)와 CNN 등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백악관 참모진에 취약점이 많다.프리버스는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연방기관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잘 모른다”며 프리버스 비서실장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경질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러디는 "프리버스가 이민 관련 작품 전반을 망쳤다. 소통의 흐름도 모른다"며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반발의 책임을 '홍보 실패'로 돌렸다. 러디는 인터뷰가 나간 이후 "현직 장관들에게서 잘했다는 문자메시지 세 통을 받았다”면서도 그들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러디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 언론들은 반이민 행정명령이 졸속으로 추진되면서 파문이 확산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를 주도한 스티브 배넌 등 극우 측근 참모들이 프리버스 비서실장을 희생양 삼아 책임을 면하려고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배넌 측은 반이민 문제에 관한 최근의 비판 여론이 프리버스 측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배넌 수석과 프리버스 실장은 트럼프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트럼프 정부 권력의 양축으로 갈등설이 끊이지 않았다.
극우파 측근들은 또 프리버스 비서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잃은 숀 스파이서에 백악관 대변인을 추천한 사실도 문제 삼고 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파이서 대변인이 지난달 첫 정례 브리핑 때 자신이 싫어하는 CNN 방송의 기자에게 질문권을 주고 공방을 벌인 것이나, 그가 최근 브리핑에서 맏딸 이방카를 공개 옹호한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주의 조치를 받았다'고 발언한 데 대해 큰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계자는 "프리버스 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감을 거스르고 스파이서 대변인을 보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매일 후회하고 있고 프리버스를 탓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눈 인사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프리버스 실장의 미래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대선캠프 출신 일부 참모들이 이미 비서실장 후임자를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콘웨이 선임고문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비서실장을 지낸 릭 디어본,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 직함을 가진 재러드 쿠슈너의 이름도 거명된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프리버스 비서실장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고 있는데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매끄럽지 못한 정권 출발에 크게 실망한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측근과 지인들에게 일부 고위 참모들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진 조기 개편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핵심 실세로 떠오른 32살의 극우파 스티븐 밀러
이처럼 프리버스 비서실장과 스파이서 대변인 등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출신 정통 워싱턴 정치인들이 권력 다툼에 밀려 백악관에서 퇴출당할 위기를 맞고 있는 반면 미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핵심 실세로 떠오른 인물은 백악관 수석 정책 고문인 올해 32살의 스티븐 밀러이다.
그는 현재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함께 '양대 책사'로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을 둔 극우 인종주의 정책을 이끌고 있다. 반이민 행정명령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북미 자유무역 협정 재협상 등 트럼프의 도발적인 정책에 밀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을 정도이다.
스티븐 밀러는 진보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품어 학교 측과 자주 충돌한 '이단아'에 가까웠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대학 시절에도 극우적인 성향을 강화해온 그는 20대 후반에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인 제프 세션스 당시 상원의원의 보좌관을 맡게 된다. 밀러는 보좌관 시절인 2013년 미국 상원이 불법 체류자에게 취업허가증을 발급해주는 이민개혁법을 논의하자 외국인 노동자를 악으로 비유하고, 이민개혁법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을 비난하는 이메일 수십 건을 상원 직원들과 기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 후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이 가장 먼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며 캠프 좌장을 맡자 밀러도 자연스럽게 '트럼프 대선캠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밀러 정책고문이 세션스 법무장관·배넌 수석전략가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 극우주의의 삼각 축을 이루게 된 셈이다.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제이슨 밀러는 "스티븐 밀러는 말하자면 확신범"이라고 뉴욕타임스에 증언했다. 그는 "스티븐은 경제적인 대중영합주의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자 자질까지 자기가 꺼내는 말의 의미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믿는 인간"이라며 "트럼프에 격렬하게 충성을 다하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트럼프의 비전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밀러는 트럼프의 연설문을 담당해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스티븐 밀러를 공개적으로 극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감싼 밀러 고문을 두고 "여러 일요일 아침 방송에서 나를 대변했다. 잘했어!"라는 칭찬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김의철기자 ( kime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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