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질서 있는 패배론' 어른어른(종합)

오상도 2017. 2. 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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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朴대통령 '질서 있는 퇴진론' 이어,
與圈, '질서 있는 퇴각론' '질서 있는 후퇴론' '질서 있는 패배론' 등장
남경필 “원칙 없는 패배가 최악”
일각선 자성·자학론 고개 들어…대선後 혼란 최소화 목적도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이번 대선에선 보수후보가 당선되면 안 된다. 그것이 민심이고 국민여론이다. 보수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담배를 피워 문 보수정당의 선거캠프 관계자는 작심한 듯 독설을 내뱉었다.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분류되는 야권 대선주자들이 지지율 수위를 다투며 '대세론'이 굳어지는 듯한 분위기를 일컫는 얘기였다. "마치 2007년 대선 직전 옛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경선 후보를 보는 듯하다. 그 때도 다른 야당 후보들과 큰 격차가 났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당시 보수층을 향해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제 진보진영을 향해 확연히 기울었다.

자유한국당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자유한국당(한국당)과 바른정당 내부에선 수면 아래에 꼭꼭 숨어있던 '질서 있는 패배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겉으론 '대선 필승' '역전승'을 외치지만 안에선 대선 패배 이후 불어 닥칠 범여권의 혼란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비등해졌다.

 그동안 범여권에서 '질서 있는 패배'는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 영입을 둘러싸고 주로 거론돼 왔다. 일부 여권 의원들이 "반 전 총장이 보수세력의 대선후보가 되면 (대선에서) 질서 있는 패배를 할 것"이라며 우려할 때에 사용되던 말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역전됐다. 보수 부활의 메시아로 여겨지던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유일한 지지율 두 자릿수의 보수 주자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출마가 불투명해지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고조됐다.

 이런 가운데 바른정당 소속의 남경필 경기지사는 최근 "원칙없는 패배가 최악"이라며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의 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연대 주장에 맞섰다. "한국당과 뭉치는 건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지더라도 원칙 있게 지자"는 주장이다.

 반면 다른 쪽에선 대선 패배 이후 범여권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질서 있는 패배를 주장하고 있다. 질 때 지더라도 향후 여권통합의 기반을 마련해놓자는 이유에서다. 한 여권 인사는 "과거 사례를 볼 때 같은 정파가 분리돼 선거를 치르면 상호 비방과 경쟁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통합은 물 건너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다른 여권 인사도 "이번 대선 직전까지 어떻게든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연대나 통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못박았다.

 무려 9명에 달하는 대선주자들이 난립한 한국당에선 대선을 앞두고 각자도생을 전제로 한 질서 있는 패배론이 감지된다. 대선 승리보다 당내 역학구도나 사법기관 수사 등 외부요인을 무마하기 위한 출마가 줄을 잇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주자는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출마를 위해 당내 경선을 활용할 것이란 얘기가 돈다.

바른정당


 애초 '질서있는 패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이탈리아 전선 총사령관인 알베르트 케셀링 이후 종종 회자됐다. 독일군이 대 소련전선에서 후퇴를 금지하다 궤멸된 것과 달리 이탈리아 전선에선 단계적 방어막을 구축해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선 2012년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민주당이 '질서있는 수습'을 내세운 바 있다. 지난해 말 보수 원로들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론'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 정치권 인사는 "일부 여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이 같은 분위기는 '과거 여당답게' 깨끗하게 승부하고 이후 정국 안정을 도모하자는 뜻도 있다"며 "향후 궤멸될지도 모르는 강경 보수의 숨통을 열어놓으려는 노림수도 담겼다"고 해석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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