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직업열전] 자연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는 즐거움..중장년층의 '제2의 직업'이 될 '산림치유지도사'

세종=전성필 기자 2017. 2. 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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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상북도 영주 봉현면 소백산 자락 해발 400m 고지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 산림 자원을 활용해 건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겹겹이 쌓인 능선이 아래로 펼쳐졌다. 한겨울이라 울창한 녹음은 없었지만, 산 곳곳에 쌓인 하얀 눈과 잣나무 등 침엽수의 녹색이 어우러졌다. 갈색빛의 국립산림치유원 건물은 산과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국립산림치유원 내 치유숲길 모습 /국립산림치유원 홈페이지 화면 캡처.

국립산림치유원은 국가 산림치유시설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2889만㎡) 규모다. 산림치유지도사를 양성하고 산림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역할도 한다. 이날 국립산림치유원에는 영주 지역 농구 동호회 회원이 1박 2일 일정으로 머무르며 숲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들은 치유원 안에 조성된 여러 치유숲길 중 약 잣나무 군림으로 구성된 ‘솔향기치유숲길(약 500m 길이)'을 걸을 예정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간혹 불어오긴 했지만 맑고 화창해 숲을 산책하기에 적당한 날씨였다.

김병화 국립산림치유원 과장(산림치유지도사 1급)의 구호에 맞춰 몸을 푼 후 언덕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숲길 초입에는 눈이 쌓여있어 미끄러웠지만, 군데군데 드러난 흙을 밟으며 쉽게 따라 올라갈 수 있었다. 숲길 옆으로는 자작나무가 높게 뻗어있었고, 곳곳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따라 약 150m쯤 걷자 언덕 위에 여러 개의 나무 의자가 놓여있었다. 동호회 회원들이 의자에 앉자 김 과장은 “눈을 감고 귀로 들어오는 소리에 집중해보자”며 “숲속에서 눈을 감으면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하자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바닥에 흩어져있던 낙엽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려왔다. 숲 한 곳에서는 ‘딱딱딱딱’하며 딱따구리가 잣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렸다. 숨을 쉴 때마다 피톤치드가 몸 속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약 10분 뒤 숲길을 따라 100m를 더 이동했고, 햇볕이 좋은 넓은 공터에 동호회 회원들이 늘어섰다. 이곳에서 약 10분 동안 양팔을 넓게 펴고 햇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손동욱(25)씨는 “평소 실내 생활을 주로 하는데 오랜만에 햇볕을 쬔 것 같다”며 “겨울이라 몸이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쫙 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후 약 200m를 이동해 숲 한가운데 있는 휴식 공간에서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동호회 회원들은 서로에게 고마웠던 일과 가장 좋아하는 모습에 대해 말했다. 약 20여분 동안의 레크레이션을 마친 후 동호회 회원들은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숲치유 프로그램 일정은 약 한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학생 김성주(24)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삶에 치이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숲을 걸으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날 이 동호회는 주말 숙박비와 세끼 식사비를 포함해 1인당 6만2000원씩 지불했다. 약 6시간의 숲치유 프로그램도 포함됐는데, 20인 이상 단체 할인이 적용됐다. 개인이 국립산림치유원에 머무를 경우 숲치유 프로그램비 1시간당 약 5000원과 숙박비, 식사비를 포함해 주말 1박2일에 7만7000원 정도가 든다.

최근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림’이 치유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토의 65%에 달하는 약 644만ha가 산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림면적 비율은 핀란드(73%), 스웨덴(69%), 일본(69%)에 이어 4번째로 높다.

정부도 산림 자원을 활용해 전국에 치유의 숲을 조성하고, 산림치유지도사를 양성해 산림 자원을 활용한 각종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산림청은 2009년 경기도 양평에 ‘산음 치유의 숲’을 조성한 이후 산림치유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치유의 숲을 늘리고 있다. 산림치유지도사는 학력이나 나이 제한이 없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나 자연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층의 ‘제2의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 산림자원 활용해 건강 증진하는 ‘산림치유’

지난 4일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북 영주 지역 농구 동호회 회원들이 국립산람치유원 내 솔향기치유숲길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전성필 기자.

산림치유는 숲에 있는 다양한 환경적인 자원을 활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뜻한다. 그러나 질병을 직접 치료하는 행위는 아니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고 면역력을 높이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의 2014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숲에서 가벼운 운동을 한 노인이 실내에서 운동한 노인보다 멜라토닌 농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나이가 들수록 적게 분비돼 수면 장애를 일으킨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성장호르몬 분비가 줄며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 산림치유가 노화를 예방하고 불면증 치료에 효과를 보인 셈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2015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림치유는 천식과 아토피를 앓는 어린이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산림치유를 받은 사람들의 면역력을 높이는 NK세포 수치가 284에서 394로 올라갔고, 항산화 효소도 산림 치유 전 2.0에서 2.9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치유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활성화된 산업이다. 일본에서는 ‘산림테라피’라는 이름으로 산업화가 진행됐다. 전국 60여 곳의 산림치유 효과가 높은 숲과 길에서 산림테라피 기지와 테라피 로드가 운영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1840년부터 높은 산악지대의 산림을 걸으면서 요양하는 ‘기후요법’이 인기를 끌며 전국에 ‘치유기후 지역’이 운영되고 있다. 치유기후 지역은 2013년을 기준으로 6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 산림과 의료·보건 분야 전문가 ‘산림치유지도사’…1·2급 국가자격증 따야

산림치유지도사는 사람에 따라 적절한 산림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직업이다. 쉽게 말해 산을 통해 사람들의 치유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개발하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숲해설가나 유아숲지도사, 숲길체험지도사처럼 산림 분야 전문가이지만, ‘치유’를 전담하기 때문에 ‘보건 종사자’로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산림치유지도사가 되기 위한 자격요건은 다소 까다로운 편이다.

산림치유지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정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뒤 산림청장이 발급하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증은 국가자격증으로 1급과 2급이 있다. 1급의 경우 130시간(18과목), 2급은 158시간(선택과목 포함 24과목)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산림치유지도사 양성기관은 13개가 운영되고 있다.

2급 산림치유지도사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주로 산림치유 현장에서 고객들과 소통하며 프로그램을 이끈다. 1급 산림치유지도사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개발하는 업무도 담당한다. 또 예비·2급 산림치유지도사들에 대한 교육과 프로그램 실행 능력 평가도 담당한다.

2급 자격증은 의료·보건 또는 산림관련 학과 학사 학위를 취득했을 경우 응시할 수 있다.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숲길체험지도사 자격증을 딴 후 3년 이상의 경력을 쌓으면 2급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다. 관련 학과 학위가 없더라도 산림치유 관련 업무를 2~4년 이상 했을 경우 자격증 취득에 도전할 수 있다. 2급 자격증 시험은 산림기후, 보건의학, 안전관리 등 산림치유에 대한 이해와 프로그램 실행에 필요한 과목 중 객관식 문제 100문제가 출제된다. 합격률은 40~50% 수준이다.

1급은 2급 자격증을 취득한 후 국공립 교육시설이나 치유의 숲 등 산림치유와 관련된 업무를 5년 이상 한 사람이나, 의료·보건·간호 또는 산림 관련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 응시할 수 있다. 산림치유 분야 최고급 전문가인 만큼 시험이 어렵다고 알려졌다. 합격률은 10% 수준이다.

국립산림치유원 방문자 센터 내 안내 문구 /사진=전성필 기자.

자격시험은 1년에 한번 시행된다.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 1월까지 5회 진행됐다. 지난해까지 1·2급 합격자는 총 716명이었다. 1급은 약 100명이다.

◆ 정규직 2급 산림치유지도사 수입 ‘200만원 이상’

산림치유지도사는 산림청이 국유림에 운영 중인 전국 치유의 숲이나 자연휴양림, 삼림욕장, 숲길 등에서 근무할 수 있다. 산림청은 현재 국공립 ‘치유의 숲’ 9개소를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전국에 38개의 치유의 숲을 새롭게 조성할 예정이다. 자연휴양림과 삼림욕장은 전국에 각각 162개소, 178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LG 등 사기업에서도 직원 복지 증진을 위해 치유의 숲을 조성하는 추세다.

치유의 숲에 근무할 경우 주5일 근무를 하며 하루 8시간 정도씩 일을 한다. 그러나 현장 프로그램 일정이 주말에 잡힐 경우 주말 근무를 할 수도 있다,

2급 산림치유지도사는 국립 치유의 숲에 취업할 경우 한달에 200만원 이상 벌 수 있다. 1급 산림치유지도사는 300만원 안팎이다. 산림치유지도사의 수입은 숲해설가 등 다른 산림관련 전문가보다 많은 편이다. 한국산림치유지도사협회 관계자는 “숲해설가의 수입이 하루 5만원 정도라면 2급 산림치유지도사는 9만원, 1급은 11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 “말하는 능력과 사교성 갖춘 중장년층에 유리한 직업”

산림치유지도사는 고객들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 경험이 많은 중장년층이 유리하다. 김병화 과장은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고객들의 성별과 나이, 원하는 치유 효과에 따라 다르게 운영된다”며 “여러 사람과 조직 생활을 해봤고, 사람들을 이끌어봤던 리더십 있는 중장년층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했다.

건강과 자연에 대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산림치유지도사는 단순히 산림치유의 효과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유 효과가 극대화하도록 최신 의료·보건 지식을 습득해 프로그램에 적용해야 한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주의 깊게 살필 수 있는 관찰력을 갖춰야만 안전하게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직업인만큼 말하는 능력과 사교성도 중요하다. 숲이나 산을 돌아다니는 활동을 하게 되므로 현장을 다닐 수 있는 체력도 가져야 한다.

산림치유지도사는 학력이나 연령, 경력에 제한 없어 경력 단절 여성들이나 중장년층이 재취업 직업으로 도전할 만하다. 2급 산림치유지도사 김모(51)씨는 “주부 생활을 하면서 부업으로 자연생태해설가로 활동했었는데,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으로 취업하고 싶어 산림치유지도사에 도전했다”며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 직업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했다.

앞으로 산림치유 관련 직업들이 세분화할 전망이라 산림치유지도사들의 활동 영역도 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의학과 간호학, 체육학 등 여러 분야가 융합된 산림치유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있어 이들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 김 과장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의료비 지출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적은 비용으로도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산림치유에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며 “의료와 산림 지식을 전문가 수준으로 갖춘 산림치유지도사들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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