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수현 녹취록] 최순실 "고영태 부모 찾아가 '호스트바 다닌다'고 협박해라"

이경원 양민철 기자 입력 2017. 2. 13. 17:41 수정 2017. 2. 1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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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일씨가 본보에 털어놓은 국정농단 뒷이야기
국정농단 주범으로 구속 기소된 최순실씨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12일 국민일보를 만나 그간 공개되지 않은 국정농단 사태 뒷얘기를 털어놨다.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던 지난해 9월부터 최순실씨가 고영태(41) 전 더블루케이 이사를 희생양 삼아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고 고백했다. 최근 김수현(37) 전 고원기획 대표의 녹취파일들을 근거로 고씨를 국정농단 사태 주범으로 지목하려는 시도 역시 최씨 측의 ‘고영태 죽이기’ 전략이라고 노씨는 강변했다.

“부모 찾아가 소문 전해라”

노씨에 따르면 최씨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조금씩 흘러나오던 지난해 9월 류상영 더운트 부장의 휴대전화로 노씨에게 지시를 내렸다. 최씨는 노씨에게 “(고씨) 부모님한테 가서 ‘아들이 마약도 했고, 호스트바도 다녔고, 도박도 했다. 만약에 고영태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니면 이런 소문이 다 세상에 밝혀질 것’이라고 전하라”고 말했다. 잔인한 지시라 여긴 노씨는 “알겠다”고만 답했는데, 통화 자리에 함께 있던 김씨가 “언제 갈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결국 노씨는 같은 달 10일 김씨와 함께 고속버스로 고씨 본가인 광주로 이동, 고씨의 아버지와 친형을 만났다. 김씨는 이동경로마다 최씨에게 ‘노 부장을 만났습니다’ ‘휴게소에 들렀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노씨는 고씨 아버지를 만나 “출장 왔다가 들렀다”며 선물만 드리고 나왔다. 그런 노씨에게 김씨는 “회장님 지시”라며 “고씨 형도 만나 전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광주까지는 함께 갔지만 노씨가 고씨 아버지 등을 만나는 장소에는 동행하지 않았다.

필리핀 간다며 태국으로

최씨는 지난해 10월 고씨가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고치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부리나케 노씨를 찾았다. 당시 최씨는 “고 상무가 연락이 되느냐. 얘가 사고를 쳤다. 한국에 있으면 죽는다. 외국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노씨가 도피처로 필리핀, 베트남, 자신이 머물던 독일 등을 거론하자 최씨는 “필리핀이 좋겠다”고 했다. 베트남을 거부한 이유는 장시호씨 오빠 승호씨가 체류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노씨는 추측했다.

노씨는 3일간 집에도 못 가고 고씨를 찾다 결국 10월 20일 새벽 서울 강남에서 고씨를 만날 수 있었다. 노씨는 고씨 집으로 가서 자료들을 차에 싣고 자신의 본가인 경기도 오산으로 이동, 보관했다. 곧바로 고씨를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다시 이동하며 필리핀행 항공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 고씨는 “홍콩을 경유해 태국으로 가겠다”고 했다. 고씨가 필리핀이 아닌 태국으로 간 사실은 고씨와 노씨 둘만의 비밀이었다. 노씨는 최씨에게는 애초 지시대로 “필리핀으로 출국시켰다”고 보고했다.

그 후 10월 26일부터 지인의 말을 빌려 고씨가 필리핀에서 신변 위협을 호소했다는 내용의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따리 풀었다. 사실대로 진술하자”

노씨는 처음 검찰 수사 때는 최씨 지시대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25일 검사의 수사 의지를 확인하고는 4시간30분 동안 최씨와 K스포츠재단, 더블루케이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최씨의 국정개입을 시인하고 국민 앞에 사과한 날이었다.

노씨는 26일 새벽 귀가하며 태국에 있던 고씨에게 전화해 “나는 보따리를 풀었다. 너도 들어와서 사실대로 진술하자”고 설득했다. 고씨는 27일 바로 입국했다. 노씨가 고씨를 인천공항에서 맞았고, 오산으로 이동해 옮겨 두었던 방대한 자료를 차에 싣고 서울로 돌아왔다.

온 나라가 국정농단 사태로 들끓고 있었다. 노씨는 당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자동차 문이 잠겨 있느냐”고 가족에게 여러 차례 확인할 정도였다. 고씨의 자료들 중에는 비어 있는 태블릿PC가 하나가 있었는데, 이때 검찰에 제출했다.

최씨 딸 정유라(21)씨의 승마 훈련일지에 ‘Soong Il’이라는 사인이 있었다는 이유로 노씨는 한동안 ‘노숭일’로 불렸다. 사태 초반 최씨의 최측근 독일 집사로 묘사됐지만 지금은 내부고발자로 불린다. 그는 지난 9일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내부고발자가 무슨 의미냐”고 묻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질문에 “최순실과 일해 부끄럽고, 처벌받을 일이 있으면 받겠다”고 답했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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