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탈탈 털리고도 아베가 웃는 이유가 있다

우수근 상하이 동화대학교 교수 2017. 2. 1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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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의 '아시아 워치'] "미국 우선주의" 외치는 트럼프, 일본에게는 다르다?

[우수근 상하이 동화대학교 교수]

 "지금 정글에서는 노쇠한 호랑이와 이에 의존하고 있는 노련한 늑대가 하나가 되어 성장기의 청년 곰을 상대하고 있다. 이 대혈투를 혈투장 한 가운데서 넋 나간 채 바라보고 있는 초식동물 한 마리, 과연 이 초식동물의 운명은?"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두 번째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미국국익 우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그가 대선 기간 내내 비난해 온 일본의 총리를 극진히 환대했다. 일본은 이를 통해 트럼프의 당선으로 불어 닥친 국가안보의 불안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고 이를 만들어 낸 아베 총리는 시종일관 '만면득의'하였다.

촉각을 곤두세운 채 일들을 지켜보던 중국은 "트럼프가 아베의 손을 치켜 세워준 것은 예상대로 우리(중국)를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며 이번 회담에 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회담과 관련된 각종 질문을 쏟아내는 중국 당국자들의 모습 저편에는 당초 중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일 양국이 '신 밀월기'로 들어가는 듯한 역전극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렇다면, 이번 회담으로 중일 양국 중 더 많이 '얻게 된'쪽은 어디일까? 이에 대해 이번 회담에 임한 아베 총리로부터 벤치마킹할 부분들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아베 총리의 '진취(進取)적' 자세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발 빠르게 대처하고 나서는 적극적인 모습은 이런저런 모든 것을 차치하고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후흑(厚黑)의' 자세를 들 수 있다. 후흑이란, 노자와 한비자의 제왕학이라 불리기도 하는 <후흑학(厚黑學)>에서 나오는 것으로 "거래 및 협상 등에 있어서는 얼굴은 최대한 두껍게, 뱃속은 최대한 검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즉,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무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베 총리는 이번 회담을 통해서 그 후흑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는 미국의 대선 기간인 작년 9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만나 사실상의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런데 그만 트럼프가 당선되고 말았다. 이에 그는 지체 없이 '표변'하여 그 어느 나라의 정상들보다도 빠르게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엄청난 선물 보따리를 싸 들고 가 아직도 시큰둥해 마지않던 트럼프의 마음을 단번에 녹여 버렸다.

이처럼, 국익을 위해서라면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상관없이 한순간에 고무신을 거꾸로 갈아 신는 '철면피적 후흑'의 자세 또한 저 높은 곳에서 근엄하게 거하고 계신 누구네 최고지도자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 지난 1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도착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부정적인 측면에서 아베 총리로부터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도 있는데, 주로 정상회담의 내용과 관련돼 있다. 아베 총리는 중일 사이의 영유권과 관련된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의 미일 안전보장조약 제5조 적용 대상임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사실, 이 부분은 일본 측이 이번 회담에서 가장 역점을 들인 최대의 현안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최고 지도자의 입으로부터 "센카쿠 열도는 일본의 관할권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이곳이 공격받을 시, 미국은 미일 안보 조약에 의거하여 일본을 돕는다"는 내용을 말하도록 이끌어 냄으로써 종전과 같은 "듬직한" 미일 동맹을 확인함과 동시에 트럼프의 당선으로 야기되었던 안보 불안의 위기감을 떨쳐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뤄졌으니 이번 정상회담에 있어서의 일본의 최대 목표는 무난히 달성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표면상 달성은 됐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동맹국으로서의 보호를 약속받았지만, 만약 미군의 도움이 실제로 필요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그 약속을 얼마나 잘 이행할까?

예를 들면, 현재 미중 양국의 국익은 양자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다자 측면에서도 매우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상황에서 중일 양국 분쟁 시, 미국이 과연 일본을 위해 국제 사회의 G2인 중국을 상대로 군사적 행동을 적극 감행할까?

하물며, 미국과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동 아시아의 일본, 설상가상으로 그 일본의 본토도 아닌 자그마한 센카쿠 열도를 위해 미국의 국익에도 적지 않을 타격이 초래될 수 있는 중국과의 군사적 대결에 미국이 과연 선뜻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동맹의 최대의 효용은, 동맹국이 동맹군을 실제로 파견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발휘된다"는 국제관계학의 가르침을 미국도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자신이 이뤄낸 최대의 성과가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모른 채 만면득의했던 것일까? 그가 그렇게 어수룩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는 "이번 회담의 성과는 트럼프의 '변덕' 등으로 인해 언제 어떤 식으로 바뀔지 모른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이번 회담은 트럼프로서는 아쉬울 게 없고, 아베로서는 리스크가 너무 큰 회담이었다"고 아베 총리를 폄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시종일관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수정과 자위대의 군대화 등을 통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그려왔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군사 협력 속에서 일본의 군사력을 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 나감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주일 외국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완연한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일본'을 꿈꿔왔다. 하지만 이는 대내외적인 반발과 현실적인 제약 등으로 인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급반전되었다. 먼저 대내적으로, 그동안 미국에 안보를 의지해왔던 일본이 안보 불안을 느끼며 일본 국내에 자주국방 추진의 분위기가 조성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도, 그동안 일본의 자주국방을 옥죄고 있었던 미국의 족쇄 역시 이번의 미일 회담을 계기로 원만하게 풀려 갈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변덕쟁이 트럼프 대통령이 나중에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한번 안보 불안을 느낀 일본사회는, 트럼프의 변덕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주국방을 그만큼 더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아베 총리의 만면득의는 일본인 특유의 '다테마에(たてまえ, 겉모습)'에서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혼네(ほんね, 속마음)'에서도 나올 수 있었던 회심의 미소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오랜 숙원인 '강한 보통국가 일본'을 향한 대내외적인 토대가 비로소 제대로 다져지게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누구네 최고 지도자는 황당한 국난을 초래했으면서도 오히려 더 그 국난 가중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의 아베 총리는 다층적 셈법과 그 실현을 위한 진취적이며 후흑적인 자세 등으로 국익 증진을 위해 몰두했던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나라와의 사이에도 장벽 설치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동안 자국이 주도해 오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리고,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도 서슴지 않고 흔드는 철저한 자국 위주의 현실주의자이다.

그러한 그가 미국과 저 멀리 떨어진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쪽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우리에 대해 과연 얼마나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자국이 처한 제반 상황도 녹록치 않아 모든 판단 기준을 "국익우선!"으로 하고 있는 그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실제적인 도움 등을 필요로 할 때 과연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이런 측면을 고려해 보더라도, 우리는 향후의 한미 관계 설정 등에 있어서 '결실 같은 허실'이 아닌 명실상부한 내실있는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새 술은 새 푸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이제는 20세기 과거의 상황 속에서 필요로 했던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21세기 현재의 상황에 필요한 '현재의 프레임'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우수근 상하이 동화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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