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보기]좌파와 극우에 갇혀 '황혼' 맞은 앙겔라 메르켈.. 12년 그의 시대 저무나

심진용 기자 입력 2017. 2. 13. 16:37 수정 2017. 2. 1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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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일 주간 슈피겔이 최신호 표지에서.“마르틴 슐츠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를 묻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3)의 시대도 저무는 것일까.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마르틴 슐츠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이후 사민당(SPD)이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정당 지지율에서 10년 만에 집권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을 제쳤고, 개인 지지율에서도 슐츠가 메르켈을 앞섰다. 반유로·반이민·반무슬림 기조를 내세워 메르켈의 난민 정책을 공격해온 극우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은 오는 9월 총선에서 사상 첫 연방의회 진출이 유력하다. 메르켈이 좌우에서 협공을 당하는 양상이다.

기민·기사 연합의 내부분열도 고민이고, 12년째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메르켈에게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주말 나온 최신호 표지에 사민당(SPD) 총리후보 마르틴 슐츠가 메르켈 동상을 손가락으로 미는 그림을 실었다. “메르켈의 황혼기가 다가왔다”면서 “최근 들어 메르켈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썼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4연임이 유력해 보였던 메르켈의 앞날이 그 어느때보다 불투명해졌다.

■“슈타인마이어 당선, 메르켈이 졌다”

12일(현지시간) 독일 대통령에 당선된 사민당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전 외무장관이 지지자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 속 문구는 ‘나의 대통령’)사민당 페이스북

디벨트, 타츠 등 현지 언론들은 12일(현지시간) 슈타인마이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일제히 “메르켈의 패배”라고 전했다. 총선이 열리는 해에 자기당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경쟁당에 힘을 실어주게 됐다는 지적이다. 디벨트는 이날 투표에 앞서 트럼프를 겨냥한 비판 연설로 갈채를 받은 기민당 소속 연방 하원의장 노르베르트 람메르트를 거론하며 “그는 훌륭한 연설을 통해 대통령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메르켈이 좀 더 빨리 그리고 좀 더 자주 그를 설득했어야 했다”고 전했다.

메르켈은 지난해 11월부터 람메르트에게 대통령 선거 출마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사민당이 앞세운 슈타인마이어를 후보로 받아들여야 했다. 타츠는 “슈타인마이어 당선으로 사민당은 더 강해졌고, 기민·기사 연합은 더 약해졌다”고 전했다. 이날 투표에서는 무효표가 103표 나왔고, AfD 후보로 나선 알브레흐트 그라서는 AfD 몫으로 배정된 선거인단 수보다 7표 더 많은 42표를 받았다. 전체 선거인단 1260명 중 539명을 배정받은 기민·기사 연합에서 이탈표가 많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슈피겔은 “기민·기사 연합의 많은 이들이 경쟁당 후보인 슈타인마이어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불편해했다”고 전했다.

독일 대통령은 실권 없는 상징적인 직책이지만, 누가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2005~2009년, 2013~2014년 두 차례 외무장관을 지낸 슈타인마이어는 이란 핵 협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고 우크라이나 분쟁 당시에도 핵심 중재자로 나서 명망이 높다. 당선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에게 축전을 보내고 모스크바로 초청하기도 했다.

■거세지는 야당 바람, 내부분열 빠진 여당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포스터를 떠올리게 하는 마르틴 슐츠 포스터가 독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래에 적힌 MEGA는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ake Europe Greate Again)’의 약자다. 슐츠 개인의 인기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에 맞서 독일과 유럽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독일인들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

‘슐츠 돌풍’의 근본적인 배경은 메르켈 피로증이다. 집권 12년째인 메르켈이 이번에도 총리가 된다면 헬무크 콜 전 총리와 함께 비스마르크 이후 최장수 총리가 된다. 슐츠는 정치경력은 20년이 넘었지만 유럽의회에서 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선한 인물로 여겨진다. 고교 중퇴라는 이력과 직설적인 화법도 메르켈과 구분되는 슐츠만의 매력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이 된 슈타인마이어도 트럼프를 ‘증오의 설교자’라고 비판하는 등 메시지가 분명한 인물이다.

메르켈의 신중한 화법은 미덕으로 여겨졌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다소 분위기가 변했다. 트럼프의 ‘막말’에 맞서 메르켈도 좀더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내부분열도 메르켈의 고민거리다. 기민당과 기사당은 난민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해 12월 베를린 트럭 테러 이후로는 기사당이 앞장서서 메르켈을 비판했다. 베를린 포사 연구소 선임연구원 피터 마섹은 “슐츠와 사민당은 난민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통일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민·기사 연합은 사정이 다르다”면서 “기민당과 기사당이 난민 문제를 두고 계속해서 싸움을 벌이고 9월 총선까지도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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